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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목사님의 낮아짐2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 /2015.04.29)

2016.07.1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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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낮아짐의 은혜 2

낮아짐의 은혜 1권과 2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90.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 -혈기가 많음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혈기가 많아서 사소한 일에도 툭하면 화를 내고 작은 일에도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물건을 잃어버려도 분노가 일어나고, 길이 막혀도 화를 내고, 상대방이 통화중이어도 화가 납니다. 상대방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불같은 분노가 일어나고, 자기 마음 먹은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막혀도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는 일이 자주 있으므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가 힘들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불안하고 힘들게 됩니다.
이들은 분노가 마음이 높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며 악한 영들이 그의 안에서 일으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높은 자들의 의식은 대체로 바깥을 향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내적인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모든 문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있고 환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높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지옥의 기운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것은 표현되든 감추어졌든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파괴합니다. 아름다운 은혜와 감동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조금만 화를 내면 곧 그 기쁨과 평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분노는 그리스도인들의 무서운 적입니다.

91.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비판이 많음

비판과 비난은 분노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공격성입니다. 높은 마음을 가지고 높은 위치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정치를 보아도 경제를 보아도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보아도 지도자들도 이들의 눈에는 그저 한심스럽게만 보이고 무엇을 보아도 온통 잘못된 것들이 자꾸 보입니다.
이들은 자도자를 비판하고 공격하며 자신을 옳다고 여기며 자신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존재나 선지자적인 인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이 높은 자들의 비판은 분별이 아니고 비난입니다. 그것은 하는 자나 듣는 자나 망하게 하고, 비난할수록 그 영혼은 어두워지고 듣는 자의 심령도 상하게 됩니다.
마음이 높 은이들은 항상 비판을 하지만 그들의 심령은 결코 만족과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항상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납니다. 그것은 세상과 환경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높은 곳에 있어 그 심령에 어두움이 가득한 이들은 세상의 어두움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92.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 가르치려는 성향

주님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운 가르침은 듣는 자의 심령을 시원하게 하고 깨우침을 주며 어두움과 묶임에서 해방되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인간적인 가르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오히려 분쟁과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높은 이들은 자기확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확신과 깨달음을 자꾸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지식이나 사상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충분한 경험과 열매와 논증이 부족하더라도 자기의 성향에 맞는 것은 곧 좋아하고 확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평생 동안 그 분야에 있었던 이들을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계속하여 바뀌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깨달은 것이나 경험한 것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최소한 몇 달에서 몇 년은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93.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거스름(불순종)

마음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거스름의 증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권위자에 대해서 순복하지 않고 거스릅니다. 부모에 대해서, 교사에 대해서, 선배에 대해서, 사역자에 대해서, 위정자에 대해서, 기성세대에 대해서 거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스름의 영은 악한 영들이 심어주는 것이며 그 영은 높아짐을 추구하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진 영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입니다.
순수한 영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서 기도하는 것이 어렵고 찬양도 할 수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때문에 기도도 찬양도 모든 것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영을 가지고 있다면 어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거스름의 영을 가지고 있으면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면서도 태연하게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에게 속한 영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을 즐거워하는 영은 복수의 영과 분노의 영과 판단의 영입니다. 심지어 목회자를 비난하고 거스르면서도 그 교회를 떠나지 않고 계속 출석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94.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상처를 잘 받음

마음이 높은 사람들은 상처를 잘 받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높으므로 자아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아가 예민하고 스스로 영광을 받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존심이 아주 세고 칭찬과 영광을 좋아하며 사소한 굴욕도 잘 견디지 못합니다. 자신은 다른 이들을 쉽게 비판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조금만 비판을 받아도 심하게 상처를 받으며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의 사소한 무례에도 극심한 분노와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며, 이게 무슨 망신이냐며 울고불고 온갖 난리를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 사람이 이렇게 상처를 받는지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너무 높은데 있으며 자존심이 세고 자신을 낮게 여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높은 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낮고 낮은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그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평화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95.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 반성을 싫어하고 변호를 좋아함

높은 마음의 소유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반성을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시인하거나 사과를 하지 못합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나는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성격이 그런가봐’ 하지만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마음이 높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 중에서도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 이들은 원망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제일 말이 많고 원망이 많았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는 이들은 항상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갑니다. 그것은 반성하는 것이아니라 억울하다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높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잘못하면 그것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96.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 권리에 대해서 예민함

높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의무보다 권리에 민감합니다. 이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 지불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대강 지나가지만, 자기가 받아야 할 것, 누려야 할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정확합니다.
모두가 서로 사랑 받겠다고, 인정해 달라고, 칭찬해 달라고 주장하며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서운해하고 외로워합니다. 자기를 챙겨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해 서운함을 품고 비난하는 가운데 부부싸움이 생기고 가정이 깨어집니다. 모두가 권리를 주장하면 거기에는 평화가 없고 전쟁이 있습니다. 항상 긴장과 피곤과 갈등 속에 살며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받으려고 할 때는 항상 배고프고 외롭고 허전하지만 주려고 하고 낮은 자리에 서려고 할 때는 진정한 천국과 기쁨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높은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97.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 두려움이 많음

온유한 사람들은 두려움이 적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이들은 마음이 잘 흔들리지도 않으며 화도 잘 내지 않고 겁도 잘 내지 않습니다.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높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겉보기에 강퍅한 사람들, 혈기를 많이 내는 이들,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마음이 두렵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은 불안하고 흔들립니다. 높은 곳에는 안정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분노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분노를 터트리고 다음에는 두려워 합니다. 사소한 일에 분노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낮은 마음으로 내려오지 않는 한 이들은 이 고통스러운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98.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근심과 염려가 많음

마음이 높은이들은 근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교만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내적으로 교만한 것입니다. 이들이 염려와 근심에 잡혀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지 않고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들은 아직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 얼마나 한심하고 미약한 존재인지 충분히 깨우치지 못하고 충분히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능력의 왕이 우리 삶에 주인이 되실 때 더 이상 근심과 염려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99.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외롭고 고독함

