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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계시를 받다 (기독교 계시론) - 나 용화 목사 (ApostlePaul /2012.10.21)

2016.07.1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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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계시를 받다” (기독교 계시론)

나 용화
(개신대학원 대학교, 총장)

차례

들어가는 말

Ⅰ. 계시의 정의
1. 일반계시
2. 특별계시

Ⅱ. 계시의 주체
1. 성부 하나님
2. 성자 하나님
3. 성령 하나님

Ⅲ. 계시의 대변자
1. 구약의 선지자
2. 사도와 전도자
3. 목사와 교사

Ⅳ. 계시의 내용
1. 삼위일체 하나님
2. 복음: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다.

Ⅴ. 계시의 목적
1.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
2.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임을 선포하는 것

Ⅵ. 계시의 성질과 성경의 특성
1. 계시의 성질
1) 계시의 동질성
2)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
3) 계시의 역사적 점진성
4) 계시의 경제성
5) 계시의 항상성
6) 계시의 활동성

2. 성경의 특성
1)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
2)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3) 성경의 신적 권위
4)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
5) 성경의 충분성
6) 성경의 자명성
7) 성경의 최종성
Ⅶ. 계시의 방식
1. 구약시대의 방식
2. 신약시대의 방식

Ⅷ. 계시의 수단
1. 일반계시의 수단
2. 특별계시의 수단

맺는 말

“성경에서 계시를 받다”
(기독교 계시론)
나 용화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들어가는 말

여호와께서 호렙의 불길 속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음을 깊이 명심하여라.(신 4:15).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종교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그 동산의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네가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17) 하셨는가 하면,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창 12:1)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너는 네 땅, 네 친족, 네 아버지 집에서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순종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이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창 12:7) 하셨다.
하나님의 큰 구원 사건인 출애굽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도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 이제 가거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겠다”(출 3:6,10) 말씀하시고, “나는 나이다”(출 3:14)고 자기를 계시하셨다. 출애굽 이후 호렙산에서 불 가운데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선포하시고 십계명을 주셨다(신 4:13,15).
신약의 경우도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임하였고(눅 3:2),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고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으며(눅 4:1-13)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눅 4:43). 사도들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며 가르쳤다(행 4:31). 특히 바울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 곧 성경 말씀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담대하게 가르쳤다(행 28:23, 31).
이렇듯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창조와 구원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불교나 이슬람교의 경우처럼 한 인간의 명상이나 지혜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랜 역사 속에서 창조와 구원 사건을 통하여 주어지는가 하면 그 말씀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그것의 진실성과 권위가 확증된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그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실제로 실현되지 않으면, 그 말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너는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그 선지자를 두려워하지 마라.”(신 18:22)고 하였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시편 19:1-6과 104편과 136:1-9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해서 주어진 계시를 인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했고, 시편 19:7-14와 105편과 136:10-24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주어진 계시를 인하여 구속주 하나님을 감사 찬송했다. 이렇듯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사역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 계시에 근거한 종교이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종교인데 반하여, 이방 종교는 우상 숭배의 종교이다. 사람의 형상이나 땅의 짐승의 형상이나 공중의 새와 물 속에 있는 물고기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다(신 4:16-18). 심지어는 기어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롬 1:23), 사람의 기술과 생각을 따라 조각한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돌로 만든 형상)을 만들어 섬긴다(행 17:29). 이같은 우상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는(신 4:28) 것이어서, 이방 종교에는 말씀 계시가 없고, 따라서 십계명과 같은 신앙과 도덕과 윤리가 없다.
이방의 종교가 우상숭배의 미신이거나 개인의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철학(골2:8)인데 반하여, 기독교는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종교이다.

Ⅰ. 계시의 정의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며,
아들과 그 아들의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마 11:27)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사람은 본성이 부패하고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스스로는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알려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고(행 7:2), 모세의 경우도 시내산 광야에서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셨으며(행 7:30), 베드로에게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해 주셨다(마 16:17).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과 자신의 하시는 일 곧 창조와 구속 사역을 알려 주시는 행위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지식을 가리켜 계시라고 한다. 이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주시되,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주신다(참고, 엡 1:17). 이 계시에는 자연계와 자연 현상을 통해서 주어지는 일반계시와,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서 주어지는 특별계시가 있다.

1. 일반계시

세상 창조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 알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다. (롬 1:20)
하나님은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의 경우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God) 즉 신 의식(awareness of God) 또는 종교의 씨(seed of religion)를 주셔서,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게 하셨다(참고,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안에 밝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종교의 씨가 싹이 트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종교의 씨가 싹터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게 “세상 창조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 알게”(롬 1:20) 하셨다.
시편 기자가 노래한 대로,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시 19:1). 또한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 작은 비와 큰 비, 구름과 바람 등을 통해서(욥 37장), 염소와 사슴과 들나귀, 타조와 매와 독수리 등에게 뛰놀고 날게 하시는가 하면 그들이 각기 거할 처소를 마련해 주시는 일(욥 39장)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욥은 이같은 하나님의 계시를 인하여 하나님을 알고서 회개하였다(욥 42:5-6). 이렇듯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곧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민족을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만드시고 그들을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사는 때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해 주시고(행 17:24-26), 인간들의 왕국들을 다스리시고 열왕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심으로써(단 4:17) 하나님을 더듬어 찾고자 하면 찾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서 힘입어 살고 활동하게 하시는 것이다(행 7:27-28)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게 하시는 행위와,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로 계시인바, 사람의 본성과 자연 만물과 그것들의 현상 및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계시를 “일반계시”라 일컫는다. 이 일반계시는 지금도 하나님이 매일같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눈만 뜨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칼빈,「기독교 강요」Ⅰ.ⅴ. 1).

2. 특별계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 2 상)
이 일반계시를 통해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드리지도 않으며,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어리석은 마음이”어두워진다(롬 1:21). 이는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죽었고(엡 2:1)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깨닫지 못하며 큰 죄악에서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시 19:12-13). 사람들은 그 영혼이 소생되고, 어리석음을 깨달아 지혜로워지며, 마음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시 19:7-9),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 곧 “특별계시”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고 눈을 밝게 해주고(시 19:7-8) 죄를 깨닫게 한다(롬 3:20). 그리고 율법 외에 주어진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받게 한다(롬 3:21-22).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책 곧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칼빈, 「기독교강요」Ⅰ.ⅵ. 2). 사람들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롬 1:28), 심지어는 하나님이 없다(시 14:1)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롬 3: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성령을 통해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마 11:27; 요 14:26; 15:26).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배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계시하심으로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오래 전부터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으로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계시하셨으나,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게 계시하셨다(히 1:1; 요 1:18). 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요 5:39). 이 성경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창조, 섭리, 구원, 심판)을 알게 하시는 바 하나님의 특별계시요,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무오하고 유일한 규칙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2항).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곧,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되게 하려는 것이다”(딤후 3:15-17). 이 성경은 요한계시록과 함께 책으로 완성되어 그때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고, 아담 때부터 이미 있었기에 이사야는 “여호와의 책을 구하여 읽어 보라”(사 34:16)고 하였고,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의 서책을 통해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이 되면(렘 25:12) 끝날 것을 깨달았다(단 9:2). 예수님은 이미 있던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셨으며(눅 4:21; 24:32), 바울도(딤후 3:15) 베드로도(벧후 3:16) 성경을 가지고 가르쳤다. 이렇듯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아담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으며(히 4:12) 영원토록 항상 있기에(벧전 1:23-25), 영원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경을 가지고 성령으로 아담 이래 신구약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항상 계시 행위를 하고 계신다(참고, 칼빈 「기독교강요」Ⅰ. ⅵ. 1;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다시 말해서, 지금의 정경이 완성된 이후로만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아담 때부터 성경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이기시기 때문에 신구약을 막론하고 그 말씀에 일절 보태거나 빼면 안된다(신 4:2; 12:23; 잠 30:6; 계 22:18-19). 하나님의 말씀에 보태거나 빼면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멸시하게 되어 범죄하고 타락케 되는 것이다(참고, 창 3:2-3). 성경 계시는 하나님의 소통하는 행위(a communicative act)이며, 죽어있는 문자 책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활동하심을 보여 주시며 이적과 표적들을 행하시기도 한다.

