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이야기

깊은 영성의 글들을 나누는 곳입니다.

정원 목사님의 낮아짐 1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 /2015.04.30 )

2016.07.15 01:05

foreverthanks

조회 수443

//
38.gif
책을 읽으면서 각 챕트별로 밑줄친 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정원] 낮아짐의 은혜 1

1.은혜의 비결은 낮아짐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 은혜의 비가 마르고 은혜의 샘물이 마른 이유는 사람들의 심령이 아주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영적 상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스팔트와 같이 단단한 땅에 빗물이 새어 들어갈 수 없듯이 완악하고 강퍅하며 높아진 마음은 결코 하늘의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입을 벌리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높아진 마음의 상태는 아무리 많이 기도하고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은혜의 강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낮아짐, 겸손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무르게 하는 놀라운 은총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짐을 통하여 하늘이 열리고 무한한 풍성함이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2.천국의 가치관과 세상의 기치관

사람들은 위대하고 능력있고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이 성공자이며 지도자이며 높은 자이며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가르치심은 그와 정 반대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기를 좋아하며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며 낮은 자리와 굴욕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주 사소한 모욕을 겪어도 심각한 분노와 자기연민에 사로잡힙니다. 아직도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아직도 높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그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낮은 자를 무시하며 높은 자를 대단하게 여기고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염소과에 속한 사람이며 지옥에 속한 사람입니다. 높아지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을 낮은데 두며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양과에 속한 사람이며 천국에 속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천국은 낮은 사람만이 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낮아짐에서 천국은 열리며 높아짐에서 지옥은 열립니다.

3.높은 마음에서 재앙이 시작된다.

우리가 자신을 높이고 잘난 척을 하는 순간은 바로 재앙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 부유함, 학별, 권세같은 것으로 잘난 척을 하고 자신을 높입니다. 자기가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악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랑들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며 재앙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높이십시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영광과 권세와 능력과 부귀가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높은 마음, 높은 말은 재앙을 가져오며 낮은 마음, 낮은 말은 천국의 은총이 임하게 한다는 진리를 우리믐 평생동안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4.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사람, 은혜가 쉽게 임하는 사람,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잘난 사람들에게 임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이들을 비켜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잘 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임하십니다. 은사와 임재는 성숙의 증표가 아니라, 낮은자 한심한 자의 증표입니다.
아무리 갈망하고 구해도 주님의 가까우심이 없다면 그 자신의 마음상태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높지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낮은 마음만 있다면 어느 정도 기도의 분량이 쌓일 때 주님은 가까이 오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사람을 부르시며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은총과 임재의 비결은 오직 낮고 상한 마음입니다.

5.하나님의 임재가 멀리 있는 사람

무엇이 하나님의 임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일까요? 그 정답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성결하신 분이시므로 온갖 악함과 죄와 더러움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멀어지게 합니다. 모든 죄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소멸하지만 특별하게 하나님의 영을 멀어지게 하는 죄가 있으니 그것은 ‘교만’입니다. 높아진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비로운 왕도 쿠데타를 일삼는 부하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지도자들보다 종교적,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더욱 더 무서운 일입니다. 주님은 당시의 왕이나 권세자들에 대해서 심판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일반적인 죄들이 다 무서운 것이며 교만은 더 무서운 죄이지만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인 교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죄입니다. 거기에는 오직 심판과 저주가 있을 뿐입니다.

6.낮아짐과 열등감은 다르다.

열등감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나으면 우월감을 갖고 부족하면 의기소침해집니다. 잘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강퍅하며 함부로 대하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낮아짐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그분 아래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하심과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인식하고 주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낮은 마음은 천국에 속한 것이며 하늘의 은총이 임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강한 사람 앞에서 의연하고 약한 사람들 앞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되십시오.

7.우주 첫 번째의 죄

아담과 하와는 그들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기 전에 먼저 죄를 짓도록 유혹한 존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온 우주의 첫 번째 범죄자는 그 유혹을 한자이지 유혹을 받은 자가 아닙니다. 뱀은 ‘간교함’으로 여자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달했고, 하나님을 비방했으며, 여자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도록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여자를 통하여 남자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온 인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행동을 한 뱀을 그저 단순히 성질이 간교한 존재라고만 여길 수 있을까요? 그의 행위는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으며 인류를 영적 사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도발행위이며 범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지은 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죄입니다. 속임을 당한 존재보다 속이는 존재가 더 악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에게는 왜 과실을 먹게 되었는지를 물으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뱀에게는 바로 가차없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8.지옥의 중심 원리

마귀는 지옥에 속한 자이고 지옥은 높아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을 높아지게 만들어서 그 영혼을 사로잡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작전과 유혹을 계속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수없이 가르치시고 말씀하시고 경고하셨지만 이 간단한 유혹을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영혼들이 넘어지고 타락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자는 지옥에 속한 자이며 지옥의 영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마귀는 하늘에서 쫓겨났고 땅으로 떨어졌고 음부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높은 마음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떨어진 마귀들은 이제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우주 안에서 첫 번째 죄인 교만의 죄를 지어서 첫 번째 범죄자가 되었고 두 번째 범죄자를 만들기 위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는 자는 하늘과 천국에 합당한 자입니다. 그렇게 하늘에서는 낮은 자들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있습니다.

9.두 번째의 죄

선악과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삶입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연결된 삶입니다. 선악과는 스스로 머리가 된 삶이며 생명나무의 삶은 하나님을 주로, 머리로 모시고 항상 그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선악과의 삶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삶을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졌을까요? 그것은 높은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고 머리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 스스로 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높아짐은 모든 악의 시작입니다.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가장 무서운 악입니다. 스스로를 높이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가장 무서운 악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낮은 곳에서 그분만을 높이며 경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죄에서, 악에서, 마귀에게서, 지옥에게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진리가 선명해질 때 우리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10.높은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악들

높아짐, 교만은 모든 악의 시작이며 뿌리입니다. 세상에는 거짓, 음란, 더러움, 미움, 분노, 사악함등 수많은 종류의 악들이 있지만 교만과 관련되지 않은 악은 없습니다. 낮아짐, 겸손함이 모든 아름다움과 선의 시작이며 뿌리인 것과 같이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며 지옥의 모든 악들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이냐, 겸손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그가 지옥의 사람이냐, 천국의 사람이냐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실제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교만해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결코 주를 가까이 알고 교제할 수가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주의 영과 교만한 영은 전혀 다른 근원,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세상의 중심 사상

모든 사상과 영들은 두 가지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에서 온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낮아짐의 영이 낮아지게 하며, 천국의 빛과 은총이 임하게 합니다.또 하나는 지옥에서 온 것이고, 마귀로부터 온 것이고, 높아짐의 영이 높아지게하며,지옥의 어두움과 재앙이 오게 합니다.이 두 영들 가운데 전쟁이 있습니다.

