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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들의 기원 - 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 (스티브 탐슨 著) 중 [2] (Daniel /2009.12.01)

2016.07.1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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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예언자들의 기원
스티브 탐슨 (『당신도 예언할 수 있다.』中)

우리는 지혜와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하지만, 동시에 몇몇 특정한 함정들도 피해야 하고 그릇된 동기도 간파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주로 예언적 메시지를 받고 해석하고 관리하는 원칙들을 설명함으로써 예언의 은사가 풀려나도록 돕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예언의 은사들에 관한 주님의 목적과 방식, 수단들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이제부터는 거짓 예언자들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본서에서 말하는 거짓 예언자란 점성가들이나 무당, 점쟁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들은 명백하게 거짓 예언자들이다. 본서의 독자 가운데 이러한 죄에 빠질 우려가 있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거짓 예언자들이란 참된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언자적 성품이 결여되어 파괴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거짓 예언자들이 사역하는 교회에는 분리와 분쟁, 무질서의 열매가 맺힌다.

거짓 예언자의 기원에 관해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거짓 예언자들의 기원과 동기를 이해할 때, 양 무리들을 흐트러뜨릴 목적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예언자의 정체를 보다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둘째, 젊은 신세대 예언 사역자들로 하여금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에 놓인 함정들을 피해가도록 도울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진정 예언사역으로 부름 받은 자들이라면, 원수가 쳐놓은 올가미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예언의 영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로 부름 받았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의 대변자가 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삶을 통해서이다. 요한계시록 19장10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 신실하시고 참된 증인이신(계3:14) 예수님을 위한 정확한 대변자가 되려면 부주의한 언행을 삼가야 한다.

몇 해 전 주님은 꿈을 통해 내 말이 얼마나 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꿈속에서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어는 집의 신축 현장에 서 있었다. 건축 자재들과 건설에 필요한 도구들이 아직 미완성인 집 주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향해 철제 막대기며 삽이며 기타 집 짓는데 사용되는 도구들을 마구 던져대기 시작했다. 나는 날아오는 것들을 요리조리 잘 피하여 아무데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향해 위험한 물건들을 던져대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작은 드라이버 하나를 집어 들고는 누군가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그 드라이버는 공간을 자로질러 내 친구의 복부 속으로 깊이 박혔다. 그 친구가 몸을 구부리는 순간 위장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꿈은 거기서 끝났다.

꿈에서 건설현장은 교회를 상징했다. 교회는 계속해서 주님의 집으로 지어져가고 있었다. 건축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던진 여러 물건들은 그들의 말이었다. 나는 노골적이고 격렬한 말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말은 비록 사소하고 가벼운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복부에 깊이 박혔다. 여기서 복부는 영(spirit)을 뜻한다. 이 꿈은 나에게 있어 특수한 메시지이자 경고였다. 그러나 이 메시지와 경고는 예언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말에는 영적인 능력과 권위가 실려 있다. 아무렇게나 부주의하게 말을 내뱉어서는 결코 안 된다. 설사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말은 남을 죽일 수도 있다. 주님은 우리의 말에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예수를 증거하는 사역자들은 말뿐 아니라 행실을 통해서도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요한복은 1장14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은 육신이 된 말씀이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 안에서 육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만 말을 선포하는데 그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해당되지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예언 사역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진리이다.

예언 사역에는 종종 극적인 권능과 계시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예언 사역자는 아주 사소한 인격사의 흠도 솔직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언젠가 한 지혜로운 남성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물론 그의 말이 만고불변의 영적인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능을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 중, 명백히 잘못된 동기들을 주님에 의해 처리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분명한 진리이다.

거짓 선지자로 되어가는 과정

우리 모두는 수많은 영역에서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예언 사역으로 부름 받은 이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기본적인 인격상의 결함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는 생명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늘 진실한 사역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기주의적인 특성을 공통적으로 지니는 이 세 가지의 약점들을 우리는 유다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다서를 교회에 써 보낸 일차적인 목적은, 거짓 예언자들을 경고하고 이에 대한 신자들의 대처방안을 전달하는 데 있었다. 나의 경우 가장 극적이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주님과의 만남은 1988년에 있었다. 그 해 주님은 거짓 예언자들의 특성들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다음 성경 구절을 말씀해 주셨다.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서 11절)

가인, 발람, 고라는 각각 서로 다른 인격적 결함을 상징한다. 우리 안에 이런 속성들이 역사하고 있을 때 이를 깨닫고 속히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역은 이러한 약점들로 인해 변질되고 만다. 이것들은 단순한 세 가지 상이한 결함들일 뿐 아니라, 이기주의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기주의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심각한 거짓 사역자로 변질되어 간다.