마음이 높은 이들은 외롭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높아서 같이 마음을 나눌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높은 산이 평지와 멀 듯이 높은 마음의 사람에게는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기를 존귀히 여겨주기를 바라며 대접해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자기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자기의 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연히 이들은 외롭고 고독해집니다. 외로움은 무서운 질병이며 무서운 증상입니다. 진정으로 낮은 마음을 가지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만 이 비극적인 증상은 사라지게 됩니다. 낮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배려하게 되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면 그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세상에는 어디나 마음이 추운 사람들이 있으며 그러한 이들이 따뜻한 화롯가와 같은 사람의 주변에 모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100.낮아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증상들 -하나님의 임재가 멀리있음

높은 마음이 있는 곳에는 수천 수백가지 고통의 증상이 있습니다. 높은 마음은 지옥의 모든 재앙이 시작되는 기점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마음의 사람들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믿기는 믿어도 삶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높은 마음도 있고 낮은 마음도 있습니다.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다가 다시 순간적으로 자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낮은 마음으로 섬기고 싶다가 다시 어느 순간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마귀는 호시탐탐 틈을 노리며 우리에게 높은 마음을 심어주고 자기 중심의 마음을 심어주며 자기에게 집중하는 높은 마음과 자기 연민과 서운함과 억울함을 심어줍니다. 무릇 깨어있지 않은 이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낮음을 얻고 은혜를 얻으며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당신의 낮음을 보화처럼, 목숨처럼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악한 영들에게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곧 천국을 유지하는 것이며 주님의 임재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01. 하나님은 원수와 대적자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대적자들은 우리를 훈련시킨다 – 우리는 훌륭하고 영적인 지도자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면도 있지만 원수와 대적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가장 일반적인 도구입니다.
대적자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이들을 원망하며 왜 저런 인간이 우리 주변에 있어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속상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이들은 바로 그러한 대적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이끌어줍니다.
우리는 친절한 위로자를 좋아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그러한 이들로 인하여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이들은 대적자가 아니고 오히려 우호적인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102. 하나님은 원수와 대적자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대적자들은 우리를 기도하게 한다 – 대적자는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지속적으로 우리를 강력하게 괴롭히는 대적의 공격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만듭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저 인간만 없으면 행복할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 저 원수로부터 해방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괴로워합니다. 때로 그러한 이들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곳에 가서 더 강력한 대적자와 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과 그 상황을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괴롭히는 역할을 하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대적자와 원수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경험을 허용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훈련과 정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적자를 허용하십니다. 우리는 이 훈련으로 인하여 낮아지고 하나님의 뜻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103. 하나님은 원수와 대적자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대적자들은 우리 자신을 보여줍니다. – 왜 우리는 대적을 인하여 힘들어하며 상처를 받을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이 높은 곳에 있으며 본능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니 본능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 접대받으며 높임을 받을 때 즐거워합니다. 본능적으로 자기를 건드리거나 무례하게 대하거나 비난할 때 불쾌하게 여기며 화를 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다릅니다.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더 이상 본능에 거하지 아니하고 자신 안에 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를 거스르는 사람을 보고 고통을 느끼며 자기를 거스르는 이들을 보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주를 무시하는 사람을 보고 고통을 느끼며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보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적과 원수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04. 하나님은 원수와 대적자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대적을 통한 메시지를 흡수하라 – 대적이 우리를 괴롭힐 때마다 ‘주님 저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주님이 대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것은 고생만 많이 하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시간낭비이며 인생의 낭비입니다.
주님은 대적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를 사랑하며 높임을 받기 원하며 높은 곳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주님의 영광을 구하기 보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절망하고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대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원수는 내 안에 있습니다. 저 사람들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저들은 나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희생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낮아지게 되면 대적은 그의 임무를 완수했으므로 더 이상 우리의 근처에서 얼쩡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라지거나 아니면 변화되어서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대적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자기의 일을 할 것입니다.

105. 하나님은 가시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자녀들로 인한 고통 – 자녀들은 부모들의 처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좋은 모습만 닮은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아직 처리되지 않은 약점까지 닮습니다. 자녀들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이유는 자녀들 안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거듭나기 전의 옛모습이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많은 경우 어린 자녀들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며 자녀의 잘못된 행동이나 성향은 아직 부모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거울이고 그림자입니다. 아직 어린 상태에서 자녀가 죄를 짓거나 악행을 한다면 부모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아직 부모의 그림자이며 부모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낙담하고 낮아짐으로 주님 앞에 엎드러지게 하기 위해 자녀의 가시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은 마음으로 주님앞에 나아가서 자녀의 죄로 인하여 기도하고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를 받아주시며 용서해 주시며 깨닫게 해주십니다.

106. 하나님은 가시를 사용하여 우리를 낮아지도록 훈련하신다.

수하에 있는 가시 – 가시의 역할을 하는 이들은 자녀들뿐만 아닙니다. 가까이 있으며 우리의 권위아래 있지만 순종하지 않고 우리를 찌르며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으면서 대놓고 우리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예의를 가장하며 은근히 괴롭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시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 가룟 유다를 들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들을 우리 가까이 있도록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기 위하여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마10:29)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누리고 경험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동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에 사로잡혀서 자칫하면 자신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칭찬이나 존경을 즐길 수도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와 고통은 높은 마음을 소멸시킵니다. 극심한 고통과 연약함 속에서 자고하는 마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자신이 그렇게 아프고 약하고 넘어지고 부족한데, 그러한 자기의 한심한 모습을 보면서 자고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107.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본능적으로 사람은 편안하고 고통이 없는 환경을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보다 우리의 내적인 상태, 영적인 상태에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천국에 속한,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시켜 가십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과 심령이 낮아지게 하시고 온전히 주를 바라며 순복하도록 훈련하십니다. 우리의 낮아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장치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도 멸시를 받으셨다.
-다윗도 멸시받는 삶을 살았다.
-요셉은 어린 시절 멸시를 몰랐으나 멸시를 받으러 에굽에 팔려갔다.
-꾸지람 없이 자란 아도니야 착각 속에서 비참하게 죽다.
-편하게 자라서 욕망으로 인하여 죽은 암논
-극진한 사랑으로 자라 극악무도한 사람이 된 압살롬

108.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천대받는 환경은 아름다운 것이다. – 오늘날 이 시대에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환경과 여건이 아름다운 것이며 복이라는 인식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에 사랑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아쉬워하며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서, 상처를 많이 받고 자라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자신의 죄성이나 문제를 합리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멸시를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의 경험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유산입니다. 고통 없이 자라고 사랑을 받고 자라고 높임을 받고 징계가 없이 자라는 것,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형제들끼리도 돈 문제나 어떤 이득으로 인하여 다툼이 있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귀하게 자랐기 때문에 희생할 줄 모르며 자기중심적입니다. 멸시천대가 없이 귀하게 여김을 받고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자라는 것, 자기 중심적으로 자라는 것은 자녀들에게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으로는 좋아 보일 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비극적인 환경입니다.