Ⅱ. 계시의 주체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것들을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계시하시니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들과 그 아들의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마 11:25-27)

기독교의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갖는 지식으로서, 그것은 바로 영생이다(요 17:23). 그러기에 신학은 영원한 생명의 학문이다. 또한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께 아신 바 된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나님께 아신 바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것이요(고전 8:3; 갈 4:9), 그것은 바로 경건이다(참고, 시 86:2; 히브리어로 ‘경건’을 뜻하는 단어가 ‘하시딤’인 바, ‘하나님의 사랑을 입다’를 가리킨다.) 그러기에 신학은 경건의 학문이기도 하다. 한편,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께 아신 바 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마련인 까닭에, 신학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성도들의 행복이기에(시 73:28), 신학은 행복의 학문이다.
이렇듯 생명과 경건과 행복의 학문인 신학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을 가르치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Theology is taught by God, teaches God, and leads to God), 그것의 본체적 원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신학의 주체이자 목적이자 목표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지 아니하면, 즉 알려 주시지 아니하면 신학은 할 수가 없다. 계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 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 자신이 그것의 주체이신 것이다.

1. 성부 하나님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것들을 지혜롭고 현명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계시하시니, 아버지께 감사합니다(마 11:25)

우리가 믿는 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성부 하나님께서 우선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인 천사들까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창 1:3; 골 1:16; 히 11:3). 그리고 그 피조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뿐 아니라(롬 1:20) 그분의 영광도 선포되게 하시고(시 19:1) 하나님의 지식과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해지게 하신다(시 19:2-4).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고, 인류의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부터 만드셨으며, 온 땅 위에 흩어져 살게 하시되, 그들이 사는 때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해 주심으로서 하나님을 힘입어 살게 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항상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행 17:24-2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권능으로 하늘을 지으시고 물 위에 땅을 펴시며 큰 빛들을 지으시어 해로 낮을, 달과 별들로 밤을 다스리게 하시는 가운데 그분의 영원한 인애를 알게 하신다(시 136:4-9).
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창조 사역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실 뿐 아니라, 말씀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선포하심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여라… 모든 짐승을 다스려라”(창 1:28). 또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마라(창 2:17) 하시고,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창 2:18) 주시는 일에서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이 생명의 주님이시요 짝을 정해 주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노아와의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일(창 9:8-17)과, 아브라함과 맺은 바 땅과 큰 민족과 후손에 대한 약속의 언약(창 12:1-9), 모세와 맺은 시내산 언약(출 19:1-9), 그리고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삼하 7:8-17)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약속하는 가운데(예: 이사야의 ‘임마누엘’, 사 7:14; ‘수난의 종’, 사 53장; 예레미야의 ‘한 의로운 가지’, 렘 23:5; 에스겔의 ‘한 목자’, 겔 34:23-24; 다니엘의 ‘인자 같은 이’, 단 7:13-14; 요엘의 ‘의의 교사’, 욜 2: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로 계시하셨다(참고, 롬 1:2).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나는 나이다’(출 3:14; 호 12:5)요, ‘여호와’(출 6:2) 언약의 주님으로 계시하셨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셨다(마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다. 이를 네게 알게하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다.”).

2. 성자 하나님

아들과 그 아들의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마 11:27 하)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것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영원히 함께 계셨기 때문에(요 1:1) 이 두 분은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아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아들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없다(마 11:27). 일찍이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아버지 하나님의 품 속에 계신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즉 계시하셨다(요 1:18). 그래서 성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고,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 12:44-45)고 하였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도 보았다”(요 14:9) 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고도 하셨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성경을 열어서 그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셨는가 하면(눅 24:32, 44-45), 사도 바울에게도 복음을 직접 계시해 주셨다(갈 1:11-12).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의 계시 사역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루고 구속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바로 그 구속을 확실하고도 효과있게 적용하시고 전달해 주신다. 그들을 위하여 대언하시고, 말씀으로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의 비밀들을 계시하신다”(8장 8항 ; 소요리 24문답,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심으로 하십니다.”). 마지막 날들에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히 1:2 상).

3. 성령 하나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며(요 15:26)

성령은 하나님의 영(고전 3:16)이시자,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시기에 그리스도의 영이시기도 하다(행 16:7; 롬 8:9). 이 성령은 진리의 영(요 14:17)이요, 계시의 영(엡 1:17)이시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성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또한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시며(요 15:26),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계시하여 알려 주신다(요 16:13). 이 성령님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함께 증거하시는 것이다(행 5:32 “우리는 이 이들의 증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께서도 증인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계시하는 까닭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깊은 비밀들까지도 아시고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계시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다(고전 2:10-13).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도 성령님으로 말미암고(고전 12:3),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알고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도 성령님을 통해서 한다(롬 8:15).
요약하자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바 계시의 주체는 삼위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시고(엡 1:9),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어 그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을 알게 하실 뿐 아니라(엡 1:17, 18),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골 1:27)를 성령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여 알게하시는 것이다(엡 3:3-4). 이로써, 우리가 삼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바 아들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므로(앎므로) 영생을 얻어 누리게 된다(요 17:3).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 계시를 사탄 마귀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가서 그들이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도 못하게 훼방을 놓는다(눅 8:12). 그런가하면 사탄 마귀는 환난과 박해와 같은 시험이나, 인생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향락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무익하게 만들어 결국은 그 계시를 듣고서도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마 13:21-23; 눅 8:13-14).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계시를 받을 때 착한 마음으로 듣고 잘 간직하되 인내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눅 8:15).

Ⅲ. 계시의 대변자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
(엡 4:11)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심에 있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친히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시지만,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롬 1:2; 히 1:1) 하셨고, 신약에서는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히 1:2)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도자들과 목사와 교사를 세워 하셨다(엡 4:11).

1. 구약의 선지자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으로
그분의 아들에 관한 것이니(롬1:2-3)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경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시하셨다(히 1:1). 구약의 선지자는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등과 같이 특별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으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선지자였고(창 20:7), 임종 시 열두 아들들을 위하여 축복하며 예언한 야곱도 사실상 선지자였으며(참고, 창 49장), 이집트의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알게 한 요셉도 선지자였고(참고, 창 41:25), 출애굽 사건의 지도자였던 모세 역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고(참고, 신 18:18; 행 7:37), 아론의 누이 미리암도 여선지자였다(출 15:2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자기의 친구로 여겨 그의 한 자손을 통해 그리스도를 미리 볼 수 있게 하셨는가 하면(요 8:56; 갈 3:16),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내리시고자 한 심판을 숨기지 않고 알려 주셨고(창 18:17), 아비멜렉과 그의 가족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응답하셨다(창 20:17). 야곱의 경우를 보면, 그가 요셉과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말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의 말씀이었다. 야곱이 요셉에게 해 준, “나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며 너희를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창 48:21)라고 한 축복의 말이나, 동생 에브라임을 형 므낫세보다 앞세워 “그(므낫세)도 크게 될 것이나 그의 동생(에브라임)이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후손이 많은 민족들이 될 것이다”(창 48:19)한 말, 그리고 유다를 축복하면서 “왕의 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창 49:10)고 한 말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었다.
이집트 땅과 홍해와 시내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많은 기적과 표적들을 행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직접 받았었다(출 33:11; 참고, 행 7:31, 38).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표현이 수도 없이 반복되어 있다(출 3:4 이하).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선지자에게는 환상이나 꿈으로 계시하시고 말씀하시지만 모세의 경우는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시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셨던 것이다(민 12:6-8).
소년 사무엘이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환상도 나타나지 아니했으나(삼상 3: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움 받은 동안 그에게 주신 말씀들 가운데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삼상 3:19-21).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 다윗은 자신의 세대 동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뜻을 받들어 섬겼었는데(행 13:36),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시요,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알고 예언하였으며(시 110:1,4; 참고, 눅 20:41-44; 히 5:6; 7:17), 메시아의 부활뿐만 아니라(시 16:10; 행 13:35)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예언하였다(시 22:1, 6-8, 16-18; 마 27:46). 다윗이 지은 수 많은 예언의 시들을 보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그에게는 성령으로 확실히 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도 임하였고(왕상 17:2, 8, 14; 왕하 1:4),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 때 이사야에게도 임했으며(사 1:1, 18, 24; 2:1; 6:8-9), 유다 왕 요시야 통치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렘 1:2), 특히 예레미야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돈을 받고 팔았던 가룟 유다가 산 피밭에 대하여 예언하고(렘 32:6-9; 마 27:9) 새 언약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다(렘 31:31-33; 히 8:8-11).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고, 그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지막 때에 만물이 회복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행 3:18-24). 성경의 모든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말한 것들이다(벧후 1:21). 그들은 특별히 그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지시하는 대로 구원의 비밀을 부지런히 조사하고 연구하되,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고난과 이후에 받으실 부활의 영광에 대하여 깊이 살피기도 하였다(벧전 1:10-11).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경우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선지자들의 입에 말씀들을 주시어 계시하셨던 것이다.