가인

가인은 고집(selfwill)이라는 인격적 결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가인(Cain)’이란 ‘만드는 사람, 제작자, 출세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고집이란 하나님의 방식이나 하나님이 우리 삶에 세워두신 권위자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욕구이다.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가인의 노력은(창 4), 가장 고질적인 고집의 본보기이자 그 결과이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거절당했을 때 가인은 그릇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고 하나님의 방식이 옳다고 인정하기보다는 분노하고 낙담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가인을 직면시키신 후에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길에서 돌이킬 줄 몰랐다. 가인의 우울과 분노는 살인의 영이 틈타는 열린 문이 되었고, 결국 친형제를 죽이고야 말았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 안에 있는 고집도 우리의 관점을 왜곡시키는 힘이 있다. 시기상조임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예언사역에 뛰어들었다가 거절이라도 경험하면, 의기소침해지고 분노하다가 결국엔 주변 사람들을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파멸시키는 존재가 되고 만다.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공격할 목적으로 자신들의 계시의 은사를 제멋대로 사용함으로써 전 회중을 황폐케 해 왔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분리와 분쟁의 자취를 남겨 놓으면서도, 잘못을 바로 잡으라는 목소리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대 고집과 분노와 의기소침은 한데 연합하여 자기연민을 형성한다. 자기연민은 현재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자기연민은 우리 혼의 원수로서, 끊임없이 핑계를 대고 남만 탓하게 만든다.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책임을 짊어질 때 자신의 결점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계속해서 가인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누가 말해도 듣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세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

고집은 수많은 죄의 뿌리이다. 우선은 루시퍼가 그랬고, 다음으로 아담이 그랬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죄를 범했다. 그 결과 이들은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온 세상에 악을 퍼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선택이 오직 자신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책임적이고 권위적인 위치에 있다면, 우리의 타락은 우리의 돌봄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우리의 성품 가운데 여전히 고집스런 부분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선장이 되어 타고 가는 배는 결국 파괴적인 영적 조난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

예언사역으로 부름을 받은 이들은 종종 무수한 거절을 경험한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진리이다. 우선 예언사역은 초자연적인 특성을 지니며 종종 이상하고 낯선 현상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집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으로 인해 거절을 경험하는 예언사역자들도 많다. 루시퍼는 고집스럽게 행동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쫓겨났다(사 14:12-15). 아담도 고집을 부리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창 3:23-24). 가인은 고집을 부리다가 자기의 친동생을 살해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이 땅 위에서 늘 도망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창 4:11-12).

유다서 13절은 거짓 예언자들을 가리켜 ‘유리하는 별들(wandering stars)’이라 표현한다. 이는 거짓 사역자들의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거짓된 사역자들은 일정한 경로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고집으로 인해 거절을 당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정해놓으신 경로에서 이탈하고 만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고집의 죄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죄를 중단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환영 받는 삶을 살며 사역을 통해서도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고집 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는 이제 머지않아 가인의 길에서 발람의 죄를 향해 전진해 나아간다.

발람

발람의 이름에는 ‘백성들을 삼키는 자, 백성들을 정복하는 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발람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양을 삼키는 자를 대표한다. 성경은 발람이 한 때는 하나님의 방문을 받기도 한 예언자였다고 말한다(민 22:9). 그러나 그는 예언의 은사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빌미로 오직 자신의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러한 유혹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는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신분과 권력과 권위로 다른 사람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만을 섬길 것인가? 거짓 예언자들의 특성을 묘사하는 유다서에서는 이런 자들을 ‘기탄없이 먹는(유 12)’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백성들의 필요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정욕대로 행하는(유 16)’ 자들이다.

이러한 유혹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영역에서 활동한다. 돈 혹은 정치적 영역, 정서적 영역, 성적인 영역이다. 발람은 가장 먼저 돈과 정치적 이들의 영역에서 유혹을 받았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발락의 요구대로 사용해준다면 많은 부와 권세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오늘날 이토록 뻔뻔스런 일을 제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 역시 본과 권세를 약속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환영을 받을 목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미묘하게 바꾸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는가? 잠언 15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우리 모두는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사역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마땅하다(고전 9:14). 그러나 주님이 맡겨주신 모든 이들을 위해 신실하게 사역하지 않고, 돈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역이 되기 시작한다면, 일시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자신을 파는 영적 창기 같은 자들이 되고 만다. 사람을 편파적으로 대하는 자의 진실성은 잠깐 동안만 유효하다. 이런 자들은 보다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 찾아오면, 곧 유혹에 굴복하여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민 22:20-22).