109.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멸시를 모르고 자란 이들은 비참하다 – 멸시를 모르는 이들, 멸시의 경험이 부족한 이들, 천대를 모르고 좋은 대접만 받고 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통을 많이 겪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배우지 못한 부모들은 자녀들만은 어려움이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고 싶어합니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따뜻한 정을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못된 행위를 해도 징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멸시를 받지 않은 이들은 낮아짐을 모릅니다. 겸손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배울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순종이 어렵고 비판하지 않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항상 자기가 중심이 되고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높은 마음에서 나오는 수많은 악들이 그들의 안에 있습니다. 또한 징계를 통하여 그것을 교정 받지도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은 악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110.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부러워하는 환경이 부러운 것이 아니다. – 낮은 삶을 모르고 자란 이들, 욕망을 거절당한 적이 없는 이들, 항상 칭찬을 듣고 멸시를 알지 못하고 자란 이들은 비참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많은 자녀들은 아주 불행한 여건 속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위험하며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꾸지람에 익숙하지 않기에 사소한 꾸지람에도 절망하며 사소한 실패에도 깊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온 세상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주 비참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주 무서운 가치관입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며 어른들에게 순복해야 하며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우지 못한 이들은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럽게 느끼는 좋은 환경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많인이들이 불쌍하게 생각하는 열악한 환경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높은 곳에서 자란이들은 불행한 사람이며 오히려 낮은 자리, 낮은 형편에서 자란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것입니다.

111.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시작이 중요하다 -삶이 시작되는 환경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과 의식에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처음에 어려운 여건에서 자라고 멸시와 천대에 익숙하게 자라난 이들은 인생의 후반기에 많은 것들을 성취했다고 하더라고 기본적인 낮음을 유지하기 쉽습니다.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나는 부족하고 하찮은 사람이다’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 기본적인 인식이 자리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시작에서 징계가 없는 사랑을 받으며 칭찬과 인정과 편안함 속에서 자라 거기에 익숙한 이들은 영적 성장이나 정신적인 성장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이 그 마음의 중심에 형성되어 지옥의 영들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들은 많은 재앙과 고통을 겪기 전까지는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높이 생각하며 대단한 존재로 여깁니다. 그들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사소한 무례에 대하여 항의하며 ‘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어요! 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요.’ 하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고 비참한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공짜로 많은 것을 받고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영적 성장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장을 위하여 많은 은총이 필요하며 많은 고통이 필요합니다. 비천함을 경험하며 멸시를 경험하는 것…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배우는 것…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좋은 훈련입니다. 어린 시절에 그러한 것들을 충분히 경험했다면 그것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112.멸시와 천대를 통한 낮아짐

누가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대라 – 굴욕을 잘 견디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며 낮은 심령의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은 그러한 굴욕을 기뻐하지 않으며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성장하지 못하며 지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의 삶은 멸시와 천대와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에만 낮은 곳에 있지 않고 평생을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사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욕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쾌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와 주님을 연합시키는 아름다운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욕을 겪을 때 낮아져야 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 통과해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부디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낮추기 위해서 많은 수치와 굴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당신이 잠잠함으로 감사함으로 굴욕을 통과할 때 당신이 겪어야 할 많은 재앙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훈련과 시험에 합격하십시오. 그리하여 낮은 마음을 얻으십시오. 훈련을 통과할수록 당신은 주님의 풍성하신 긍휼과 천국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고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113.억울함의 경험

항변할 때 흘러나오는 영 –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이 낮아지도록 훈련하시기 위해 허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마음이 높은 상태에 있는지 낮은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억울해 보이는 일을 겪을 때 흔히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항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당한 상황이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말이 안 되는 것이며 합당하지 않은지,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당하는 입장에서 그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그러한 반응을 보이면서 자기의 마음이 높은 상태에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옳고 그름이 아니고, 말하는 가운데 흘러나오는 영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속한 영이며 자아에 속한 영입니다. 자기는 옳고 분하다는 영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영이 아닙니다.
항변을 하고 변호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억울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자기 합리화와 상대에 대한 정죄의 영이 들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약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자신의 말에 듣는 이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상처를 받고 분노합니다. 그러한 분노는 바르지 않은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로 가득하며 변호로 가득하며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에는 악한 에너지가 흐르게 됩니다.
많은 억울한 일을 겪었어도 여전히 잔잔하고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으며 겸손히 자기를 반성하는 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에 우연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며 인도하시며 허용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연같이 보이는 것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는 억울한 일에 대하여 변호하고 분노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14.억울함의 경험

우리가 당하는 억울한 일은 우리가 주님께 행한 일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남들에게 당하는 일들은 우리가 주님께 행한 일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깨닫도록 그러한 일들을 허락하십니다. 예를 들어 다른 이들에게 버림을 받고 외롭다면 우리는 그렇게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외롭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당하지 않고는 상대의 입장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도록 여러 가지 고통들을 겪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고통을 겪을수록 우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 쉬워집니다. 그러나 고통들을 통해서 성장하지 않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고 오직 서운해하고 억울해하기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15.억울함의 경험

억울함은 지옥적인 것이다. – 마음이 낮은 이들은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도 별로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하면서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마음이 높은 이들은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들을 겪고도 자신을 온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람으로 여깁니다.
왜 분노하며 왜 그렇게 억울해하고 변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종의 마음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종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이란 높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억울한 상황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억울함에 대한 인식은 높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지옥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안에 숨어있던 귀신들이 나가면서 ‘억울하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들의 존재가 왜 억울해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억압하고 유혹하여 지옥으로 데려가지 못해서 억울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귀신은 억울한 영입니다.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억울하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또한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악한 영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서로 마음의 파장이 맞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러한 일을 통하여 자신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며 주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귀신은 가까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억울한 마음을 품을 때 악한 영들은 그 사람을 사로잡게 됩니다.