12. 지옥의 중심사상

마귀가 이 세상에 계속 주입하고 있는 사상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는 높은 곳에 오르려다가 떨어진 자 입니다. 그것이 그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모든 이들을 높음을 추구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옥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합니다. 지옥이라고 하면 항상 타오르는 불이 있으며 구더기도 죽지 않는 무서운 곳을 연상하지만 그것은 심판이 이루어진 상태의 지옥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속성과 상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지옥의 특성은 높아지려는 것입니다. 모두가 서로 높아지려고 싸우는 곳입니다. 지옥이 지배하는 세상은 오직 높아짐을 가르칩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에도 높아지기 위한 경쟁과 싸움과 전쟁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옥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의 특징입니다.

13. 격투기와 같은 지옥

지옥은 격투기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서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하여 때리고 파괴하려고 애를 씁니다. 승자는 영광을 얻고 패자는 비참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거기에는 진정한 승자란 없습니다. 많이 때리는 자는 이기고 적게 때리는 자는 집니다. 그러나 많이 때리든 적게 때리든 어차피 파괴와 죽임에 동참하는 자들이며, 이기는 자도 아프고 지는 자도 아픕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격투기와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를 향해서 싸우고 경쟁합니다. 다른 이를 쓰러뜨려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옥의 구조이며 높아짐을 추구하는 이들의 구조입니다. 1등도, 2등도, 꼴찌도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꼴찌는 패배감을, 2등은 아쉬움을, 1등은 두려움을 얻습니다. 그 세계에서 나오지 않는 한 지옥적인 세상의 구조에서는 아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14. 민주주의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가 성경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란 ‘사람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다수의 지지를 받는 자가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다수가 옳다는 사상이 없습니다. 다수결로 한다면 여호수아와 갈랩은 10:2라는 과반수가 넘는 압도적인 차이로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다수는 진리를 향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만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들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면 그들은 옳은 것입니다.

15. 보이는 것의 파괴력

이 시대 문화의 중요한 특성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영상문화의 시대입니다. 마귀는 항상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유혹할 때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의 정신을 사로잡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사람의 뇌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다윗도 삼손도 하와도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죄를 범했습니다. 눈으로 들어온 것은 몸을 지배하고 욕정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항상 보여주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유혹하는 마귀의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무뇌아 세대라고 합니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사고하는 것을 싫어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저 단순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배후에는 최면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영상문화의 영향이 있습니다.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된 사람은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뇌를 점점 더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뇌아 같은 상태가 됩니다.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16. 높임을 받는 부자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하셨는데 왜 오늘날에는 믿는 자들까지도 부자가 되기를 소원하며 그것을 복이라고 여기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보다도 세상이 가르치는 것에 더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어디서나 사람들이 자신들을 높여주고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더욱 더 천국과 멀어지게 됩니다. 높아지고 싶은 욕망, 으뜸이 되고 싶은 욕망에 세뇌가 되면 이미 그의 영혼은 안전하지 않고 타락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미 그의 영혼은 세상 왕국, 어둠의 왕국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아지고 싶은 이들은 결코 사단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17. 권리의식과 높은마음

권리를 주장할 때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비참해집니다. 공격적이 되고 주장하는 자세가 됩니다. 자기를 어떤 식으로 사랑해 달라고 긴 목록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조그만 친절에도 감격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많은 것을 해주어야 하고 그래도 불만이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권리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이 요구하고 싸우고 상처받으며 비참해집니다. 가정도 깨지고 직장도 깨어지고 모든 관계들이 지옥과 같이 됩니다. 그 시작은 높은 마음이며 권리의식에서 오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종들만 있는데 행복합니다. 이 땅에는 주인들만 있고 권리만 있는데 불행합니다. 온통 잘난 사람들만 있고 뛰어난 사람들, 옳은 사람들만 있어서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18 피조물의 행복

시계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의자는 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등은 빛을 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고장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리를 하게 됩니다. 의자는 앉으려고 수리를 하는 것이지 의자의 행복을 위해 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드신 자 안에서 만드신 자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인간도 행복해집니다.
왜 인간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왜 인간이 멋대로 살아야 합니까? 왜 인간이 스스로를 높여야 합니까?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습니까? 시간이 우리의 것입니까? 우리의 몸을 우리가 만들었습니까?
어떤 이들은 눈이 아름답다고 자기를 높입니다. 하지만 그 눈을 만드신 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높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도둑질입니다. 자신의 근원을 모르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19.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주님

주님은 이 땅에 낮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왕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부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학문이 많은 자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한 능력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타나서 로마를 격파하고 그들을 구원해 줄 강하고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이처럼 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올 것이라고는 그들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는 주님은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시며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낮아짐의 비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그 구속의 원리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든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이들에게 이 진리는 숨겨져 있습니다. 높아짐에서 모든 저주가 시작되며 낮아짐에서 모든 은총과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낮은 곳으로 오신 그 예수를 따라가려면, 진정한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낮아져야 한다는 진리가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을 것입니다.

20.주님께 속한 사람들

이 세상의 가치관은 높은 자리에 있으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으면 신앙이 좋다고 여기고 예수와 가까울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이가 실제적으로 예수를 알고 예수와 가깝다면 그러한 이들은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의 말을 하고 예수의 행동을 하며 예수의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유와 권력과 명예와 같은 외적인 것이 아닌 예수에게 속한 삶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외적으로 아는 것과 내적으로 아는 것은 다릅니다. 내적으로 예수를 아는 이들은 반드시 삶과 인격에 그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21.주님의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사역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은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사망이 왔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담이 망쳐놓은 것을 원상 복귀해야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담이 행했던 모든 잘못을 반대로 행하심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먹는 것으로 범죄했기 때문에 주님은 금식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담이 마귀의 유혹에서 졌기 때문에 주님은 마귀의 유혹을 받고 이기는 경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담과 하와가 겪었던 동일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마귀에게 경배한 것과 같이 되었으나, 주님은 마귀에 대한 경배를 거절하셨습니다. 아담은 높아짐을 추구하였으나 주님은 높아짐을 버리고 낮아짐을 추구하셨습니다. 아담은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으나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님은 모든 것을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22.십자가는 굴욕의 극치이다