이러한 인격적 결함이 지닌 가장 미묘하고도 위험한 국면이 있다. 바로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과 존경을 게걸스럽게 취하려는 유혹이다. 우리를 향해 숱한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있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사역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메시지를 바꾸고 싶은 유혹과도 직면할 것이다. 예수님이 당시의 종교전문가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자.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 7:18)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 5:44)

이들은 자신의 영광을 서로에게서 구했다. 우리 역시 이와 동일한 모습은 아닌가? 우리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피사역자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영광을 구하려고 한다면, 사역은 심하게 변질되고 만다. 나아가 하나님의 생각보다 사람들의 생각에 더욱 신경을 쓰는 자가 된다. 많은 이들이 경험해온 거절은 대체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려는 갈망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분명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기쁨을 구하는 자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갈 1:10)!

거절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발람의 인격적 결함이 지닌 또 다른 측면은 성적인 부도덕이다. 거절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이들 중에는 사역 받는 이들과의 불법적인 관계를 통해 수용을 경험하고자 타락하는 자들도 있었다. 예언사역이 지닌 초자연적이고 극적인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은사 자체뿐 아니라 은사를 소유한 사람마저 경외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거절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예언 사역자들 중에는, 부적절한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이러한 경험을 이용해먹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성적 부도덕으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발람의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진정한 유산은 하늘나라에 있다. 잠언 20장 2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한때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던 예언자 발람이 결국은 점쟁이가 되어 죽었다(수 13:22).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기꺼이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예언자의 정로에서 벗어나 마침내 저주받은 점쟁이(참조: soothsayer)로 변질될 것이다.

고라

고라란 문자적으로 ‘대머리’ 혹은 ‘덮개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고라는 거짓 예언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종종 나타나는 거역을 상징한다. 민수기 16장은 고라와 그가 행한 거역의 개요를 잘 보여준다. 고라를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명성 있는 몇몇 사람들이 모새와 아론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킨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지나치게 많은 권세를 누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온 회중이 모두 다 거룩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외관상 민주적인 움직임으로 보이는 이들의 거역은, 실제로는 보다 큰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구가 발단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도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평등주의를 부르짖는다.

고라는 이스라엘에서 명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그가 어느 정도의 영적 권위를 소유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모새와 아론에게 권위를 주신 분은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오늘날에도 진정한 영적 권위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하나님은 고라를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당시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의 지도자로 부르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내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역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주님이 이 과정을 고안하신 목적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사역을 받는 이들을 파멸로 몰아 갈 인격적 결함을 다루시기 위함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이 거쳐야 할 최종단계는 인내이다. 원수는 예수님께도 그러했듯 우리에게도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제안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길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길은 좁다. 우리가 권위를 차지하려고 안달하고 조급해한다면, 이는 여전히 우리가 그 권위를 부여받기에 시기상조임을 입증할 뿐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된 영적 권위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참된 영적 권위는 우리 자신 혹은 우리가 가진 은사와는 무관하다. 우리에게 권위가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른다. 고라가 모세보다 훨씬 더 많은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이 선택한 지도자는 고라가 아니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사역을 완수할 수 없다. 선택한 자에게 부여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만 사역이 성취될 수 있다.

고라가 반역을 일으키자 모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보다 자신의 출세에 연연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을 무시한다.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는 자는 이제 하나님 자신마저 거절한다. 삶 가운데 고집과 발람의 이기주의를 처리하지 않은 사람은, 점차로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지도자를 거절하는 거역에 빠지고, 나아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거역한다!

이와 동일한 거역은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된 험담과 비난의 원천이다. 은사는 있으나 인내하지 못하는 자들의 이기적인 야망이 이러한 거역을 부채질한다. 거짓 예언자들의 특성을 묘사하는 유다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 16)

우리의 선택은 간단명료하다.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워주신 이들을 섬길 수도 있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조급하게 영적 권위를 얻으려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자신을 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정치적 술책은 거짓 사역자가 된 이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가인 안에 잇던 고집(self-will)은 발람 안에서 이기주의(self-seeking)가 되었고, 이는 마침내 고라 안에서 자만(self-exaltation)이 되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마 23:12). 고라와 그의 일당들이 받은 심판에 관해 생각해보시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16;32-33)

고라와 그의 친구들은 지옥에 사로잡혀 갔다. 문자 그대로 그들은 산채로 구덩이에 빠졌다! 고라가 받은 심판은 예언적인 경고이다. 현 체제에 대한 거역이 예언사역으로 부름 받은 이의 삶 속에 고착되면, 그는 지옥의 영역에 빠져들어 마침내 거짓 선지자로 변한다. 위험 수위를 넘은 이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일촉즉발의 비극적인 심판뿐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도 이들이 죄를 인정하며 회개하고 주님이 베푸시는 회복의 과정에 복종한다면,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은사와 열매