2. 사도와 전도자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말씀들과
너희의 사도들이 전한 주님되신 구주의 계명을
기억나게 하려 한다. (벧후 3: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십 일 간의 금식 기도 후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의 능력으로(눅 4:14)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친히 선포하시고(막 1:14-15) 안식일에는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다(마 4:23; 막 1:21). 그는 부활하신 몸으로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경을 열어서 자신에 관한 일들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눅 24:27, 3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 승천하실 것을 아시고 대비하여 열두 사도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으며(막 3:14), 부활 승천을 앞두고서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 28:20) “온 세상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막 16:15)고 사도들에게 대위임명령을 주셨으며,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사도들은 성경을 가지고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다”(행 2:36)라고 증거하였다. 또한 “너희가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베푸시려고 이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셨다(행 5:31-31)고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여(행 4:31)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는 사도들에게 환상과 꿈과 기적과 표적들을 통해서(참고, 행 2:17-19; 5:12-16; 19:11-12; 고후 12:1)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시고, 또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담대하게 가르쳐 전하게 하셨다(행 28:23, 30-31).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이 일들의 증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께서도 증인이시다”(행 5:32)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행 20:21). 이처럼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딤전 1:11)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받은 복음(갈 1:11-12)을 증거하였다.
사도행전에 보면, 복음의 증인들로는 사도들 외에도 성령과 지혜와 믿음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행 6:3, 5, 8)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집사들과 빌립의 네 딸 선지자와 아가보 선지자(참고, 행 6:8-10; 7:1-53; 8:4-6, 26-40; 21:8-10), 그리고 바나바(행 13:1), 마가와 실라(행 15:39-41), 디모데(행 16:1), 누가(행 16:10; 딤후 4:11), 디도(딛 1:4), 아볼로(행 18:24)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행 18:26) 등 다수의 복음 전도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복음전도자들을 세우셔서 복음 선포를 통해 자신의 계시의 말씀을 나타내셨던 것이다(딛 1:3).

3.목사와 교사

가르침을 받은 신실한 말씀을 견고히 붙잡아야 할 것이니,
이는 그가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딛 1:9)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 디도를 크레타 섬에 남겨 둔 이유는 각 성읍에 장로들과 감독들을 세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견고히 붙잡아 잘 가르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딛 1:9). 바울은 그의 또 다른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경우에도 감독과 집사(딤전 3:1, 8) 뿐 아니라 장로도 세워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도록 하였다(딤전 5:17; 참고, 딤후 2:2). 바울이 디도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언급한 감독과 장로들은 그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는 목사와 교사로 언급되어 있다(엡 4:1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감독, 장로와 같은 목사와 교사를 세우시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복음을 맡기시어(고전 4:1) 그것을 가르치게 하셨던 것이다(딤전 4:11).
우리의 영원한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비밀들을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모든 세대에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시행 방법으로 계시해 오셨고 또 계시하신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대요리 43문답). 다시 말해서, 그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의 입을 빌려 계시를 증거하였고,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시던 동안에는 친히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부활 승천하신 후 신약의 사도 시대에는 성령으로 사도들과 복음 증거자들을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증거하게 하셨고, 사도 시대 이후에는 목사와 교사들을 세워 하고 계신다. 그래서 선지자로서의 그의 계시 사역은 영원 무궁히 계속되는 것이다(참고, 박형룡, 「교의신학 기독론」p. 251-253; 뻘콮, 「기독교신학개론」신복윤 역, p. 186).

Ⅳ. 계시의 내용

하나님께서는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비밀의 계시를 통하여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수 있으니,
이 비밀은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었다. (롬 16:25)

기독교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어 가르치시되,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아 가르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학문인 까닭에, 계시의 일차적 내용은 하나님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기를 추구하자”(호 6:3)고 촉구한바 있는데, 이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고”(호 4:6)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호 4:14)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를 아는 것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 영생이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을 계시하고,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들 하나님을 아시고, 또 아들 하나님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11:27). “일찍이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셨다”(요 1:18).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 12:44-45)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 분을 알고 또 보았다.”(요 14:7)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 그런데 성경이 바로 그 아들 하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고(요 5:39; 참고, 눅 24:27, 44; 행 8:35),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도 성경을 가지고 그 아들에 대해 증언하신다(요 15:26). 성령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고백할 수가 없는 것이다(고전 12:3). 이로 보건대, 성경 계시의 내용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시고 성령님이 성경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자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대로, 계시의 주체이자 목적이신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계시의 내용 또한 바로 그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대위임 명령에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하심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되심을 밝히 말씀하셨다. 또한 바울도 오늘날 교회에서 축복 기도로 사용되고 있는 기원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증거했다(고후 13:13).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진술하기를, “실체(substance)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한 삼위가 단일한 신격으로 있으니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기원하시지 않고, 나시지도 않으며, 나오시지도 않으나,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2장 3항)고 하였다. 이 진술에 기초하여 설명하자면, 첫째, 본체에 있어서(in essence)(참고, 라틴어에서 유래된 영어 essence와 substance는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essence는 ‘본질’을 가리키기도 함으로 ‘본체’로, substance는 ‘실체’로 번역함 ; 박형룡 「교의신학신론」P. 199.)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다(신 6:4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 ; 사 45:5 ; 갈 3:20 ; 딤전 2:5 ; 약 2:19). 존재 자체로서 하나님의 본체는 영이시다(요 4:24). 성자 예수님도 성결의 영이시요(롬 1:4), 살리는 영이시며(고전 15:45), 자유케 하시는 영이시다(고후 3:17-18). 삼위 하나님은 본체가 영이시기에 한 몸(일체)으로서 한 분이신 것이다.
둘째, 실체에 있어서(in substance)(참고,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substance를 ‘본체’로, essence를 ‘본질’로 흔히 번역해 왔음) 하나님은 위격이 각기 구별된 자존하시는 하나님(autotheos, God-in-himself)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세 분)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기 신적 전본질을 가지고 있으나 구별된 위격적 실체로서 각기 고유한 특성들(properties)을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구별이 없으나, 위격에 있어서만 구별이 있으신 것이다. 즉, 세 분의 구별된 영이 아니시고 한 영이시요, 세 분의 구별된 위격이다. 이렇듯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체에 있어서는 한분이시나, 실체에 있어서는 세 분으로 그 존재 양식이 특이하여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비유될 수 없는 신비인 것이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예화를 많이 생각해 보았으나 정확히 맞는 것이 없다 하였고, 칼빈은 아예 예화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산술적으로 1×1×1=1이라는 방식을 빌려 보지만, 여기에는 삼위 간의 구별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삼위 하나님은 신적 본질, 곧 영의 경우 구별이 없기 때문에, 성부는 한 영이시고, 성자도 한 영이시며, 성령도 한 영이시라고 하면 안된다. 즉, 세 영이시기에 세 위격이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본체의 하나(일체)임과 위격의 구별을 혼동하면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셋째, 질서에 있어서(in order) 삼위 하나님은 성부가 먼저이시고, 즉 제1위이시고, 성자가 다음, 즉 제2위이시며, 성령이 마지막, 즉 제3위이시다. 본체에 있어서 영으로서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은 실체에 있어서는 관계성 속에서 존재 행위가 나타나는 바, 성부는 위격의 기원이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begotten),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proceeding). 성부가 성자를 낳으신다는 것은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기 보다는(참고, 눅 1:35), 성부와 성자 간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관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편 2편 7절과 사도행전 13장 33-34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하여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성부 하나님이 성자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같은 질서를 인하여 성자는 성부에게,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순종하시는 것이다.
넷째, 관계에 있어서(in relationship) 삼위 하나님은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a communion of love)이다. 성자는 성부와 함께 같은 성령을 가지고 계시므로 성부와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전체로 성자 안에 내주하시고, 성자는 전체로 성부 안에 상호 내주하신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ⅹⅲ. 19). 즉 상호 교통(perichoresis)하는 가운데 내어 주심과 섬김과 사귐의 사랑에 있어서 하나이시다(요 10:38; 14:10-11; 17:21). 성부는 성자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심판권까지 내어 주시고(요 3:35; 5:22-23), 성자는 성부에게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로 내어 주시며(요 10:15-18; 롬 3:25), 성령은 성자와 하나님의 교회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신다(요 1:32; 행 10:38; 행 2:33). 삼위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시는 까닭에(마 3:17; 요 17:4) 사랑의 일체이시요, 또한 사랑이시다(요일 4:16).
다섯째, 경륜에 있어서(in economy) 즉, 창조와 섭리와 구원에 있어서 각기 독특하게 그러면서도 하나로 일하신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되(히 11:3),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게 하셨고(골 1:16), 또 그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시어(엡 1:4-5) 성령으로 인치셨다(엡 1:13-14). 이로 보건대, 삼위 하나님은 본체와 실체 및 질서와 관계와 경륜에 있어서 하나이시기에 삼위일체이시다. 하나님은 한 본체(essence)이기에 유일신이요, 신적 전 본질(the whole divine nature)을 각기 소유하고 있는 세 실체(substance)로 존재하기에 삼위 곧 세 분이며, 삼위가 한 본체로 존재하기에 삼위일체이다.