주님은 자기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해를 받지 않도록, 덕을 세우기 위하여 오직 법과 질서에 순복하셨습니다. 주님은 권세를 누리러 오지 아니하셨고 오직 의무를 다하고 순복하며 대가를 지불하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낮아짐이며 희생하는 것이며 굴욕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교만과 불순종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주님은 굴욕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십자가는 주님 사역의 핵심이며 굴욕의 극치입니다. 십자가, 채찍에 맞음, 온갖 모독과 굴욕, 수치를 당하는 것…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비참합니다. 그것은 실패한 사역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진정한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굴욕당함과 죽음으로 인하여 마귀의 권세가 무너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감추어진 비밀이었으므로 많은 이들은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실패로 수치로 보았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많은 믿는 이들도 십자가와 낮아짐의 비밀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3. 십자가는 마귀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마귀의 무기는 사람을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면 그는 마귀의 소유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 높임을 거절하면 마귀는 그를 지배할 수 없으며 그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높아짐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시자 마귀는 사람들을 충동하여 온갖 조롱과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때 주님이 분노하셔서 그 굴욕의 길을 떠나면 마귀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갖 조롱과 온갖 수치에고 불구하고 주님은 묵묵히 순종과 굴욕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치명적인 충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24 진정한 사역은 낮아짐의 사역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 사역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긍지를 느끼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종이 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위대한 종이 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영광을 받고 싶어하고 명예를 좋아하고 명령하기를 좋아하는 사역자가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영혼을 마귀에게서 해방시키는 진정한 사역에 대해서 모르는 것입니다.
사역은 굴욕을 당하고 비천해지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사역이란 주님과 같이 버림받고 피를 흘리며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희생을 싫어하며 버림받음을 싫어하고 오해받는 것과 비난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는 사역의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이들은 사역의 열매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25. 높은 마음의 사역자는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대단한 종으로 여기는 사람들, 훌륭한 사역자로 여기는 이들은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지성과 지식을 자랑하며 다른 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자신을 특별한 종으로 여기는 이들, 자신의 탁월한 성경 해석과 설교에 대해서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를 기대하는 이들, 다른 이들이 그를 잘 대우해주지 않으면 불쾌히 여기는 이들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한 이들의 영혼은 주님과 가깝지 않으며 그들이 하는 사역은 주님께 속한 사역이 아닙니다.

26. 낮은 사역자를 일으켜야 한다

지금 온 세상에 높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온 세상에 높은 비전이 가득합니다. 온 세상에 높은 자리를 위한 경쟁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싸움과 불안과 두려움과 상처와 온갖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낮아짐은 천국의 비밀입니다. 낮아짐은 지옥의 세력을 제어하며 천국의 문을 엽니다. 천국은 결코 높은 마음으로 이를 수 없으며 엎드림과 무릎으로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은 이 세상에서 감추어진 길입니다. 영광을 받고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굴욕을 겪고 버림을 받으며 낮은 자리를 갈망하고 사모하며 구하는 이들에게 그 놀라운 문은 열릴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자들은 더 이상 마귀에게 괴롭힘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27.영이 다르면 서로 고통스럽다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고통을 느끼며, 겸손하며 선의로 가득한 사람은 악의와 분노로 가득한 사람의 옆에서 고통을 느낍니다. 반대로 적의가 가득한 사람은 선의가 많은 사람의 옆에서 고통을 느끼며 그들을 위선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의 곁에서 고통을 느끼지만 악한 사람들도 선한 사람들의 곁에서 고통을 느낍니다. 그것은 서로 성질과 파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8. 낮은 마음은 임재와 열매의 비결이다

우리가 낮아지기만 한다면, 절망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무력함을 충분히 깨닫기만 한다면 그 다음의 책임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낮아지지 않는다면, 아직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스스로 해 나가야 합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용서하며 스스로 담대해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열매도 없으며 긴장과 전쟁도 끊이지 않는 힘들고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9.기도는 주님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기도응답이라고 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필요한 어떤 부분에 대한 공급을 받는 것, 우리의 소원들이 응답을 받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의 응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에 대한 응답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친밀하게 누리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30. 깊은 절망의 기도가 필요하다

저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을 여러 번 겪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극도의 공포감과 절망, 막다른 삶의 한계상황을 여러 번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깊은 탄식과 슬픔과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가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것인지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이전에 내가 낮은 기도, 깊은 고통과 절망의 기도를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도는 낮은 기도이며 절망의 기도인 것을 나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충분히 경험하고 배우기까지 내가 준비되기까지 그의 임재를 부으시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총뿐이라는 것… 그것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낮고 처절한 절망의 기도, 갈망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31. 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

기도를 시작하면 어느 순간 마음의 후련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가벼움과 편안함을 맛보게 됩니다. 절망과 눈물은 차츰 감사와 기쁨의 눈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떻게 잠깐동안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기도응담의 경험입니다. 절망과 슬픔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으나, 낮고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엎드려 아픔을 토하고 주의 긍휼을 구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32. 낮아짐의 능력

낮아짐에는 사단의 세력을 잠잠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그것은 전혀 능력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알고 있는 능력과 다릅니다. 그것은 무기력해 보이며 실패와 같이 보입니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잡혀서 끌려가서 재판을 받고 매를 맞으며 모욕을 당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능력이며 승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십자가 사건과 보혈의 능력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죄사함과 구원과 관련이 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주님의 십자가와 굴욕을 수치나 실패로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33. 굴욕은 재앙을 소멸시킨다

무릎을 꿇는 것은 굴욕입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굴욕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기 때문에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이 아무 죄가 없이 굴욕을 겪고 수치를 당하셨는데 수시로 많은 죄를 짓는 우리가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굴욕을 싫어하며 자신의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시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 그를 따른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34. 수치당함이 화해를 이루다.

인터넷이든 현실이든 비난받을 때 그것을 변명하고 방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비난이 옳든지 그르든지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아무 말없이 끌려가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호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주님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비난에 대한 하나의 변명은 열 개의 비난과 증오를 일으킵니다.

35.부흥은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

부흥은 외적인 숫자의 증가나 외적인 형상들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적인 변화와 열매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것이 증가되고 커지는 것을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재산이 늘었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졌다고 해서 그것을 부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흥이란 하늘에 속한 요소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천국에 속한 요소가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땅의 풍성함이 아니라 하늘의 풍성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죄인의 심령에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이 강하게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36. 참된 부흥이 올 때

참된 부흥이 올 때 사람들의 심령들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촛물처럼 녹아지고 변화됩니다. 거기에는 거룩함이 있으며 영광이 있으며 놀라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광의 흔적이 있으며 천국의 흔적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처절한 자각과 회개와 애통이 있으며 하늘의 기쁨과 위로가 있으며 영혼들의 변화, 새로워짐이 있습니다. 영적 각성이 있습니다.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간에 삶과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며 부분적으로 천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37. 교회사에 있었던 부흥들

부흥이 임할 때 거기에는 항상 넘쳐흐르는 감격이 있었고 죄에 대한 무서운 자각, 회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건하고 고요한 집회가 아니었습니다. 찰스 피니를 통한 부흥에서도 그러한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울고 떨고 흐느끼고 주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는데 죄를 회개하는 소리가 너무 크고 죄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의 비명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는 한참 동안이나 설교를 멈추어야 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가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때도 그와 같은 통회와 감격과 회복이 있었습니다.
부흥에는 항상 깊고 처절한 회개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폭풍처럼 임하실 때 사람의 영은 아주 맑고 예민해져서 사소한 죄라도 아주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아래서 자신의 더러움과 악함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38. 부흥에서 자신의 상태를 봄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문제는 자신의 비참한 영적 상태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얼마나 자신의 영혼이 메마르고 어두운 상태에 있는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잠시라도 경험한 이들은 그 빛 가운데 자신의 어두움이 드러나므로 자신의 죄성과 악과 더러움에 대하여 예민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것에 대하여 고통을 받고 새롭게 되는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부흥을 맛 본 이들만이 부흥에서 멀어지게 될 때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지 인식하게 됩니다.