이제 우리는 예언사역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해를 확립해야 한다. 교회가 자칭 예언적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든 무조건 편견 없이 받아들인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였다. 은사자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은사가 성품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도록 방채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은사뿐 아니라 열매를 보아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7:15-16)

오늘날 사역자들 중에는 한때 가졌던 주님과의 관계마저 떠나버린 자들도 있다. 이들은 생명의 길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인 은사로 사역을 지속해 나간다. 로마서 11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은사들을 철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은사들을 철회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중에서 수고하는 자들의 삶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알아야 한다. (살전 5:12)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매우 이해하기 힘든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거짓 예언자들은 여전히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가 논의하는 대상은 점성가나 무당 등 명백한 거짓 예언자들이 아니라,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범죄에 빠져든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참된 사역자들 중에서 거짓에 빠진 이들이 수없이 많다. 이는 자신의 부르심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위장했거나, 미성숙한 상태로 조급하게 사역에 임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주님의 계획에서 일탈함으로써 원수의 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도 여전히 구원의 상속자들이다. 이들이 자신들을 향한 주님의 갈망에 부합되도록 다시금 회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최고로 위대한 승리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동기를 버리고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주님의 뜻은 모든 이가 구원받는데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과 구속과 회복을 최우선적으로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유다서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반응에 관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 21-23)

우리는 가인이나 발람, 고라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나은 언약과 약속의 사대를 살아가고 있다. 약속 중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훈련하신다는 사실이다 (히12:5-8). 거짓 사역자들은 주님의 징계를 받고 그 징계의 손길에 복종하기만 한다면, 주님은 능히 그들을 변화시키신다. 누구든지 무조건 주님께 복종하는 자를 주님은 변화시켜 주신다.

당신이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영역의 범죄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라면 속히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당신의 죄와 인격적 결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을 찾으라.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더 이상 중단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소유하라. 아직 당신에게는 노선을 변경할 시간이 남아있다. 주님은 자칭 선지자라 하나 거짓된 자였던 이세벨에게도 회개의 여지를 주셨다. 주님은 당신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신다(계 2:20-29).

당신이 목사라면 현재 당신의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신세대 예언사역자들을 도울 수 있다. 사랑 안에서 그들에게 단호한 자세를 취하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잠27:5). 그들이 불에 데여 화상을 입었다면 당신은 그들의 치유를 도울 수 있다. 당신은 그들의 영혼을 돌보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여 조언해 주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 이로써 당신은 당신이 행한 일에 관해 주님께 보고할 수 있게 되리라(히 13:17). 당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 거짓 예언자가 들어오면, 당신은 양들을 희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결론

이상에 언급한 진리들을 제시함에 있어, 나는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잠재적인 위험요소들을 발견했다.

첫째, 정작 이 메시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예언 사역에 부름 받은 자라면, 혹시 당신 안에 어떤 해로운 속성들은 없는지 점검해주시고 살펴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라. 당신을 책임지고 있는 영적 지도자에게 복종하라. 아직 이런 관계를 형성해두지 못했다면, 속히 당신을 도울 자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라.

둘째, 이런 메시지를 들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이때 이들은 자신의 동기가 전적으로 순수해 질 때까지 사역을 중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주님은 당신이 사역을 그만 두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당신이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권능 안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동안이라도 계속해서 주님의 길을 걸아가라.

셋째, 수많은 미성숙한 예언자들이 거짓 예언자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지도자들이 이 메시지에 과잉 반응하게 되면, 현재 주님의 섭리 가운데 예언 사역자로 빚어져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아예 초기부터 근절시켜버릴 위험이 있다. 목사들은 이러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현재 떠오르고 있는 젊은 예언자들이 누구인지를 바로 깨닫고, 이들의 삶에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도록 끝가지 인내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이상에 언급한 것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반작용들이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내용들만은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예언사역을 회복시키는 중이시며, 우리는 이를 받아 들여야 한다. 여러 가지 그릇된 동기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거짓 예언자들을 분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가운데 자라나고 있는 신세대 예언 사역자들이 온전하게 성장하기까지 이들을 받아들이고 지도해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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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foreverthanks

foreverthanks

2016.07.12 04:22

사도나다나엘 09.12.01. 19:59
매우 중요한 글이네요..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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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빛 09.12.02. 11:26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좋은 자료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시고 계획하신 일만 이루어 드리는 도구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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