2. 복음 :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다.

그 여자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마 1:21 상)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미혹을 받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하였을 때(창 3:1-6), 하나님은 뱀 곧 사탄 마귀를 저주하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너는 모든 가축과 모든 들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게 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니, 여자의 후손은 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면 여자에게서 날 후손이 비록 그의 발꿈치가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게 되지만, 사탄을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승리하신다. 그래서 이 약속의 말씀대로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시어(행 10:38) 십자가로 악한 사탄 마귀를 무력화시켜 승리하게 하셨다(골 2:15). 예수님께서 여자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때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마 1:20; 눅 1:35). 그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마리아에게서 사람의 실체(substance), 곧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났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2항; 대요리 37문답). 그러기에 예수님은 오직 성령으로만 잉태되었고, 마리아의 월경의 피를 공급받아 잉태되거나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임산부의 피가 태아에게 직접 흘러 들어가는 일은 없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에 대해 약속한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원복음(proevangelium)이다. 이 여자의 후손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시 2:2)인 바, 아브라함의 경우 그의 후손(창 12:7)으로 약속되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들을 주시면서, 여러 사람을 가리켜 ‘그리고 네 자손들에게’라고 하시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그리고 네 자손에게’라고 하셨으니,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시다.”(갈 3:16). 이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아(헬라어로는, 그리스도)가 모세의 경우는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로 약속되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 선지자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라 하였다(행 3:22). 다윗의 경우는, ‘네 몸에서 나올 네 후손’의 왕국의 보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바(삼하 7:12-13), 그 후손이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바로 그 주님이시요(히 1:8-9) ‘영도자(임금)와 구주’(행 5:31)이시다. 그리고 이사야의 경우를 보면,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사 42:1; 61:1)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을 아들로서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며(사 7:14), 이 임마누엘이 바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그의 아들 예수님이시다(마 1:21, 23).
이로 보건대, 구약에서 아담과 아브라함 및 모세와 다윗과 이사야 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요, 그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마 1:16)고 하였다. 누가복음서에 보면, 베들레헴 부근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가 전해 준 복음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이름이 예수라고 하는(참고, 눅 1:31) 구주가 태어났는 바, 그 아기 예수는 구약에서 약속된 그리스도 주님이시라고 하였다(눅 2:11). 즉, 복음이란 하나님이 구약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때가 차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그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복음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롬 1:2-4)라고 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울은 그의 여러 서신들에서 예수님을 호칭할 때 “그리스도 예수님”이라 하였고(딤전 1:1, 2; 딤후 1:1, 2; 롬 8:1, 2, 11; 고전 1:2; 갈 3:26; 엡 1:1; 빌 1:1), 자기를 소개할 때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롬 1:1; 고전 1:1; 고후 1:1; 엡 1:1; 빌 1:1; 골 1:1; 딤전 1:1; 딤후 1:1)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라고 하는 복음을 드러냈던 것이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그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나셨던 바, 이 예수님이 복음이신 것은 그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비밀의 계시로서, 이제 밝혀졌기에 복음인 것이다(참고, 롬 16:25).
본래 하나님의 형상 곧 참 하나님(참고, 요 1:18; 20:28; 요일 5:20; 벧후 1:1; 롬 9:5; 딛 2:13)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의 모양 곧 참 사람이 되신 것(빌 2:6-7; 딤전 2:5)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로서 사망의 권세를 가진 사탄 마귀를 멸하고(히 2:14; 요일 3:8),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로 내어 주시기 위함이었다(막 10:45; 롬 3:25). 그리고 죄 값을 지불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롬 3:25-26; 5:18) 죄를 없앨 뿐 아니라 죄의 실체인 사탄 마귀를 무장해제하여 무력화시켜 십자가로 승리하기 위함이었다(골 2:15). 이로써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내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그 아들 안에서 죄 용서를 받아(골 1:13-14)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영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시기에 죄와 죄의 실체인 사탄 마귀를 멸하고 승리하여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구원의 행복과 감격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비밀이요, 복음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셨기에 하나님의 복음이요(막 1:14; 롬 1:1, 2),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복음이시기에 예수님의 복음이며(롬 1:9; 15:19), 이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까닭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마 4:23; 눅 4:43)

Ⅴ. 계시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마 1:18상)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심을 밝힌(마 1:16) 다음,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소개하면서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는 예수님이 바로 그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마태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자, 목소리를 크게 높여 선포하기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다.”(행 2:36)라고 하였는가 하면, “이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셨다”(행 5:31)고도 하였던 것이다.

1.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

오직 이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또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 20:31)

구약에서 예언되고 약속된 그리스도가 여자에게서 난 예수님이시라고 하는 것이 계시의 내용, 곧 복음이라고 한다면, 사람으로 태어나신 그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바로 그 그리스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 계시의 목적이다.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에서 밝힌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여 그분을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 바로 계시의 목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가 거의 끝나갈 무렵 곧, 그가 땅에서 들려 하늘로 올라가실 날이 가까워져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마음에 확정하셨던 때(눅 9:51), 북쪽 두로와 시돈을 다녀온 후(마 15:21) 갈릴리 바닷가에서 앉은뱅이와 벙어리 등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 15:29-31), 가버나움 남쪽 마가단 지역으로 내려 가신 다음(마 15:39), 예루살렘 쪽으로 내려가는 대신 방향을 바꾸어 북쪽 맨 끝에 있는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셨다(마 16:13). 두로와 시돈 지역에 들리셨을 때 거기서 곧 바로 빌립보의 가이사랴로 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로 되돌아오시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실 것 같던 그의 발걸음을 바꾸어 북쪽 먼 곳으로 올라가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굉장히 의도적이었다.
당시 빌립보의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로마 총독의 거주지인 가이사랴와 다른 도시로서 헤롯 빌립이 로마 황제 아우구스트를 경외하여 그를 위해 대리석 신전을 짓고서 그 지방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지었던 곳이었다. 또한 바알 제단이 있어 바알 숭배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지방은 로마 황제의 권위와 바알 종교가 함께 있어, 세속적 권위와 우상 숭배로 유명하였다. 그 지방은 헐몬산 자락에 있어 물이 지하에서 솟아 나와 요단강을 이루는 수원지로서 풍요의 땅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수원지 위 언덕에는 큰 반석의 바알 제단이 있었다. 거기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는가 하면,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이다(마 16:13-15 상).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5 하). 예수님은 로마 황제의 신전과 바알 제단이 있는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의도적으로 베드로에게서 신앙고백을 받아내셨다. 베드로는 자기가 3년간 수종 들었던 나사렛 사람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세속적 권위나 바알의 우상으로서의 권세와는 비교될 수 없는 신적 권위와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사렛 사람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것과,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할 것과 제삼일에 부활하실 것을 밝히 말씀시기 시작했다(마 16:21). 이로 보건대, 여자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이 계시의 목적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했고(행 2:36), 바나바와 빌립도 그리스도와 복음을 선포했으며(행 7:56; 8:5, 12),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었으나 부활 승천하여 영광 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즉시 회당에 들어가서 더욱 힘을 내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명하였다(행 9:22). 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의 범위를 넓혀 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해석하여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행 17:3)라고 전하였다. 그는 고린도와 에베소에서도 말씀에 붙잡혀 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유대인들에게 증언하였고(행 18:5, 28), 로마에서는 이년 내내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이들을 다 영접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고 성경의 글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가르쳤다(행 28:23, 31).
이로 말미암아,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롬 1:4, 7; 16:27; 고전 1:2, 7; 고후 1:2, 3). 특히 디도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딛 2:13)라 하였다.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우리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1:1) 또는 “우리 주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였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계시의 목적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케 하려고 계시해 주셨던 것이다(마 16:17).

2.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임을 선포하는 것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 1:2, 4 하)

구약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셨던 대로 그리스도가 여자에게 태어났으며, 그 태어난 자가 바로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의 탄생이 복음(눅 2:10)인 것은
하나님의 약속된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신 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들을 보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님이 구약에서 약속된 바로 그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하였던 바, 대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삼중직을 친히 어떻게 행사하셨는가를 선포하였다. 이렇듯 계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신 것을 선포하는데 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그의 서신의 초두에서 “이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롬 1:2, 4하)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대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을 친히 다 행하셨다.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죄 값을 지불하는 영원한 속죄 제물로 단번에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고(히 9:12; 막 10:45), 중보자로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자기 백성의 죄 용서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신다(히 7:24-25). 이로써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해결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해결자이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구약의 모세보다 행위와 말씀에 더 권능이 있는 선지자로서(눅 24:19; 행 7:37)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계시하여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고(요 4:23) 하나님과 깊은 영적 사귐을 갖게 하신다(요일 1:3). 이렇듯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는 예배의 회복자이시다.
한편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요(사 9:6),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은 통치자이시며(눅 1:31-33; 행 5:31), 만왕의 왕이시다(계 19:6). 그는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대적자요 원수(벧전 5:8)이며 죄의 실체(롬 7:8-23; 요일 3:8)인 사탄 마귀를 멸하여 이기시고(골 2:15; 히 2:14), 마귀가 하는 정죄와 고소와 저주를 막으신다(롬 8:34). 이렇듯 왕이신 그리스도는 죄의 해결자요 마귀를 멸하여 이기신 자이시다.
요약하자면, 때가 차서 여자에게서 나신 예수님이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예언된 그리스도이심을 우리가 알고 믿을 뿐 아니라,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해결하시고 죄의 실체인 마귀를 이기시며 예배를 회복하심으로 우리가 죄와 악한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이 계시의 목적이다(참고, 요 20:31).