39.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지 않는 이유

부흥을 방해하는 것은 높은 마음입니다. 사람을 죄짓게 하고 영적으로 타락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도 높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높은 마음들이 처리되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부흥은 올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흥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목이 좋은 곳이 필요하고 건물이 필요하며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업에서 고객을 관리하는 방법이지 영혼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한 테크닉은 부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주차장은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편의를 제공하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부흥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40. 회개를 막는 높은 마음

오늘날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둔감합니다.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자주 상처를 받으며 억울해 하지만 자신의 죄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눈으로, 생각으로 범죄를 하고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나 함부로 말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더러운 말과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에 대해서 듣거나 지적을 받으면 불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높아졌고 영적인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41. 낮음과 절망을 일으키는 사역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높아지게 하는 사역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을 낮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고 위로하며 힘을 주는 측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고 낙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부흥이 가까이 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비참한 상태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자신만만하며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회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이란 절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높은 마음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구원과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2. 사람을 낮추시는 주님

주님의 복음 전도 방식은 오늘날의 방법과 많이 달랐습니다. 오늘날의 전도자들은 듣는 자들을 잘 설득하고 달래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의 안에 진리에 대한 열망이 없을 지라도 그들의 마음이 높을 지라도 하나님을 낮추고 복음을 낮추고서라도 주님을 영접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식의 복음 전도는 진정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시지 않았고 달래지 않았습니다. 쉬운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안하고 좋은 길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진정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절망하고 낙담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오시는 길입니다.

43.낮은 마음과 부흥

부흥이란 주차장의 넉넉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물질이 넉넉해지는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들과 테크닉에서 오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배운 여러 마케팅 기법들을 통해서 오지 않습니다. 부흥은 배가 부른 사람들이 많을 때 오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이 가득한 곳에 오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이 온전하며 부족함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 곳에 오지 않습니다.
부흥은 낮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교회에 낮은 마음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때, 부흥을 갈망하며 우는 이들이 많을 때, 사모함으로 통곡하는 이들이 많을 때 부흥은 시작됩니다. 가난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로 인하여, 자신의 완악함과 사랑 없음과 더러움으로 인하여 슬퍼하고 고통하며 통곡하는 무리가 증가될 때 주님이 임하십니다. 죄에 대한 고통이 일어날 때, 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들이 증가될 때 주님이 오십니다. 부흥이 옵니다.

44. 고통에서 시작되는 부흥

부흥은 고통과 절망과 신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낙관적인 마음에서 오지 않습니다. 부흥은 탕자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모습에 처절하게 절망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너무나 절망이 부족합니다. 너무나 비전이 많고 희망이 많습니다. 슬픔을 보기 어렵습니다. 너무 낙관적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진정한 능력이 없습니다. 부흥은 사역자가 절망하고 탄식하며 깊은 슬픔과 갈망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가까이 옵니다. 사역자의 절망과 고통의 기도가 부흥을 위한 재료입니다. 서로 지적하고 돌을 던지는 것에 의해서 부흥이 오지 않고 절망하며 고통하고 자신을 던지고 희생하는 사역자, 영혼들로 인하여 부흥이 옵니다.

45.복음전도자의 중요성

오늘날 복음전도 사역에 있어서 중대한 약점은 복음 전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복음 전도의 방법이나 전도 대상자의 영적 상태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말씀의 중심과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핸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전도자와 피 전도자의 영적 상태입니다.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복음 전도의 바른 방법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제자들은 항상 그런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움직였으며 결코 아무 때나 함부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함에 따라 전해야 될 사람에게 전했고 전하면 안 되는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았습니다.

46 전도는 인격적이어야 한다

현대 전도의 중요한 문제점은 막무가내의 비인격적이며 억지스러운 전도의 방식입니다. 끈기 있게 대상을 물고 들어져서 끝없이 귀찮게 해서 결국에는 굴복시키는 전도의 방식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상대방의 영혼에 대한 열정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전도 방식은 영적인 방식이나 주님께 인도받는 방식이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일방적으로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서 무엇을 강요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거절하는 이들에 대해서 애걸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대처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마10:11-15)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억지로 강요하고 설득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닙니다.

47 복음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고 찾는 것이다.

주님은 복음을 가지고 사람을 설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이 상하고 낮고 준비된 죄인을 찾으신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가 마음이 준비된 자이며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일까요? 그것을 아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부흥이 낮은 마음에서 오는 것처럼 복음도 낮은 마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에 비가 오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복음도 높은 하늘에서 낮은 마음과 심령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며 눌린 자,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은혜가 임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가난을 물질적인 가난으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심령의 가난한, 마음이 가난한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물질적으로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부자를 높여주며, 대접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부자들은 복음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부자들에게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마음과 심령이 과연 낮은 사람인지. 주님과 복음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인지에 대한 분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48. 하나님과 복음을 낮추는 경향성

오늘날 이 시대는 좀 더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낮추는 대신에 하나님을 낮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인간이 그 앞에서 엎드러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낮아지며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같이 여기는 신앙의 형태가 오늘날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얻는 것, 구원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교회에 끌어들이고 숫자를 늘리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자칫하면 복음의 내용, 텍스트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복음의 변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복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지만 복음의 중심 본질이 변질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49 복음을 쉽게 여긴 결과

복음은 생명보다 귀한 것이며 천하의 보화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준비 없이 함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이 상하고 낮고 갈망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의 가치는 너무나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하찮게 여기며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사람들이 쉽게 교회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높이지도 않으며 교회가 인간 중심의 장소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에 천국의 은총이 임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과 거룩하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외적으로는 크고 발전한 것 같지만 내적으로 약하고 열매가 부족한 것은 하나님 중심의 복음보다 인간 중심의 복음으로 변질된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50. 마음이 낮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

교회에 배부른 사람들이 많다면, 부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 영적인 갈망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지위를 얻게 된다면 그 교회는 영적으로 약해지고 병들게 됩니다. 교회에 부유하고 마음이 높은 자가 가득할 때 그것은 타락과 재앙의 시작입니다. 주님께 대한 갈급함과 눈물이 없으면 주님의 영은 소멸되며 교회는 죽어갑니다.
전도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배가 부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음식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을 찾아서 음식을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아무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낮은 사람과 상한 사람이 오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마귀 체제하에서 절망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다른 주인을 찾기 위해서 복음을 받고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높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마십시오. 묻지 않는 자에게 해답을 주는 것은 옳지 않으며 배부른 자에게 억지로 먹이는 것은 지혜로운 방식이 아닙니다.