116.억울함의 경험

세상에는 피해자만이 있는가? – 나는 상담을 하면서 너무나 억울하다고, 치유를 받고 싶다는 이들을 무수하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남에게 고통을 주고 억울하게 만들었다는 이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가해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오직 피해자만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예민한 이들, 어느 정도 영적으로 성장한 이들은 항상 자기의 죄가 떠오릅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과거 자기의 잘못이 자꾸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했던 것, 미안한 일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는 기회만 있다면 다시 그들에게로 가서 자닌 일들을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예민하지 않고 영적으로 미숙한 이들, 주님의 마음에 예민하지 않은 이들은 오직 자아에 대하여 예민할 뿐입니다. 이들은 과거에 행했던 자신의 잘못이나 악에 대하여는 둔감하며 오직 자기의 억울함과 상처만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직 치유를 받고 싶어합니다. 자신을 바로잡는 것보다는 위로 받고 힘을 얻고 싶어합니다. 이 시대는 진정 사람들의 마음이 높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둔감합니다. 자신들이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둔감합니다. 다만 자신의 상처와 억울함에 대해서만 예민할 뿐입니다.

117.억울함의 경험

희생의 분량만큼 열매가 있다. -불신자를 전도하거나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이들은 많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보의 원리이며 희생의 원리입니다. 공짜로 아무의 희생도 고난도 없이 쉽게 한 영혼이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피와 눈물과 억울함과 재앙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며 영혼이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싫으면 상대방의 구원과 변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역을 하면서 희생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린것입니다. 잘 가르치고 지혜롭게 말하며 이치에 합당하게 전하면 상대방이 잘 듣고 변화되는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사역자가 피를 흘리는 만큼만 피사역자는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고난이나억울함을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길이며 사역의 길입니다. 불신자와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희생을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118.억울함의 경험

억울함은 하나님의 훈련이다. – 우리는 억울한 일을 겪을 때 그것이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훈련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허용하심이 있으며 분량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에 입을 닫고 침묵을 지키며 변호를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굴복되는 시기로 삼아야 합니다. 훈련의 기간이 언제 끝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수업을 통과한 이들이 실제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학위나 세상의 지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는 모든 부당함에 대해서 비굴한 자세를 보이거나 눌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에 따라서 정당한 항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상태에서도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는 안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복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억울함의 경험은 낮아짐의 훈련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훈련입니다. 그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좀 더 가까이 주님을 알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은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주님께 굴복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주님의 은총이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119.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꿈이 목적인가 하나님이 목적인가? –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따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응답하시기는커녕 우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가져 오너라’ 그것이 사람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꿈을, 소원을, 욕망을 주님은 요구하십니다. ‘그것을 가져 오너라’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꿈, 우리의 애정, 우리의 욕망을 거절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것을 우리에게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주인인지 하나님이 주인이신지를 확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에 꿈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면 하나님은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주인이 되면 하나님은 하인이되는 것입니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위치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되고 해결사가 되어 급할때만 찾는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120.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오늘날 사람들은 꿈과 비전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비신자들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주님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꿈과 비전에 대한 이와 같은 메시지를 많이 듣고 읽었습니다. 그것은 1. 꿈을 가져라! 2.기도하라! 3.믿으라!
이런 메시지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나의 꿈이며 소원이며 욕망입니다. 기도와 믿음음 무엇입니까? 욕망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꿈을 이루어주는 종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역할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이러한 순서를 용납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되면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그의 환경에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 인생에 누가 주인이시냐? 누가 높으냐? 너냐? 나냐? 내가 엎드려야 하느냐? 아니면 네가 엎드려야 하느냐?” 바로 그렇게 물으시는 과정이 꿈의 좌절이며 소원의 좌절이며 욕망의 좌절인 것입니다.

121.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꿈을 함부로 꾸지 말라 – 사역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흔히 세계적인 사역자나 널리 알려진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스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위대한 비전과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과연 꿈의 사람입니까? 요셉이 위대한 꿈을 꾸고 그 비전을 가지고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요셉은 자신이 꿈을 꾸지도 않았고 꿈을 만들지도 않았고 비전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시고 꿈을 통하여 미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셉은 그 인생이 한 참 지났을 때에야 비로소 어린 시절에 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상식과는 배치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꿈을 함부로 꾸는 것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꿈꿀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것도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인생도 사명도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에 주인이 시키는 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대로 꿈을 꾸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권리가 없습니다.
122.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허황된 꿈을 꾸는 영적 어린이들 – 개인적인 비전이나 소원과 목표가 좌절된 후에 마음이 상하고 비뚫어지고 공격적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 때문에 자기가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무엇이 못해서 이렇게 되었나?”하면서 낙심합니다. 환경과 여건이 자기를 망하게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자기가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실수했다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우연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들은 그들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좌절이 진정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한 과정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바르게 깨닫기만 한다면 실패와 좌절은 은혜입니다. 그것은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놀랍고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123.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사람들은 위대한 성취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멋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벨탑은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성취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문제가 생기고 벽이 생겨서 사람들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성취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없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의 욕망을 막으십니다. 알고 구하는 자는 막지 않고 내버려두지시만 모르고 구하는 자들은 막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막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버린 자들을 막지 않으시며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많이 성취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꿈과 소원이 좌절되게 하시며 낮아지게 하시고 더 그에게 연합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부자의 삶은 풍성한 삶이며 행복한 삶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날마다 호화스러운 음식과 사교와 파티를 즐기는 삶이니까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삶을 행복이라고, 성공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도 아니고 성공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욕망을 막지 않고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삶은 생전에도 진정한 내적인 평화를 알지 못하며 영원한 곳에서는 더 비참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124.꿈과 소원과 욕망의 좌절

함부로 꿈을 꾸지 말라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꿈을 꿉니다. 주를 믿는 사람들도 함부로 꿈을 꿉니다. 자신이 성공하는 꿈, 위대해지는 꿈을 꿉니다. 그것은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주권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꿈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우리 마음대로 꿈을 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꿈을 꾸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나는 이것을 전공해야지’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주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초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좌절을 허용하십니다. 꿈과 소원과 욕망이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낮은과 절망을 배우게 하십니다.