Ⅵ. 계시의 성질과 성경의 특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시다.
(히 13:8)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는 동질성이 있고, 계시의 내용과 목적이 성경 66권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통일성이 있으며, 계시가 역사적으로 점점 뚜렷해지는 점에서 역사적 점진성이 있고, 성경 계시가 양적으로 적당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제성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기에 항상성과 활동성 등이 있다.
이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따르면, 절대적 필요성, 영감성과 무오성, 신적 권위, 독자적 신임성, 충분성, 자명성, 그리고 최종성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계시의 성질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여
“오늘 이 성경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성취되었다.”라고 하시니,
(눅 4:21)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던 때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 중 이사야의 책을 읽으시고 이 성경 말씀이 오늘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즉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의 계시가 내용상 하나요 또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계시가 예수님에게서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
1) 계시의 동질성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여자의 씨와 더불어 아브라함이나 다윗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 등에게 주신 계시가 내용에 있어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계시는 성질상 동일하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시편 22편이나 이사야 53장 등에 계시되어 있는 바, 이 어린 양은 태초부터 이미 죽임을 당한 것으로 계시되어 있다가(계 13:8) 예수님으로 나타나셨다(요 1:29, 36). 모든 성경은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한다(요 5:39).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성경을 열어서 자신에 관한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셨고(눅 24:27), 빌립 집사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이사야서의 구절을 가지고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행 8:26-35).

2)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

사탄에게 발꿈치가 상하게 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한 창세기 3장 15절과 창세 전에 이미 죽임을 당한 어린양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계시록 13장 8절의 말씀은 수천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동일할 뿐 아니라, 서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구약에서 예언된 말씀들이 신약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성경 계시에는 유기적 통일성이 있다. 그래서 마태는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말하기를,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께서 선지자(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성취하시려는 것이니”(마 1:22)라고 했고, 아기 예수님의 이집트 피신에 대해서도 주께서 선지자(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성취하려는것이라고 했다(마 2:15).
어떤 이들은 성경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과 관련하여 이사야서 34장 15-16절을 인용하는데, 그 구절은 짐승들의 짝에 대하여 상세하게 언급한 책(예컨대, 욥기 38-39장)을 가리켜 말씀된 것으로,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바른성경」(한국성경공회, 2011년)은 “거기에 솔개들도 모여 각기 자기 짝과 함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책을 구하여 읽어 보아라. 이것들(짐승들) 가운데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그의 짝이 없는 짐승도 없을 것이니, … 그분의 영이 그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사 34:15-16)고 정확하게 번역해 놓았다.「성경전서 표준 새번역」(대한성서공회, 1993년)에도 같은 의미로 잘 번역되어 있다.

3) 계시의 역사적 점진성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으로 점진적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약속한 계시(창 3:15)가 아브라함(창 17:21)과 다윗(삼하 7:12, 13) 그리고 이사야(사 7:14)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분명해졌다. 즉, ‘여자의 씨’로 시작해서,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왕권을 영원히 세울 자손, 임마누엘 등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점점 더 분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차매 마리아에게서 메시아로 태어났다(갈 4:4).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더 분명해 지는 바, 역사적 점진성이 있는 것이다.

4) 계시의 경제성

성경의 계시는 수천 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주어졌기 때문에, 그 계시를 다 기록해 두었다고 하면 그 분량이 너무나 방대했을 것이기 때문에(요 21:25), 하나님은 지금의 성경 66권으로 자기의 계시를 압축해 놓으셨다. 이것이 바로 계시의 경제성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정도 분량의 계시로 충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고, 이만큼의 계시를 가지고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비밀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의 성경만을 가지고 성령으로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같은 이유로 오늘의 교회에는 계시의 홍수 사태나 혼란이 있지 않게 되었다.

5) 계시의 항상성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우주의 모든 창조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시되(시 19:1; 롬 1:20) 매일같이 나타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칼빈, 「기독교강요」Ⅰ.ⅴ. 1, 2),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창조주요 아버지로 깊이 알게 하려고 하나님의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 곧 성경을 통해서 날마다 계시하신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ⅵ. 1, 2).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온종일 성경을 묵상하였고(시 119:97),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으며(행 17:11),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던 것이다(행 28:23).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언제라도 알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시는 까닭에, 하나님의 계시가 항상 있고 살아 있으며 영원토록 있는 것이다(벧전 1:23, 25). 하나님의 말씀 계시가 항상 있고 살아있는 것은 계시의 주체이신 하나님 자신이 항상 살아 계시고(신 5:26; 수 3:10; 욥 19:25), 또 예수 그리스도가 항상 살아 계시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히 13:8). 이처럼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 또한 항상 동일하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 계시도 영생 곧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을 주는 것이다(참고, 신 32:47; 요 5:39; 요 6:63, 68).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전해 주었다(행 7:38).
성경과 하나님의 유일한 특별 계시인 예수님(참고, 히 1:2, 3: 요 1:18)외에 다른 새로운 계시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항상 있고 살아 있는 바(히 4:12), 이것이 계시의 항상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통해서 매일같이 자신의 영광과 신성과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 계시하고 있듯이, 성경을 통해서 항상 말씀하시고 자신의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믿어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요 20:31). 하나님의 일반계시 뿐 아니라 특별계시도 항상 있는 것이다. 자연만물이 항상 있고 살아있듯이, 성경과 예수님도 항상 있고 살아 있어 날마다 새롭게 계시하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진술하기를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으로 친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하여 말씀 안에 계시되어 있는 것을 기독교인은 참된 것으로 믿는다”(14장 2항)고 했다. 이같은 진술에 나타나 있는대로, 하나님은 말씀(성경)으로 말씀하고 계시며, 말씀으로 친히 현재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가 전하는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알았고, 그 말씀이 성도들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살전 2:13). 하나님은 아담 이래로 자기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친히 말씀하시어 계시하고 계신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ⅵ. 1). 성경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이므로, 다른 새로운 계시는 없다. 성령님은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내지 않으신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ⅸ. 1-2). 그래서 모세 뿐 아니라 아굴도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마라고 하였다(신 4:2; 12:32; 잠 30:6; 참고, 계 22:18, 19).

6) 계시의 활동성
하나님의 계시는 영원토록 항상 있고 살아 있기 때문에 활동성이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양날 선 검보다도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과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 계시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하며(벧전 1:23), 천지를 창조하는 능력도 있다(히 11:3; 창 1:3).
이 말씀은 성령의 검(엡 6:17)으로서 사탄 마귀와 그것의 왕국을 무너 뜨리고 패배시키는 권세가 있을 뿐 아니라, 마귀의 무너진 왕국 위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권세가 있다(참고, 매튜 헨리). 성령의 검의 힘으로 악령을 무력화시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마 12:28).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행실을 성령을 통해서 깨끗케 하기도 한다(시 119:9; 엡 5:26; 딤전 4:5; 딛 3:5). 또한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역사가 나타나고(요 15:7), 많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며(요 15:8; 갈 5:22-23),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하게도 되고(행 10:44-48; 참고, 행 11:1에는 이방인 성도들이 성령 받은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과 연결 짓고 있다.), 말씀이 있는 곳에 희한한 기적들이 행하여진다(행 19:10-12). 하나님의 말씀 계시가 죄로 죽은 자를 살리고, 가정과 사회와 교회를 살리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바, 이는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이 항상 살아 계시어 활동하시는 분이시요, 그것이 가지고 있는 활동성 때문이다.
2. 성경의 특성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시키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한다. (시 19:7-8)