51. 낮음의 향기,천국의 공동체

마음이 높은 이들은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사람을 이용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높은 이들의 모든 인간관계는 허무할 뿐이며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관계일 뿐입니다.
높은 마음과 높은 사람들의 관계에는 배려가 없습니다. 이기심과 무시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에는 고통과 상처가 끊이지 않습니다. 높은 마음의 사람이 있는 곳에는 오직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가까워도,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만남이라도 그러한 만남에는 서로 간에 상처만 남을 뿐 교제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년이 되었을 때 마음이 높은 이들은 지독한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마음이 높은 이들은 항상 혼자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인생의 중요한 기쁨인 교제와 나눔에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52. 마음이 낮은 이들의 향기

마음이 낮은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혈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낮아지게 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분노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에 수시로 올라왔던 짜증과 분노가 이상하게도 사라져서 마음이 평화롭게 된 것을 느끼고 놀라게 됩니다.
낮은 이들이 함께 있을 때 거기에는 혈기와 짜증과 분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 공간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낮은 사람들은 온유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함께 하기가 편안합니다. 대화를 나누기에도 편안함이 있습니다.

53. 다른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

마음이 낮고 온유한 사람들의 대화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자기를 높이지 않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상대방을 배려해주고 상대방이 말을 할 때는 온전히 경청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즐거움으로 들으며 상대를 세워주기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행복해지며 마음을 깊이 나누게 되어 아름다운 대화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가 없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으며 마음의 깊은 정서를 부드럽게 서로 나눌 때 그것은 서로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며 깊은 일치감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에 지배하거나 강요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아무리 급해도 남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남이 억지로 마음이 없이 돕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천국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한데 주님은 자원하는 심령을 원하시며 결코 억압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분이십니다.

54. 기쁨이란

기쁨이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과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갈등이나 마음속의 서운함이 있어도 나는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관계를 파괴하고 영혼을 파괴하는 마귀의 수법을 나는 결코 방관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못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에 있는 아주 사소한 불편함도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55. 장화신은 고양이

장화신은 고양이는 거인 마법사가 사는 성으로 가서 거인에게 “당신은 사자로 변신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거인이 우쭐되며 사자로 변신하자 고양이는 너무나 무서워서 덜덜 떠는 척을 하며 “그러나… 쥐 같은 작은 동물로 변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고 약을 올립니다. 거인은 “그런 것쯤” 하고 생쥐로 변신하지마자 장화신은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어버립니다.
사람을 높아지게 하는 것은 마귀의 작전이고 무기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높아졌을 때 얼마든지 그를 자기 수하에 두고 요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높이고 기분 좋게 하고 스스로 위대한 존재로 여기도록 밤낮 쉬지 않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마음으로 살다가 고양이에게 잡혀 먹히는 어리석은 거인이 되지 마십시오.

56.깊은 곳에서의 유혹

사역자가 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영적 지도자가 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간단합니다. 그것은 함정을 파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함정을 파고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사역자의 타락에 대하여 돌을 던지고 비난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의 타락과 부정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다른 이들을 정죄 할 수가 있을까요? 넘어진 사람들도 한 때는 주님의 아름다운 은총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주님께 헌신하며 낮은 마음으로 겸손하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의 그 낮음을 유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많지만 변화와 생명을 위한 도구가 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변화와 생명은 돌을 던져야 오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지고 중보하면서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던지는 이들로 인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7. 낮은 곳만이 안전하다

오직 낮은 곳만이 안전하며 오직 낮은 곳에서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디 당신의 위치를 지키십시오. 자신을 남보다 나은 존재로,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할 존재로 여기지 마십시오.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즐거워하지 말며 그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항상 좋은 대우를 약속한 후에 그 영혼을 노략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낮은 길과 좁은 길과 십자가를 요구하시면서 그 후의 풍성한 삶을 보장합니다.
마귀의 유혹을 거절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낮고 좁은 길을 선택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 길을 가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이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세상에 숨겨진 천국의 희락과 행복을 누리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58. 인간은 위대하지 않다

위대한 존재가 되도록 힘을 주고 부추기는 것은 세상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의 중요한 전략입니다. ‘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하는 메시지를 우리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거기서 그리스도를 빼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꿈을 가지게 합니다.
세상의 영들은 인간을 대단한 존재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을 높이고 우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존재였다는 식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사람을 높이고 우상시할 때 그리스도가 낮아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59. 유명해지고 싶은 목망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원치 않아도 존경을 받으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좋게 평가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어떤 이를 주님이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러한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이 없는데 혼자서 위대해지는 것을 꿈꾼다면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소원이나 비전이나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위대함에 대한 비전은 사단이 사람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0. 요셉의 꿈은 비전이 아니다

흔히 비전과 관련되어 인용되곤 하는 요셉의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꿈이란 꾸어지는 것이지 내가 꾸고 싶어서 꾸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꾼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니고 그의 미래에 성취될 계시에 가까운 것입니다. 예언적 증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나중에 그가 에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기근을 피하여 에굽에 도착한 그의 형제와 부모들에게 은혜를 끼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성취는 비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이며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크고 위대한 꿈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도록 나를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61. 이상한 좌절

나는 목회자들이 심히 좌절하면서 ‘주님, 저 사람들은 저렇게 쓰임을 받는데 저는 이게 뭡니까?’ 하고 기도하거나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어떤 목사님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어느 목사보다 내가 조금도 못한 것이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성공을 못하는 것일까요?’ 하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중심 동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들의 중심에는 주님이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있을까요? 그의 관심사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는 그 목적을 위해서 자신이 쓰임을 받든 남이 쓰임을 받든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지든 간에 그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62 꿈이란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꿈을 이루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주를 따르는 것보다 꿈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 꿈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거기에는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꿈이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저 자기의 마음을 따라 분위기를 따라 일어난 꿈이라면? 그는 정말 인생을 피곤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꿈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입니다. 꿈을 이루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63 희망적이지 않은 주님의 말씀