125.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아무도 한계상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아슬아슬한 위기의 상황을 겪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삶이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풀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란 우리의 계획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흘러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한계상황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벽에 부딪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한계상황에 접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낮아짐을 가르치시고 진정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126.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가 혼자라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눈앞의 문제들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사40:27-28)
그렇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사정을 아시면서도 그러한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정도로 한계상황에 이르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27.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림 – 사람들은 쉽게 주님을 영접하고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구체적인 자기 절망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신을 의뢰하는 것을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자기의 지성과 경험과 힘으로 사는 것을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절망의 순간에서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절대자를 갈망하며 의뢰하게 됩니다. 고난과 극한 상황을 통하여 잠자던 심령이 일어나고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믿음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통해서 실제적인 믿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한계의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주를 알고 하늘의 권능을 누리는 은총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128.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젊은이들에게, 아직 충분히 절망하지 않은 이들에게, 한계상황에 부딪쳐보지 못한 이들에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갈망하라고 해보십시오.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기도하라고 해보십시오. 그들은 기도하지 않으며 하더라도 중심을 쏟아내서 기도할 줄 모릅니다. 자기 절망을 모르는 이들은 중심으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한계상황에 이르러 자기무능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 열리는 것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제에 가까워지는 놀라운 은총의 시작입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눈물과 고통과 절망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누구도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자기의 한계를 알 수 없습니다.

129.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아름다운 유산 -한계상황을 겪고 그 고난 속에서 건지시는 주님을 경험한 사람은 그러한 경험이 평생의 자산이 됩니다. 그 고난의 수준이 치열할수록 평생동안 그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모든 시련들이 사라지고 편안한 삶을 누릴 때에도 과거의 시련속에 함께 하셨던 주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구원을 경험한 이들은 평생 그것을 기억하며 그때의 기쁨과 감격을 추억합니다. 굶주린 상태에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것처럼 그들은 가장 고통스럼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그것을 가장 의미있는 유산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현재의 편안함 보다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그 때가 좋았어..’하고 말하곤 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통과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며 누구나 지금 먹을 수 있는 기름진 음식보다 과거 힘들었던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허접한 음식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건지신 하나님에 대한 추억은 그러므로 고통을 통과한 이들의 아름다운 유산인 것입니다.

130.한계 상황으로 인도하심

한계상황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 극한상황을 겪지 않은 이들은 많은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가난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며 많은 소소한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사역을 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옳지 않다고 느끼는 것에도 타협을 하는 사역자, 현실의 삶에서 두려워하고 타협하는 성도들, 이들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극한 상황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온 상황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유롭게 되었을 때 사람은 진정 자유인이 됩니다. 생사도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도 죽음도, 온 세상에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영혼이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한의 경험은 은총의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지는 경험을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의 삶은 이전과 같을까요? 아닙니다. 그의 삶과 시각은 전과는 다릅니다.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는 살아있을 때 좀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좀 더 충성된 종으로서 살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는 다시 얻은 기회를 이제는 좀 더 잘 사용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극한의 경험은 우리를 낮아지게 하며 영혼의 한 부분을 깨우며 새로운 감각이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총의 경험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한 과정인 것입니다.

131.사역을 위한 낮아짐의 훈련

부족한 사람들이 부름을 받는다 – 교회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주님은 부르셨습니다. 교회에는 연약하고 부족한 이들이 모입니다. 배가 부르고 여유가 있는 이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그다지 열려있지 않으며 갈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낮고 미천하며 연약한 이들은 주님에 대하여 갈망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항상 부흥이 시작되는 것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노예들, 가난한 이들, 여성들, 사회적으로 천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부흥과 생명의 흐름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을 통하여 차츰 복음이 확산되어 권세자들, 부유한 자들, 사회적 강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면 차츰 생명의 흐름이 약해지고 타락이 시작되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이 많으면 거기에는 갈망이 일어나기 쉬워서 주님의 임재가 증가됩니다. 그러나 삶에 여유가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이 많아지면 차츰 교회의 영적 생명과 갈망은 줄어들고 교회에서 주님의 임재가 소멸되곤 하는 것입니다.

132.사역을 위한 낮아짐의 훈련

인간적인 탁월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다. – 사람들은 사역자나 지도자의 조건을 볼 때 인간적인 탁월함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그의 지성과 리더십, 외모나 학벌이나 영리함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뛰어난 언변이나 열정, 논리적인 탁월함, 뛰어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볼 때 저 사람은 훌륭한 사역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사역을 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탁월함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어떻게 저러한 진리를 깨달았을까… 저 사람은 얼마나 강력한가, 아름다운가…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광을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만이 오직 유일하게 영광을 받아야 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133. 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의 변화된 모습

1.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게 됨 – 높임을 받거나 칭찬받거나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열등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낮아짐을 경험할수록 가까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주목받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죄송함과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하지 않은 이들은 본성적으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들의 칭송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하여 낮아짐을 누리는 이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실제적인 고통과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 이 훈련을 통과했는지 알고 싶다면 그가 칭찬 받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고통을 즐기는지, 아니면 즐거워하는지를 보면 그가 경험하고 통과한 훈련의 성취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자랑이나 칭찬이 고통스럽게 됨 -자랑을 하거나 잘난 척을 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낮아짐의 세계에 들어간 이들은 그러한 것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남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이 직접 자랑을 하는 것에는 더욱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의 잘하는 것이나 재능이나 성취나 가족에 대한 것들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의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임재가 소멸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정도 훈련을 통과한 이들도 순간적으로 실수하여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상태에서 그들은 고통이 심하여 기도하는데에 어려움을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감각이 살아있고 예민하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가 끊어지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수 없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거나 취소해야 다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회복될 수 있음을 압니다.