1)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의 신성과 능력과 지혜를 선포하고 있어도(시 19:1),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마음을 즐겁게 하며, 우리의 허물을 깨달아 회개하여 큰 죄악에서 자신을 지켜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 곧 성경이다(시 19:7-14).
성경 계시가 없이는,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들만을 통해서는 하나님과 그의 뜻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알 수가 없으며,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1항).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해 두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이다. 일반계시로는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지혜와 지식을 얻는 것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특별계시인 성경을 하나님께서 주실 필요가 절대적으로 있게 된 것이다.
2)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 신구약 66권의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2항). 로마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바 교황의 절대권과 무오성을 반대한 종교개혁 운동의 신학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의 절대 권위와 함께 무오성을 강조한다.
여호와의 책(사 34:16)인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될 때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졌다. 베드로가 말한 바, 성경의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1:21)이라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성령께서는 계시를 받아 기록한 사람들 곧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감동하셨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말한 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고 한 대로, 기록된 책들의 문법과 글자들과 내용들까지도 친히 감동하셨다. 그래서 이 성경이 기록될 때 성령의 감동이 기록하던 사람들과 책의 내용과 사상에 미친 것과 관련해서는 거짓이 없으며(무위성), 문법과 문자와 관련해서는 오류가 없는 것이다(무오성). 이렇듯 성경이 성령으로 감동되어 기록된 까닭에 내용상 거짓이 없을 뿐 아니라, 즉 무위할 뿐 아니라, 문자상으로도 오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의 이같은 무위성과 무오성을 인하여 성경에는 절대적 권위가 있다.
성령의 감동(영감)의 방식과 관련하여, 성령께서 기록자들의 영적 배경과 지성적 통찰력을 활용하시는 가운데 주권적으로 감독하여 기록케 하신 것을 두고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영감)의 범위와 관련하여, 성경의 모든 부분 뿐 아니라 문법과 단어 사용에 있어서도 성령께서 주관하셨다는 것을 두고서는 완전축자영감(plenary verbal inspiration)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과 관련된 영감론에 대하여 유기적 완전축자 영감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3) 성경의 신적 권위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무위하고 무오하기 때문에 “성경에는 권위가 있다. 그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저자이시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4항). 칼빈의 성경관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밝히 말한 대로, 성경의 신적 권위는 오직 진리 자체이신 저자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을 뿐, 교황이나 교회나 사람들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참고, 칼빈 「기독교강요」Ⅰ.ⅶ. 2, 4). 이렇듯 성경은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객관적 권위”가 있는 것이다. 아무도 성경의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시 119:138, 14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어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킬 뿐 아니라(히 4:12; 벧전 1:23), 말씀이 선포될 때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이 일어나고 병든 자들과 더러운 영들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을 만큼 성경에는 “사역적 권위”가 있다. 예컨대, 사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였을 때(행 4:31)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들과 기적들이 백성들 가운데 일어났으며(행 5:12), 이에 사람들은 심지어 병든자들을 메고나와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랐고, 예루살렘 주변 마을 사람들도 자기네들의 병든 자들과 악령들린 자들을 데리고 와서 고침 받았다(행 5:15-16). 또한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 규칙인 까닭에 “규범적 권위”도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지혜를 얻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사는 길도 알게 된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것을 성경에서 배울 수가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되게 하는 것이다(딤후 3:16-17).

4)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self-authenticity)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 진술된 바에 의하면, 성경에는 독자적 신임성이 있다.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신령함, 교훈의 효험, 문체의 웅장함, 모든 부분의 내용상의 일치성, 내용 전체의 목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혀 주는 충분한 내용 전개, 이 외에도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많은 점들, 그리고 성경 전체의 완전성 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입증해 주는 논증들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5항).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까닭에 본래 무오성과 무위성을 가지고 있고 또 진리이신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가 있으며, 항상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어서 죄인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며 질병과 악령에서 치유하고 큰 기적과 표적도 행하는 사역적 권위가 있다. 이러한 권위와 함께 성경은 내용의 신령함이나 문체의 웅장함, 그리고 성경 전체의 완전성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입증되어 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성경은 독자적 신임성을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ⅶ. 5). 따라서 사실상 교회와 사도들과 목사와 교사의 증거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사도들이나 교회가 행하는 표적들과 기사들도 하나님의 선포된 복음의 말씀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들이지, 그 표적과 기사들로 말미암아 성경 계시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확증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성경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증해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요(칼빈,「기독교강요」Ⅰ. ⅷ. 8), 표적과 기적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행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 성경 계시를 확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성경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이요, 항상 있고 살아 있으며 활동력이 있어 일을 이루어내는 권세가 있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입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표적과 기적이 그것의 권세 때문에 일어나고 병고침과 악령의 내쫓김이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계시의 복음이 선포될 때 일어나는 표적이나 기적 또는 병고침이나 축사(악령을 내쫓는 것)에 의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과적으로 입증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참고, 신 18:21-22). 이러한 표적과 기적들은 복음 선포자의 신적 권위를 세워 주는데 크게 유익할 수 있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ⅷ. 5).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가운데 모든 병든 자들과 악령 들린 자들을 치유하셨고(마 4:23-24), 산상설교(마 5-7장)를 권세 있게 선포하신 후에 나병환자, 백부장의 종, 베드로의 장모 등을 비롯하여 악령 들린 자들과 병자들을 고치셨다(마 8:1-17). 마가복음에도(막 1:14-15, 21-34), 누가복음에도(눅 4:16-41)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으로 치료하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사도들의 경우도 보면, 베드로는 오순절에 설교(행 2:14-41)를 한 후 앉은뱅이를 치료했고(행 3:1-10),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한 후(행 4:31) 그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들과 기사들이 일어났다(행 5:12-16). 빌립 집사의 경우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가운데 표적들이 행해지고 더러운 영이 나갔으며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다(행 8:5-7, 12-13).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이고니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님에 관해서 담대하게 말하자 주님께서 은혜의 도리를 확증하시고 바울의 손을 통하여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들이 나타나게 해주셨다(행 14:3; 참고, 박창환 「신약성경」, ESV).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때도 하나님의 말씀 곧 은혜의 복음을 가르치며 증거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통하여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시고 병들이 떠나가고 악한 영들도 나갔다(행 19:8-12).
한국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예컨대, 1907년 말씀 사경회를 통하여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많은 표적과 기사들이 일어났고, 악령들이 나가고 질병들이 치료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치유 집회의 경우를 보면, 먼저 강력한 권세로 복음을 선포하면 그 선포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고 병든 자들이 치료되며 악령들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학자들(워필드와 박형룡)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시고 질병들을 치료하시며 악령들을 쫓아내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복음의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확증하기 위함인 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경우는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이미 종결되었고, 복음의 계시도 정경으로 완결되었으며,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충분하게 표적과 이적들을 행하시어 복음의 계시를 확증하셨으므로 정경의 완성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되고 이적도 중지되었다(참고, 박형룡,「교의신학 신론」pp. 488-492). 그러나 이같은 계시 종결론과 이적적 은사 중지론은 성경 계시의 항상성이나 활동성 뿐만 아니라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에도 배치된다. 또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대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경과 은혜의 복음을 선포함으로 표적과 기적들이 일어났을 뿐, 그들이 행한 표적과 기적들에 의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된 것이 아니었다. 박형룡의 이같은 이론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특히 목회 현장에서는 전혀 용납되지 않고 있다.
물론, 성경은 독자적 신임성이 있지만 그것이 무오하고 무위한 진리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계시 사역(즉, 조명)에 의해서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5항 하단). 그래서 성령의 내적 계시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지금도 항상 있고 또 힘있게 활동하는 까닭에 교회에는 표적과 기적들이 계속되고, 질병의 치유와 악령의 내쫓김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의 손을 통해 있는 것이다. 바나바의 사촌으로서 선교사역에 참여하되(골 4:10)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 노릇을 하였고(벧전 5:13) 바울의 유익한 동역자로 크게 활동한(몬 1:24; 딤후 4:11) 마가에 의하면, 복음의 일꾼들 곧 복음의 선포자들이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막 16:15) 믿는 자들에게 표적과 기적들이 일어나며(막 16:17-18), 주님께서 주님의 일꾼들의 손을 통해서 행하시는 그 표적과 기적들이 결과적으로 복음의 말씀을 확증해 준다(막 16:20).
5) 성경의 충분성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적 규칙으로서 충분하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계획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선하고 적절한 논리에 의하여 성경에서 연역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들에 의해서든지 혹은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든지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6항).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진술한 대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을 충분하게 계시해 놓으셨다. 즉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칙으로서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데 있어서 충분하다. 따라서 성경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구원과 영생을 넉넉히 얻으며, 성도로서 성결케 되고 영적으로 온전하게 성숙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과 신앙 생활을 위하여 성경 외에 다른 새로운 계시를 얻으려 하거나, 색다른 이단적 교훈을 추구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성경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구원론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데는 성령의 내적 계시 곧 조명(illumination)이 필요하고, 예배의 형식과 순서 및 교회 정치 등과 관련해서는 통상적인 관례나 자연법을 따라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6항 하단). 성령님께서는 성경 외에 새로운 계시를 더하여 주지 않고, 이미 주어진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게 하셔서, 즉 조명하셔서 하나님,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 및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시어(엡 1:17-18), 즉 계시하시어 믿고 순종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된다(신 12:32; 계 22:18-19).
또한 예배와 교회 정치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때를 따라 새로운 방식이나 제도 등을 특별히 계시하시지 않고 이미 주어진 통상적 관례나 자연법을 적절하게 따르게 하신다.
성경 계시의 충분성과 관련하여 우리가 유의할 점은 성경 외에는 새로운 다른 계시가 없다는 사실을 오해하여,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지금도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내적으로 계시 행위, 또는 조명을 지속적으로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령의 이같은 조명 사역은 신약 시대와 정경 완성 이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에서도 이미 있었다. 그래서 칼빈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께서 성경을 가지고 계시하셨다고 했던 것이다(「기독교강요」Ⅰ. ⅵ. 1). 구약의 성도들은 창세기 1, 2장을 묵상하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였고(시 104편; 136:4-9), 창세기 12장 이하 출애굽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구속주 하나님께 감사했다(시 105편; 136:10-22).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쓴 성경을 읽고 묵상하던 중에 성령의 조명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날에 대해 계시를 받았다(단 9:2; 참고, 렘 25:12).
새로운 계시는 없지만,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한 계시 행위는 항상 영원토록 있는 것이다. 성경 계시의 충분성 때문에 오히려 성령께서는 이미 주어진 계시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계시하셔야 하는 것이다(참고, 고전 2:10, 13). 그래서 칼빈은 성령의 조명을 내적 계시 행위라 하였고(「기독교강요」Ⅰ.ⅴ. 14, illumined by the inner revelation of God through faith”; 칼빈의 「신약주해」고전 2:10, 엡 1:17, 18, 벧전 1:25에 관한 주해; Berkhof,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logy」138, 14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영원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직분을 영구적인 계시 행위와 관련지어 진술하였다(8장 8항).