조심하십시오. 위대함에 대한 비전은 사단의 중요한 무기입니다. 사단은 항상 위대하고 대단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사단은 주님께도 휘황찬란한 세상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그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랍고 찬란한 영광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 영혼을 노략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제자들에게 위대함이나 안락함에 대한 메시지를 거의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분이 길이며 진이리며 생명이라고 하셨고 그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면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게다가 주님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각자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좀은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은 언뜻 보기에 매력적인 길은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어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드러난 길이 아니며 감추어진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한 걸음씩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감추어진 보화가 거기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놀라운 만족과 행복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심령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자유를 맛보게 되면서 비로소 그 길이 진리이며 숨겨진 천국인 것을 경험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64. 경쟁은 인간을 파괴한다

기본적으로 경쟁이란 인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방식이 아니며 영계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늘의 방식과 땅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학생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지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자기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좀 더 지독한 사람들이 경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렇게 경쟁에서 세상에서는 높여주고 칭찬하고 받들어줍니다. 그리고 패배자들은 분노와 좌절과 체념과 패배의식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러한 경쟁이 사단의 세상 통치 방식입니다. 이 체제에 들어가게 되면 그 누구도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65. 비교와 경쟁은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원흉

아무나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체제에서 공부란 거의 이해력과 암기력 등 뇌의 일부가 발달된 사람들에게 유리한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재능을 타고 태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어떤 이들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단은 이 세상을 끊임없는 경쟁의 체제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뇌의 이해성이 뛰어난 사람을 세상의 1등으로 만들고 물질과 명예와 영광이 지극히 일부의 직업이나 직종, 일부의 사람에게 많이 돌아가게 합니다. 비교와 경쟁은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읽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 백가지의 재능 중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지극히 작은 일부의 재능을 가지고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아주 우스운 일입니다.

66. 특별사명과 일반사명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이라고 하면 신학교에 가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영적인 사명, 특별 사명이라고 한다면 자연적인 사명, 일반 사명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의사의 사명이 있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명이 있고, 장사의 사명이 있고, 가르치는 사명이 있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게 되면 누구나 가슴이 뛰게 됩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각자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격려하며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사명을 따라 일하고 그 열매를 먹게 하는 것입니다.

67. 경쟁은 죄의 결과이다

죄가 있는 곳에 경쟁이 있고 파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으며 압제하는 자가 있고 비명을 지르는 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가 바뀔 수 있을까요? 교육체제가 바뀔 수 있을까요? 정치가 바뀔 수 있을까요? 문화가 바뀔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회개할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세상에서는 경쟁과 비교와 싸움, 시기, 질투, 낙심, 좌절이 항상 끊어지지 않고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 죄의 결과이며 사단이 배후에서 통치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단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해결책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해결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거듭나서 사단의 왕국, 이 세상의 왕국에서 벗어나 사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신분이 바뀔 때만 있는 것입니다.

68. 천국적인 사회, 지옥적인 사회

천국에서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고 지옥에서는 지옥의 사람들이 서로 화합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지만 지옥의 사람들은 서로 증오하고 싸웁니다.
이 세상에서도 천국적인 사회, 거듭난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앞서간 선배들이 뒤에 온 사람들이 뒤에 온 사람들을 접대하고 섬기며 도와줍니다. 그러나 지옥적인 사회, 예를 들어 감옥과 같은 곳에서는 앞서 있는 선배들이 뒤에 온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그것을 즐깁니다. 지옥적인 사회는 강자들이 약자를 괴롭히고 기합을 주며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있습니다. 지옥적인 사회에서 모든 대상들은 다 경쟁자이며 적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다 지체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머리로, 주인으로 모신 한 지체이며 가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하늘에 속한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야망이나 개인적인 뛰어남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게 됩니다.

69. 사역자들은 서로가 경쟁자가 아니다

사역자들은 서로 서로에 대하여 비교하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다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들은 경쟁자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선의의 경쟁자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선의의 경쟁자도 아닙니다. 사역자들은 동역자입니다. 누가 서로 더 낫고 못 낫고의 개념이 아니고 서로가 다 동역자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교회는 너무 경쟁과 비교와 견제가 많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교회나 다른 사역자를 시기합니다.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고 도우며 서로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누가 나은지 경쟁합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막대한 자원의 낭비입니다. 그것은 악한 영들만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적들은 마귀인데 믾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적을 모르고 서로 싸우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70. 어떤 이들은

어떤 이들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들은 능력과 은사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들은 활동적이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들은 깨닫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많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용감합니다.
자, 어느 것이 가장 온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쪽이 신앙이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서로 판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협력하여 온전함을 이루어 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주고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를 통하여 얻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재능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틀렸다고 부인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71.물질, 욕망, 편안함의 유혹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제멋대로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재앙과 불행에서 벗어나 자유와 기쁨을 얻는 길은 오직 낮은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엎드리고 굴복하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내면적인 것, 영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며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아는 사단은 온갖 그럴듯한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유혹합니다. 그는 속삭이기를 ‘네가 지금 불행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하고 말합니다. ‘돈만 있으면 너는 행복해질 수 있다’ ‘성공하고 유명해지면 너는 행복할 것이다.’라고 속삭입니다.

72. 외적 성취가 높은 마음을 가져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물질의 여유가 있고 소유가 많아지면 사람의 마음은 높아지고 거드름을 피우게 되기가 쉽습니다. 어느 정도 학벌이 좋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되면 마음이 높아지고 눈물이나 갈급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세상적이고 외적인 풍요함에 대하여 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높아지게 되면 그의 영혼은 마비되고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게 되며 천국의 실상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비참함에 대해 눈이 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부족하고 어두운 상태에서 외적인 성취를 누릴 때 생기게 되는 비극입니다. 온 세상에서 영적 갈망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외적 만족에 빠져 주님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비극입니다.

73. 자기애의 함정

자기애(自己愛)란 자기 자신, 자아에 대한 애정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 즉, 자녀를 비롯한 자기 가족, 혈연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같은 것도 자기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평범한 것이어서 믿지 않는 이들은 이것이 왜 죄인지 모를 것입니다. 아니, 믿는 자들도 자기애가 왜 죄인지 모르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기애는 기본적으로 죄이고 악이며, 지옥적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천국의 중심이라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지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지나친 사람들은 결코 지옥의 영들의 공격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저기를 위해서 사는 삶은 당연한 것 같지만 그것은 멸망을 향하여 가는 길입니다.