3.사람들의 비난에 둔감해짐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별로 예민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예민해지면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이나 평가에 대해서는 둔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지식이 많은 학자나 사회 경험이 많은 이들도 비난에 대해서 예민합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비난이나 평가에 대해서 겉으로 초연한 듯이 보이려고 애쓰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불편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리 학식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비난에 대해서는 심한 분노를 느끼며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것은 자아의 생명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하여 낮아짐을 경험할수록 그러한 것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잔잔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굴복하기를 원하며 모든 것이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음 – 일상의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습니다. 자기의 유익이나 좋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을 찾습니다. 이들은 낮은 자리에 있으며 자신이 종인 것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보다 주인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분별합니다. 이것이 자기의 성향과 기질에 맞는 즐거움인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에 대해서 자주 분별하며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속하지 않고 자기 개인적인 성향이나 기쁨에 속하는 것이면 이들은 그것들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5.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함 –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그 온전하심을 신뢰하며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인간은 조금만 자기의 생각이나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해합니다. 그리고 마치 따지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무례하게 하나님께 해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하고 낮은 위치에 서게 된 이들은 그러한 속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들은 항의하지 않으며 해명을 구하지 않으며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립니다. 많은 경우에 급한 성격은 단순한 기질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고 주님의 손에 낮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6. 길이 막힐 때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림 – 어려움이나 고통이 있을 때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하지 않고 하니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들은 어떤 막히는 일이 있을 때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메시지를 분별하는데 익숙합니다.
이들은 수시로 “주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이 상황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하고 묻는 기도를 드리는데 익숙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인도하심과 음성에 대해서 열려있고 준비되어 있으므로 메시지를 잘 깨닫습니다. 이들은 어떤 길을 가다가도 그 길을 고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고 여길 때는 쉽게 길을 바꿉니다. 이들은 자주 길을 멈추며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7.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함 – 이들은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항상 기도로 살기 원하며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기도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시간 여유가 생기기만 하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삶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낮은 마음의 사람은 일을 해도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로 일합니다. 기도 없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기도가 없이 자기의 열정과 지혜로 하는 모든 일에 아무런 열매가 없음을 이들은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8.하나님의 허락 없이 혼자서 결정하지 않음 – 이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 있을 때 혼자서 결정을 내리거나 대답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종이며 주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인의 허락 없이 무엇을 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주안에서 자유롭지만 또한 주님의 종으로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항상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종에게 의견이 없는 것처럼 의견이 없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답을 구하고 기다립니다.

9.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함부로 비판하지 않는다 -함부로 다른 이들을 비판하지도 않으며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이 시키시지 않는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남을 비판하는 것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라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없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맡기신 일에만 나설 뿐입니다. 그러한 일 외에는 자기에게 권리가 없음을 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 허락하신 일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분명합니다. 맡겨진 부분에 대해서는 강하고 담대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개인적으로 온유하지만 바로와의 영적 전쟁을 할 때는 아주 강력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약합니다. 약한 자들의 넘어짐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며 함부로 비판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죄로 인하여 자기를 돌아보며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10.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죄와 어두움의 감각에 대해서 예민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 낮은 심령의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열려있고 가까이 교통하고 있기 때문에 어두움의 감각에 대해서 심한 고통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악한 문화나 악한 영적 기운이 있는 곳에서 고통을 느낍니다. 다른 이들의 악한 말에 의해서도 고통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수시로 불평을 하거나 자기 연민에 속한 말을 하거나 남을 비난할 때 심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주 정화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주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함으로써 그 영혼이 정화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영이 맑아질수록 영적 어두움의 기운에 대해서 예민해지며 맑은 영의 유지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11. 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도합니다. – 이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자주 기도의 충동을 느끼지만 그러나 함부로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사소한 기도에 있어서도 주님의 인도하심과 허락을 구합니다. 이들은 기도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압니다. 기도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라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합니다.
이들은 기도의 부탁을 받아도 함부로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압니다. 이들은 사소한 문제나 기도해야할 여러 가지 일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지만 그 중에서 주님께서 분부하시는 것만을 구하고 이행하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기도하는 것에는 진정한 기쁨도 없고 열매도 풍성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모든 풍성함은 낮아진 만큼, 순복하는 만큼 주님의 원하심을 따르는 만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2. 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주님이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때 기뻐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다른 사람이나 사역자들을 사용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합니다. 이들은 그러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에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즐거움은 자신의 높아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의 이루어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과하지 않은 이들은 주님이 사용하시는 다른 사람이나 사역자들을 시기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자기와 비교하여 열등감을 가지거나 우월감을 가지거나 합니다. 그것은 그 의식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지 않고 자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으로 갈수록 자기는 사라지며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으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13.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 훈련을 통하여 낮아짐에 가까워진 이들은 사소한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하게 됩니다. 이들은 낮음을 경험하고 자신이 종이라는 의식이 있으므로 사소한 것을 받아 누릴 때 자신에게 그것을 받고 누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걱정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사소한 것에도 풍성한 감사의 기쁨을 누립니다. 마음이 높은 이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며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낮은 마음으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게 된 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무한한 감사로 만족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에게는 두려움이 있고 높은 자에게는 불만이 있으나 낮은 자들에게는 항상 자유함과 감사가 있습니다.

14.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 이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며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으므로 어린 아이들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하며 존중해줍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옆에 있을 때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며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부담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주님이 강권하시지 않는 한 다른 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잘 모이며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쉽게 아름다운 교제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체면에 둔하며 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상처를 받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높은 마음의 사람은 쉽게 다른 이들로 인하여 불쾌감을 느끼고 마음이 상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종됨을 잘 인식하고 있으므로 자존심이나 체면으로 인한 문제나 상처를 잘 겪지 않습니다. 이들은 무례한 대우를 받거나 불편한 상황을 접하게 되면 그 상황을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을 통해서도 상처를 받기보다는 새로운 메시지나 깨달음을 얻고 곧 반성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전하며 나아가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16.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힘과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하므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약해졌을 때 더욱더 자주 주님을 높이고 찬송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한다고 하였습니다.(시119:164) 찬양은 신성한 능력의 근원과 연결되어 충만한 은혜와 영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비결입니다. 낮은 마음의 사람들은 더욱 더 자주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림으로써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스스로의 상태에서는 자주 무기력함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낮고 무력한 이들에게 주를 바라고 높이는 것은 중요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17.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나쁜 환경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세상에 많은 전쟁과 요동함이 있으나 이들은 악한 소식이 흉흉한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리며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모든 것을 위탁합니다.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낮은 마음으로 조용히 주님의 인도하심과 분부만을 기다립니다. 높은 마음의 사람들은 사소한 나쁜 소식에도 두려워합니다. 높은 곳에는 항상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 처한 자들은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그 종의 안위는 오직 주인이 걱정하며 보살펴주시는 것입니다.