6) 성경의 자명성

성경의 자명성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백은 이렇게 진술하였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한결같이 명백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분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믿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경 안의 여러 곳에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고 밝혀져 있다. 그래서 유식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통상적인 방법을 적당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그것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1장 7항).
성경에는 베드로가 지적한 대로 바울 서신의 경우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나(벧후 3:15-16),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유일하신 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분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고 한 말씀에서처럼 아주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성도라도 그 지식을 쉽게 그리고 충분하게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롭게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도록 한다(시 19:7-8). 성경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데 있어서는 학력이나 연령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무학의 나이 드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대학교 다니는 청년보다 성경을 읽고 깨달음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성경의 자명성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주장하기를,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성도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하고, 부모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읽어주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 것이다(참고, 신 6:6-7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이 말씀을 네 마음에 있게 하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언제든지 이것들을 말하여라.”).

7) 성경의 최종성

종교적 또는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를 확정하는데 있어서 최종적 권위는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모든 헛된 사상과 이론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모두 파괴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해야한다(고후 10:4-5). 이 성령님에 의하여 모든 신학적 논쟁들이 결정되어야 하고, 교회의 신조들이나 교훈들이 살펴져야 하며, 특별히 사이비 이단 사상들이 검증되어야 하며, 교회는 재판관이신 성령님의 판결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10항). 성령님께서 사용하는 규범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에, 교회는 사실상 최종적으로 성경에 의존하고, 성령님의 지도를 기도로 구하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로마가톨릭교회의 주교회의나 교황 또는 여타의 교회 회의 뿐만 아니라 어떤 유명하다는 신학자나 목사나 교회도 결코 최고의 재판관일 수가 없고, 최고의 절대 권위를 행사할 수가 없다. 모든 교회와 신학자나 목회자는 성경과 성령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 점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무오설, 사제 독신주의, 마리아 무염수태설이나, 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의 인본주의적 기독론과 구원론, 신천지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와 통일교 등 이단들의 주장은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고, 보수적 신학자들의 계시 종결론과 은사 중지론도 성경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성경 계시의 성질과 특성들을 잘 알고 이해할 때 신앙과 신학이 성경적으로 건실해질 수 있다. 성경 계시의 동질성과 통일성을 알면 계시의 내용과 목적인 복음 곧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확실하게 알게 되고, 계시의 역사적 점진성을 알면 직통 계시의 위험성을 경계하게 되며, 계시의 경제성을 알면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많은 경전들의 비효율성을 알 뿐 아니라 성경으로 만족할 수 있게 되고, 계시의 항상성과 활동성을 알면 계시 종결론이나 은사 중지론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성경의 절대 필요성을 알면 성경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나 구원의 복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알면 성경의 절대 권위 앞에 순복하게 되고, 성경의 신적 권위와 최종성을 알면 성경을 신앙과 생활 뿐 아니라 모든 사상의 절대 규칙으로 삼아 순종하게 되며,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을 알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되고, 성경의 충분성을 알면 계시의 경제성의 경우처럼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나 교훈을 추구하지 않게 되며, 그리고 성경의 자명성을 알면 성경을 성도이면 누구나 읽고 연구해야 할 권리와 책임을 통감하게 되는 것이다.

Ⅶ. 계시의 방식(ways)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번 여러 모양(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상)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하시는 일들을 계시하심에 있어서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방식 곧 약속과 예표와 희생제사 등으로 하셨으나,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말씀하셨다. 이와 관련하여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는 진술되기를, “(구속) 사역의 공덕과 효능과 유익은 창세로부터 모든 세대에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계속적으로 전달되었던 바, 약속들과 모형(예표)들과 희생 제사들을 통해서 되어졌다. 이 방식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곧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계시되고 상징되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8장 6항)라고 하였다.
1. 구약 시대의 방식

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기는데,
이것은 모세가 장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받은 것과 같다. (히 8:5)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 사역이 구약 시대에는 약속들과 예표 또는 모형들과 희생 제사 의식들에 의하여 계시되었다. 하나님은 첫째로, 메시아를 계시함에 있어서 아담에게는 여자의 씨(창 3:15), 아브라함에게는 ‘한 후손’(창 12:7; 17:7), 다윗에게는 그의 왕권을 이을 후손(삼하 7:12-13), 이사야에게는 동정녀에게 태어날 아기 임마누엘(사 7:14)을 각각 약속하심으로 하셨다.
둘째로, 예표 또는 모형을 통해서 메시아를 계시하셨다. 출애굽 사건을 결정적으로 가능케 한 유월절 어린양(출 12:3)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님(요 1:29; 고전 5:7), 생수를 솟아나게 한 호렙산의 반석(출 17:6)은 영적인 음료를 제공하는 반석되신 그리스도(고전 10:4), 광야에 내린 만나(민 11:9)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요 6:35), 장대 위에 달린 놋 뱀(민 21:9)은 십자가에서 저주 받아 달린 예수님(요 3:14)을 각각 예표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살렘왕 멜기세덱(창 14:17-20)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히 5:10), 말과 행동이 능한 선지자 모세(신 18:18; 참고, 행 7:22, 37)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위와 말씀에 권능이 있는 선지자 예수님(눅 24:19), 이스라엘의 왕 다윗(삼하 7:8)은 영원한 만왕의 왕 예수님(슥 9:9; 마 21:5-9)을 각각 예표하였다.
셋째로, 희생 제사를 통하여 메시아가 계시되었다. 희생 제사가 드려지는 성소 또는 성전은 성전되신 예수님(요 1:14; 2:21), 번제와 속죄제물(레 9:1)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린 예수님(막 10:45; 롬 3:25; 히 9:26)을 각각 예표했다.

2. 신약 시대의 방식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이다.
이것에 따라 드려진 헌물과 희생 제물은,
그 섬기는 자의 양심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개혁의 때까지만 부과된 것이다. (히 9:9-10)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탄 마귀를 이기게 하고 죄를 해결할 메시아를 계시하심에 있어서 약속들과 모형 또는 예표들과 희생 제사 등을 통해 하였으나, 그것들은 실체이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비유요 그림자(히 10:1)였기 때문에,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 시대의 계시의 방식은 종결되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1항의 마지막 줄,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고 한 진술과, 8장 6항에 언급된 방식들(약속들과 모형들과 희생 제물들)에 관한 진술을 히브리서 9:9-10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구약 시대의 계시의 방식이 종결된 것일 뿐, 박형룡 등이 주장한 바 하나님의 계시 행위 자체가 중단되거나 종결된 것이 결코 아니다.
앞서 구약 시대의 계시의 방식을 다루면서 밝힌대로, 신약시대에는 구약의 계시의 방식들을 통해서 계시되었던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친히 계시하실 뿐 아니라(요 1:18), 왕, 선지자, 대제사장의 삼중직을 행하시어 그리스도로서 구원을 성취하시어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온전히 계시하셨다. 이로써 구약 시대의 계시의 방식은 마침내 개혁되고 종결되었던 것이다(히 9:10). 계시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히 13:8) 신구약 시대 뿐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구원의 비밀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그러기에,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고(갈 1:12),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주님의 날에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계 1:1, 9-10).