74. 자기애는 하나님 사랑과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속하고 자기애애 빠진 사람들은 오직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고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낙으로 삼을 것입니다. 자기애애 빠진 사람은 자기의 기질과 이상을 만족시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보다 즐거워합니다.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이를 사랑하고 자기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괴롭히는 자들을 미워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 사랑과 자기 사랑은 근본적으로 서로 부딪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은 자기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75. 이상형과 자아

누구나 자기의 이상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내 스타일이야’하고 말합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자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질적 자아적 애정이 하나님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방해합니다. 그 자아적 애정이 마귀가 그를 사로잡는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 애정으로 인하여 죽을 정도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맞은 것처럼 자아적 애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76. 자기애의 사람은 항상 위로자를 찾는다

자기애가 강한 이들은 언제나 억울한 것이 많습니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깊은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고통속에 살았으며 억울한 일들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하며 항상 자기를 위로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이들은 항상 생각하기를 자기는 너무나 상처가 많기 때문에 충분한 치유가 필요하며 많은 사랑이 자기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적치유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도 진정한 만족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 허무함과 고통은 자기애애서 나오는 것이므로 온전하신 회복과 치유는 자기를 버릴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77. 자기애의 증상

자기애는 수없이 많은 악과 많은 증상들을 일으킵니다. 자기애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소심하고 염려하며 온갖 근심이 끊이지 않는데 그것은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애가 심한 이들은 남들이 다 겪는 사소한 문제가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몸이 조금 아프기만 해도 온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이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자기 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 자기애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존재가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애를 만족시킬수록, 위로를 받고 이해를 받을수록 그들은 더 증상이 심해지며 마귀에게 사로잡혀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8. 자기애(自己愛)가 고통을 만든다.

고통을 진정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기애입니다. 자기애가 심하지 않은 이들은 남에게 심한 대접을 받고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를 그리 불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애의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억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다른 이들이 그를 위로하지 않을 때 ‘당신은 내가 겪은 것을 당하지 않아서 모른다’고 합니다. 자기애의 사람은 가시에 찔려도 뼈가 부러진 사람들보다 더 고통을 느끼고 힘들어합니다. 그것은 그의 의식과 관심이 오직 자기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우주 안에서 진정 억울하신 분이 있다면 그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무 죄 없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많은 고통을 겪었고 버림을 받았으며 무시를 당했고 조롱과 비방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억울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쫓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주님의 억울함과 고통에 대해서 먼저 예민해야 합니다.

79. 자기애를 일으키는 것은 마귀다.

자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남들에게 겪는 부당한 일에 대하여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는데, 자기애가 심한 이들은 남들이 다 겪는 사소한 문제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몸이 조금 아프기만 해도 온 세상이 멸망하는 것같이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자기 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 자기애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존재가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자기애를 만족시킬수록, 위로를 받고 이해를 받을수록 그들은 더 증상이 심해지며 마귀에게 사로잡혀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애의 사람들은 하늘과의 교통이 거의 막혀있기 때문에 하늘의 감동을 받는 일이 드물고 평소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악한 영들의 음성과 감동에 대해서 열려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시로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귀는 “네가 얼마나 억울한지 생각해 봐라, 세상에는 아무도 너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참지 말고 보복을 하라, 이제 아무것도 더 할 수 없고 소용없으니 네 삶을 그만 끝내라 …”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일으킵니다. 자기애애 빠지는 수준만큼 마귀의 밥이 되며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80.사역자라는 자부심의 위험

자신이 목회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과 긍지를 담아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는 것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직업 중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란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며 닮아가는 것이며 자신이 경험하고 누린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급은 목사가 되어 목회사역을 통해서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것은 단순히 주님이 그것을 원하시고 맡기셨을 뿐이지 자신의 잘남이나 대단함에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목사가 된 것을 대단하게 여긴다면 그는 오히려 비참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높은 마음의 사역자는 위험합니다. 사역자가 높은 마음을 가지게 되면 마귀가 그 높은 마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끌게 합니다. 다른 사역자들이나 교회와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들고, 자신보다 유능하거나 존경받는 사역자가 있으면 그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비방하거나 하는 식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사역자로 부름을 받아 목사가 된 것이 오히려 재앙입니다. 마귀는 특히 높아진 마음을 가진 목사들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긍지는 있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하여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81. 영적 경험으로 인한 높아짐

몇 가지 눈에 띄는 은사가 나타나는 이들은 눈에 띄게 높은 자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기도나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무당처럼 반말을 하거나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예언사역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겸손하고 지혜롭게 행하지만 간혹 어떤 이들은 무례하고 방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영적이고 은사적인 경험은 사람을 붕 뜨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영적이라고 생각하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며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정말 위험한 상태인 멸망의 길에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삼층천의 경험을 한 후에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14년이 지닌 후에 조금만 언급했을 뿐입니다. 영적 경험이 공개될 때 나타나는 일은 일부 어리석은 추종자들의 등장과 다수의 비난하고 시기하며 공격하는 이들의 등장입니다. 비판자들이나 추종자들 어느 쪽도 그리스도의 몸에 유익을 끼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귀에게 틈을 줄 뿐입니다.
성숙한 신자란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체험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온갖 체험을 하고도 인격의 수준이 낮으며 이기적이고 경솔하며 남을 배려하지 않으며 자기를 드러내는 이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82. 기도에 대한 자부심

기도를 많이 한다든지, 기도의 응답을 많이 받았다든지 하는 것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부심은 다 좋지 않습니다. 마귀는 아름다운 은총의 도구도 사람을 높이고 부추기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의 시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이들은 일부러 기도의 시간을 늘리기 위하여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깊은 기도와 교제로 인하여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엉덩이를 꼬집어 가며 억지로 기도시간을 늘리려고 애쓰는 것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기도의 분량이 적은 사람들을 ‘저 사람 아직도 기도의 세계를 모르는군! 하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자신인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인데 그것을 통하여 스스로 영광을 취하고 자신을 높인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83. 지적 탁월함에 대한 자만

사람은 기질적으로 몸의 활동력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정서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있으며 지적인 기질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각자의 기질이자 섬김을 위한 달란트이며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중에서 지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높은 마음이나 비판하는 마음이 다른 기질보다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행동적인 사람들을 낮은 수준의 사람으로 여기며 정서적인 사람들도 유치하게 봅니다.
지식이나 지식을 좋아하는 성향은 달란트와 같은 것입니다. 달란트를 통하여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고 섬기라는 부르심이지 자기를 높이고 다른 이들을 깔보라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높은 마음이며 악한 영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지적 자부심이 있는 이들은 비슷한 기질을 가진이들과 함께 논쟁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건설적인 것이 아닙니다. 낮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지적 달란트를 사용하면 주님의 교회에 유익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84.성경 지식에 대한 자부심

자신의 성경지식이나 관점에 대해서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확신을 가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그 확신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거나 자기가 속한 교파의 견해일 뿐입니다. 견해가 다른 이들이 모여 토론을 하게 되면 똑같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서로 자기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역사상 몇 백 년동안 끝나지 않은 토론도 있고 아마 주님 오실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논쟁에 휘말리고 자기의 견해와 같지 않은 이들, 자기와 같은 성경해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을 정죄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진리를 밝히고 사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혹시나 자기 확신에 빠져서 스스로를 높이거나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85.대 학자 아볼로가 작은 형제에게 배우다