18.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주님과의 교제를 갈망합니다. -이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지만 이들이 가장 중심으로 원하는 것은 주를 아는 것이며 주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엇을 간절하게 구하는 것보다 오직 주님 자신을 구하며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들이 일을 하는 것도 사역 자체에 대한 성취보다 주인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주 ‘주인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물으며 기도합니다. 이들은 눈에 띄는 사역이나 눈에 띄는 성취보다 날마다 매일의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낮은 마음을 가질수록 주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오시기 때문에 이들은 교제의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더 깊이 누리게 되어 주님 자신에 대한 갈망이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19.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주님을 갈망하는 낮은 자와의 교제를 기뻐합니다. 이들은 어떠한 성취보다 주님을 누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그렇게 자신이 발견한 주님을 다른 이들과 같이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같이 낮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만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그러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이들은 잘난 사람이나 뛰어난 사람, 의지가 강하고 고집이 세며 마음이 높은 사람들 옆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이들은 서로 으뜸이 되려고 하며 서로 가르치려 하며 분파와 투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마음의 사람들은 그러한 이들과의 교제와 관계가 차츰 줄어들게 되며 작은 어린 아이와 같은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와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을 기뻐하며 사모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들은 자연적으로 천국과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며 이 땅에 살면서 작은 천국의 기쁨과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20.낮아짐의 훈련을 통과한 이들은 주님의 임재를 누리며 잘 잃지 않습니다. – 이들은 주님의 임재와 천국의 은총에 점점 더 가까워지며 예민해집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님의 임재를 잘 잃지 않게 됩니다. 주를 향한 갈망과 그리움이 잘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강렬해지고 깊어지게 됩니다. 많은이들이 주님 자신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선물을 구하고 세상에 속한 많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을 알고 가까이 가기 원하는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드릴 때에는 그 마음이 뜨겁지만 예배와 기도가 끝나면 그 열기가 식습니다. 그러나 낮은 마음의 사람들은 그 낮음으로 인하여 주님께 대한 갈망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는 물을 구하기가 어렵지만 낮은 곳에는 모든 물이 흘러들어오므로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153.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낮아짐의 길이 은총의 길이며 천국을 향한 길임을 선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 진리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높은 마음은 모든 재앙의 시작이며 죄의 근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나는 교만한 면을 가지고 있어. 그것이 문제야’ 이런 정도의 가벼운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는 해방이 없습니다. 높은 마음은 암보다 무서운 것이며 지옥을 불러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소멸시키는 것이며 저주와 재앙의 근원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한 깨달음과 인식이 선명해야 그 길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조심하고 깨어있게 될 것입니다.

154.마귀에게 낮은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사람이란 대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환란이 있고 자기 한계를 경험할 때 마음이 낮아지고 하나님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마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낮음을 빼앗을 때 그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물질을 빼앗는 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대단한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위나 권세를 빼앗는 것도 그들에게 큰 승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우리 영혼을 빼앗기를 원합니다. 낮은 마음과 갈망을 빼앗을 때 그들은 진정 승리한 것이며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우리의 생명을 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에는 공짜가 없으며 반드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할 때가 옵니다. 마귀는 낮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이들을 두려워 하지만 기도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낮은 마음을 빼앗겼다면 그는 이미 마귀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155.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말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우리를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겉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공허함과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마귀이며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높여서 그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에서 나오는 모든 사상들 -심리학, 철학, 정신들은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세상에 깊이 물들고 문명 사회에서 오래 세뇌를 받을수록 사람의 마음은 권리를 찾게 되며 높아지게 됩니다.
세상의 말은 달콤하지만 거기에는 독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적인 것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경쟁과 다툼과 시기와 미움과 거짓과 더러움과 두려움과 절망 그 모든 것들이 다 지옥에서 오는 것이며 높은 마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부디 깨어있으십시오. 세상의 사상에 물들지 마십시오. 세상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세상 사상의 세뇌에서 벗어날수록 우리의 영혼은 편안함과 낮음을 잘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6.자신의 상태를 진단하라.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수준과 상태를 바르게 이해할 때 처방이나 해답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여 보십시오. 당신과 주님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까이 느끼고 경험하십니까? 그 교제는 달콤하고 아름다우며 실제적인 것입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가깝고 친근하지 않으며 멀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낮은 마음과 갈망이 부족한 상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님은 낮은 마음과 갈망이 있는 곳에 실제적으로 자신을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낮은 곳에는 주님의 임재와 아름다운교제가 있으며 달콤함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기질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을 가까이 누리지 못하는 것은 기질이 아니라 높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157.자신의 열매를 분별해 보라.

자신에 대해서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은 종입니까? 주인입니까? 당신이 삶에 있어서 주인의 위치에 있다면 어서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죄송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만일 당신이 문제가 생기거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에 화가 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아직 종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종이 아니고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이라면 문제가 생길 때 ‘이것을 주인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를 걱정할 것입니다. 일을 잘못했다고 잘리게 되지 않을지를 걱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면 우리는 사소한 어려움이 있고 문제에 부딪쳐도 주님의 입장과 시각에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속상해 하고 화를 낸다면 우리는 주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며 우리가 주인이 되어 멋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서 자신의 잘못된 입장을 발견하고 종의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158.낮아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에 순복하라.