초대교회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성경에 관하여 자세히 말하고 가르치기에 열심이었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그에게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굴라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노가다를 하고 있는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천막을 만드는 일꾼인 아굴라에게 신학대학 학장격인 아볼로가 겸손하게 성경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아볼로는 교린도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형제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되었습니다.(행18:27-28)
유대인들은 베드로와 같은 예수의 제자들을 학문도 없는 단순 무식한 사람들이라며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와 같은 지적 엘리트가 성경적으로 유대인들의 논리를 물리치고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자 복음과 진리의 도가 증거되고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유능한 학자 아볼로는 단순한 사람들에게도 배울 수 있는 겸손한 자세로 인하여 그의 지적 달란트를 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86. 재능은 공짜로 받은 것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변이 뛰어난 사람, 음악적, 미술적,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재능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들은 지적인 능력이나 다른 달란트와 마찬가지로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공짜로 받은 것으로 인하여 자신을 높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비범한 재능은 사람을 높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은 더욱 그렇게 만듭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를 거절하고 잊어버리고 낮은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높음의 길, 높음을 추구하는 길이 사람의 본성을 이용한 마귀의 부추김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사람을 높이고 유혹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파괴이며 멸망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이하여 자신을 대단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87. 각종 신앙경력과 훈련으로 인한 높아짐

안타깝게도 훈련 단체나 각종 영성훈련을 하는 곳에서 ‘우리가 최고로 영적이다. 다른 곳들은 수준이 낮다’는 식의 사고를 주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야말로 분열적인 것이며 악한 영들의 손에 사람들이 빠지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세상에 없습니다.
경력은 실제가 아닙니다. 아버지학교를 다녔다고 해서 갑자기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학교를 다녔다고 해서 갑자기 온전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작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받고 배운 것에 대해서 꾸준히 자신에게 적용을 하고 시도해야지, 그것을 단순히 경력으로 삼고 자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한 자부심과 자기 높임은 재앙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성훈련을 받기 전까지는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그 후에 이상해지는 이들이 많습니다. 겸손하고 단순한 사람들이 높은 마음의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고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되고 관계가 깨지게 만듭니다. 훈련과 경력으로 인하여 관계가 불편해지고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훈련과 경력과 배움들이 악한 영들이 역사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88. 주님의 인도 속에서 봉사해야 한다

봉사도, 구제도, 헌금도 아름답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행위가 주님을 통해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될 때 거기에는 항상 기쁨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열심히 하면 거기에는 묶임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의무감과 부담이 있고, 자기처럼 하지 않은 다른 이들을 비판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기희생과 고통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자기와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선행도, 구제도, 섬김도, 봉사도 다 좋은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를 의롭게 여긴다면 그것은 무서운 일이며 비극입니다. 마귀는 자기 의를 일으키기 위하여 온갖 것들을 사용합니다. 영적인 것들, 기도나 영적인 지식이나 성경 말씀이나 리더쉽이나 각종 아름다운 것들을 통하여 높은 마음을 심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한 이들은 항상 남을 향하여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나 같으면 이렇게 할텐데…’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기를 향한 우상숭배입니다. 스스로를 낫게 여기면 은혜가 소멸됩니다. 하나님의 빛이 가까울수록 우리의 의는 사라집니다.

89. 하나님의 빛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빛과 영광에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의는 사라집니다. 자기의 선은 사라집니다. 그 빛은 너무나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찬란하여 우리는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자신의 추악함이 점점 더 드러나고 더럽고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추함과 더러움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자신을 높이고 함부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며 비난합니다. 그러나 찬란한 빛이 임할 때에 아무도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영광의 빛 아래서 모든 이들은 주님 앞에 엎드러져 울며 오직 그분의 궁휼을 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출처:햇볕같은이야기 글쓴이:최용우

댓글 쓰기

비회원 프로필 이미지
댓글 0
194 땅에서 하늘로(1) (James /2015.08.10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35
foreverthanks 2016.07.15 435
193 모바일 작성글 믿음의 사람들의 몇가지 특징 – 정원목사님 [1](희락의 기름부은자 /2015.07.07)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36
foreverthanks 2016.07.15 436
192 땅에서 하늘로(4) (James /2015.06.08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38
foreverthanks 2016.07.15 338
191 땅에서 하늘로(3) [2] (James /2015.06.05)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96
foreverthanks 2016.07.15 396
190 땅에서 하늘로 (James /2015.06.05)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26
foreverthanks 2016.07.15 426
현재글 입니다. 정원 목사님의 낮아짐 1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 /2015.04.30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43
foreverthanks 2016.07.15 443
188 정원 목사님의 낮아짐2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 /2015.04.29)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78
foreverthanks 2016.07.15 378
187 사랑의 고백과 표현은 마귀를 깨뜨립니다… 정원 목사님 [1] (희락의 기름부은자 /2014.12.08 )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17
foreverthanks 2016.07.15 417
186 리차드 범브란트의 간증 (Richard Wurmbrandㆍ1909∼2001) [3] (ApostlePaul /2014.10.15)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24
foreverthanks 2016.07.15 424
185 한국에 임한 영적각성 운동의 주역 이용도목사 [1] (ApostlePaul /2014.05.19)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87
foreverthanks 2016.07.15 387
184 교회를 어지럽히는 험담의 악령을 추방하라 – 프랜시스 프랜지팬 (사도나다나엘 /2013.07.06)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81
foreverthanks 2016.07.15 381
183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ㅋ카페펌) (성령의불(미국) /2013.04.28)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32
foreverthanks 2016.07.15 432
182 은밀한 골방의 능력 –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성령의불(미국) /2013.01.24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48
foreverthanks 2016.07.15 348
181 갈망이 비결이다! (화요 모임에서 나누었던 것들과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씀…) [4] (phillip /2012.10.31)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07
foreverthanks 2016.07.15 307
180 성경에서 계시를 받다 (기독교 계시론) – 나 용화 목사 (ApostlePaul /2012.10.2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510
foreverthanks 2016.07.15 510
179 우리안의 견고한 진 다루기 (David Wilkerson) (phillip /2012.10.02)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24
foreverthanks 2016.07.15 424
178 가장 위대한 능력 보혈(마헤쉬 차브다) 1장(퍼옴) (사랑의생명수 /2012.09.23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17
foreverthanks 2016.07.15 417
177 (2) 미혹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린 미혹하는 가르침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2] (푸른의의나무 /2012.09.20 )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32
foreverthanks 2016.07.15 432
176 (1) 미혹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린 미혹하는 가르침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2] (푸른의의나무 /2012.09.20)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399
foreverthanks 2016.07.15 399
175 성경에서 인생을 찾다 (성경적 인생관, 2012.9.3 일부 수정) – 나용화 목사 (ApostlePaul /2012.08.25 )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5
  • 조회수 : 424
foreverthanks 2016.07.15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