낮아짐이 천국의 비밀이며 은총의 비결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 보화를 얻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화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며 천국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상속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낮아짐의 보화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 허락하시는 훈련을 받아들이고 그 훈련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기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기 위한 프로그램을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화를 얻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159.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보라.

당신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인도하셨는지 하나님의 시각으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낮추시기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당신의 꿈이 좌절되게 하셨습니까?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게 하셨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셨습니까?
당신이 외롭도록 홀로 두셨습니까?
당신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주의하여 보십시오.
하나님의 입장과 시각에서 보면 새로운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160.감정도 자존심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라.

주님께 헌신을 고백하십시오.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고 고백하십시오.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소유라고 고백하십시오. 마음이 높은 사람은 자기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제멋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낮은자는 주님 앞에 자기를 드려서 종이 됩니다. 그것이 마땅한 길이며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부디 주님이 당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십시오. 당신은 그분의 종임을 고백하십시오. 주의 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목회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주의 종이며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헌신을 고백하고 종 됨을 고백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161.개인적인 꿈과 욕망을 내려 놓으라.

당신에게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욕망이 있다면 당신은 먼저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며 주님께 드린다고 고백하십시오. 당신에게 이상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께 내려놓으십시오. 욕망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 같지만 많은 힘과 시간과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꿈과 욕망을 버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주인의 꿈이 내 꿈이며 주님의 이상이 내 이상이며 주인의 원하심이 항상 우리의 마음과 의식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상과 꿈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아무런 부담이 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분부를 행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주님 앞에 가서 ‘오, 주인님… 종이 여기 있습니다. 오늘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2.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버린다고 고백하라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십시오. 버린다고 고백하십시오. 남보다 낫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신 안에서 아직 발견된다면 그것을 버리십시오. 버리겠다고 고백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탁월한 존재로 보이며 눈에 띄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오직 당신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로하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을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부디 그것을 거절하십시오. 물고기가 낚시 밥을 좋아하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163.사랑받고 싶은 속성을 버리겠다고 고백하라.

당신이 아직 사랑받고 싶은 속성이 남아있다면 버린다고 고백하십시오. 이해받고 싶은 속성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십시오. 버린다고 고백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 것 같지만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받고 싶은 욕망에서 억울함과 서운함과 자기연민과 미움과 시기와 온갖 지옥의 악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버리고 입장을 버리고 자기중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툼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받으려고 하는 이들은 평화가 없으며 항상 분쟁과 재앙이 있지만 버리고 주님께 드린 이들은 주님이 가까이 오셔서 위로하시며 그분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164.자주 주님께 질문하라.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여쭤보십시오
‘제가 지금 주님께 나아가는 데에 방해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 삶에서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십시오. ‘지금 제가 순종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하십시오. 전혀 묻지 않고 구하지 않는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계속하여 질문하고 답을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주 주님께 질문하십시오. 주님이 주인이시고 당신은 종이기 때문에 당신은 항상 주인의 분부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165.길이 막힐 때 메시지를 얻으라.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진행되던 일이 막히게 될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겪을 때… 당신은 주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겪고 있는 이 일들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주님은 무엇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아가던 방향이라고 무조건 고집해서 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추진하던 일도 하나님이 혹시 막으신다고 여긴다면 다시 한번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막힘이 있고 방해가 있는데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도 없이 무작정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그에 대한 메시지를 받지 않고 무조건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인간적인 노력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고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길이 다 막힌 후에야 주님께로 나아온다면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166.변명을 거절하라.

오해를 받거나 공격을 받을 때 변명을 거절하십시오. 그것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버리고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의 순간입니다. 칭찬은 우리의 영혼을 혼탁하게 하지만 많은 경우 비난과 공격은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 연합시킵니다.
비난이 우리의 잘못과 관련된 것이라면 물론 사과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애매한 비방이라면 그것은 은총의 기회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오해를 참지 못하고 작은 공격이나 비난에도 심히 억울함을 느끼고 변호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마음이 높은 것이며 높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애매한 고난은 우리가 겪어야 할 많은 재앙들을 막아주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167.대적자를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께 맡기라.

누구나 자신에게 큰 고통이 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유 없이 괴롭히고 모함을 하거나 뒤에서 비방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로 인하여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 그는 성경이 말하는 원수의 범주에 든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낮아짐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훈련을 감사함으로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으로 인하여 불쾌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거나 보복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한 것과 같이 그를 비난하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간신히 합격하고 통과한 많은 훈련들의 유익을 사라지게 합니다. 많은 고생이 쓸데없이 되는 것입니다.

168.함부로 결정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함부로 선택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 주인의 선택을 물어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기분에 다라 성향에 따라 함부로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로봇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계적인 복종을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이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드리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고 합당한 것을 아시며 맡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움직이는 것은 주님 앞에서 예의가 없는 태도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실패한 후에 주님께로 가면 주님은 ‘내가 언제 그것을 너에게 시켰니?’ 혹은 ‘왜 네 마음대로 함부로 해서 고생을 하니?’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없이 함부로 결정하지 마십시오. 기도 없이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며 낮아짐을 갈망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169.상처를 입힌 자를 용서하라

당신에게 악한 행위를 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당신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용서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데 그것은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높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는 행위는 우리의 영혼을 한 차원 더 상승시킵니다.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할 때 그것은 우리를 자아의 감옥에서, 이기심의 감옥에서 놓여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이들을 용서함으로써 우리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통장에는 하나님의 용서의 긍휼이 저장됩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용서는 비교적 적은 금액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일방적인 잘못을 했는데도 용서한다면 그것은 좀 더 많은 저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관용의 통장을 만들어서 주님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한없는 사악함과 더러움을 기꺼이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도 기꺼이 감사함으로 용서를 베풀며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70.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라.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회개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죄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싫어하며 사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게 사과를 한 후에 길게 온갖 변명과 핑계를 대며 그것이 얼마나 어쩔 수 없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항상 어둠 속에서 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는 아무것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온갖 악 속에서 살며 거기에 익숙한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 자신의 악과 더러움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회개해야 할 죄들이 너무나 많이 떠오릅니다. 자기의 모습을 돌이켜볼수록 죄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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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글 입니다. 정원 목사님의 낮아짐2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 /20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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