Ⅷ. 계시의 수단(means)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안에 밝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밝히 보여 주셨다. (롬 1:19)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하시는 일들을 계시하심에 있어서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일반계시의 경우는 자연계의 현상들과 인간의 본성과 양심 및 경험 그리고 인간의 역사 등을 수단으로 사용하시고(벌코프, 「조직신학」상권, 권수경 이상원 역, p. 139), 특별계시의 경우는 신현(theophanies), 예언과 환상을 통한 의사 소통(communications), 그리고 표적과 기적(miracles)등을 사용하신다.(벌코프, 상게서, pp. 145-147).

1.일반계시의 수단

그분께서 인류의 모든 민족을 하나로부터 만드시고
그들을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사는 때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는데,
이는 혹시 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고자 하면
그분을 찾게 하시려는 것이니,
그분께서는 과연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아니하신다. (행 17:26-27)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때에 사용하는 수단은 첫째로, 자연계와 자연의 현상들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 19:1) 인애와 지혜 뿐 아니라(시 136:5) 능력과 신성을 나타낸다(롬 1:20). 하나님께서는 천둥과 번개, 폭풍과 추위, 얼음과 먹구름을 통해서 진노와 위엄과 권능과 공의를 나타내시고(욥 37:1-24), 사자, 까마귀, 사슴,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 등에게 거처와 먹이를 마련해 주심으로 인애하심을 나타내시며(욥 38:39-39:30), 악한 자와 선한 자에게 동일하게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비를 내려 주심으로 자비를 보이시고(마 5:45),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판의 들풀도 영광으로 옷 입히심으로 사랑이 많으심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마 6:26-30).
둘째로, 인간의 본성과 양심과 경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감각(sense)을 주셨다(롬 1:19, 21). 그래서 아무도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미개인이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변명할 수가 없다. 또 하나님은 사람에게 본성적으로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양심을 주셨다(롬 2:14-15). 이 양심은 믿음을 담는 그릇이기에(참고, 딤전 1:19; 딤후 1:3, 5) 선한 양심을 버리는 자는 믿음을 잃기 쉽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경험, 즉 출생과 결혼과 취업, 사업, 거주와 이사, 여행, 죽음 등 많은 일들에서 하나님이 살아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신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찬송 작사자는 노래하기를,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라고 하였다.
셋째로, 일반계시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간의 역사가 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충실한 종으로 인정을 받던 때 그 집 여주인의 투기로 인하여 감옥에 갇혔었다. 그때 함께 투옥되어 있던 장관들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한 장관의 소개로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었다. 바로가 꾼 꿈에 의하면 칠 년의 풍년과 칠 년의 흉년이 있게 될 것이었으므로 이에 잘 대비해야 했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하고자 하시는 일을 바로에게 알리신 것입니다”(창 41:25, 28)라고 강조하였다. 이에 바로도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알게 하셨으니, 너처럼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창 41:39)고 하고서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웠다. 요셉과 바로는 다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고 고백한 것이다. 다니엘도 느부갓네살의 두 번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통치하시며(단 2:37-38) 왕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고 하였다(단 4:17).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의 역사 속에서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이 일반 계시의 수단들로 사용하시는 자연계와 자연의 현상들, 인간의 본성과 경험 그리고 인간의 역사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지 중단되거나 종결되지 않고 지속된다. 하나님은 이같은 수단들을 통하여 날마다 항상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영광과 위엄과 지혜와 권능과 인애를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또 창조하시며 섭리하시는 일들을 항상 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되거나 종결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특별계시의 수단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중에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이끌어 낸 후에 말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백성에게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여라.” 하니
(행 5:19-20)

일반계시가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주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비밀을 알리는 특별계시를 주심에 있어서 신현(하나님의 천사의 나타남)과 예언(꿈과 환상 또는 음성으로 말씀을 주심)과 기적(초자연적인 놀라운 일)을 수단으로 삼으신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이 아니요, 횃불과 연기와 구름 속에서(창 15:17; 출 19:9, 16), 폭풍우 속에서(욥 38:1; 40:6), 그리고 때로는 미풍 속에서(왕상 19:12) 임재하심을 나타내 보이시지만, 주님의 천사로 나타나신다(창 16:11; 19:1). 이 주님의 천사는 야곱의 경우 꿈속에서 나타나시기도 하셨다(창 31:11). 베드로의 경우는 감옥에 갇혀 있던 때 밤중에 나타나셨다(행 5:19). 그러나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최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함이 그의 육체에 임하여 있었다(골 1:19; 2:9)
주님의 천사들은 성도들을 섬기는 영물이기 때문에(히 1:14), 예수님께서 유대 광야에서 40일간 사탄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던 때 뿐만 아니라(마 4:11),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올리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던 때에도 그에게 나타나서 도왔다(눅 22:43). 이처럼, 하나님은 주님의 사자 또는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참고, 행 5:19; 8:26).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음성이나 꿈과 환상을 통해서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신다. 인류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에게 뿐 아니라(창 2:16; 3:8-19), 아브라함(창 12:1-3), 이삭(창 26:2-5), 야곱(창 35:1, 9-15), 그리고 모세(출 3:4-15) 등에게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 꿈이나 환상 중에 하셨는데(창 15:1; 31:11), 특별히 신약시대에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욜 2:28-32; 인용, 행 2:17-18) 환상과 꿈 속에서 하나님이 흔히 말씀하셨다(행 9:10; 10:3, 10, 17; 11:5; 16:9-10; 22:17).
바울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환상들을 통해 여러 가지 엄청난 계시들을 받은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가 혹시라도 교만해질까 봐 그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후 12:1-10).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음성으로, 환상과 꿈 속에서 말씀하시며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은 또한 이적과 표적들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을 계시하신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열 가지 기적의 재앙들에서 볼 수 있는 대로,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원 사역을 이루신다는 것(출 7:5)과, 하나님의 종된 모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주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의 기적들은 그의 신성과 신적 권위를 나타내 보여주고(마 8:8, 29; 행 3:16), 또한 결과적으로 그의 말씀을 확증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가는 기록하기를, “주께서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을 통하여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막 16:20)고 했고,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의 회당에서 말씀을 담대히 전하던 때에 “주께서 그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시므로 자신의 은혜의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행 14:3).
일반계시의 수단들이 지금도 항상 유효한 것처럼, 특별계시의 수단들도 여전히 유효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섬기는 천사들이 항상 깨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되(계 5:11-12; 7:11-12)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게 하고(계 8:4), 땅과 바다에 하나님의 재앙을 내리는 일(계 7:2; 8:5) 등도 하게 하신다. 그리고 요엘의 예언대로 꿈과 환상을 통해서 또는 음성으로 지금도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놀랍고 큰 일들을 행하여 주신다(요 14;12; 약 5:15-16). 특별계시의 수단들이 지금도 유효한 까닭에,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오늘날도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참고, 뻘콮, 「기독교신학개론」신복윤 역, p. 186).

맺는 말

기독교는 이방 종교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주시는 계시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사색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역사와 함께 하는 계시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계시가 성취되는 종교이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시요 모든 만물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섭리주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 사역을 통해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창조 세계와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활동하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 마귀와 죄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여 영적으로 무지하게 되고 창조세계 또한 악화됨으로 말미암아 일반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계시하셨고 또는 마지막 날들에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확실하게 계시하시되, 이 모든 계시를 성경에 기록해 두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이 성경을 안경으로 삼아 자연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들을 읽어낼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성경과 자연계를 통해서 계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같은 계시는 창조주요 섭리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려 줄 뿐 아니라, 구약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예언된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하나님의 때가 차서 여자에게서 나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래서 약속된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이 성경 66권이 증거하는 바 복음이다.
이 복음인 예수님께서 실제 그리스도로서 왕직을 통해 사탄 마귀를 이기신 승리자요, 대제사장직을 통해 죄 값을 지불하신 바 죄의 해결자요, 사탄의 고소와 정죄를 무력화시킨 중보자이시요, 선지자직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시는 자가 되셨다. 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가지고 있는 여섯 가지의 성질, 곧 동질성, 통일성, 역사적 점진성, 경제성, 항상성과 활동성과 함께, 성경이 가지고 있는 입곱 가지의 특성, 곧 절대적 필요성, 영감성과 무오성, 신적 권위, 독자적 신임성, 충분성, 자명성과 최종성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은 지금도 일반계시의 수단인 자연계와 자연 현상 및 역사 속에서 뿐만 아니라,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신구약 시대뿐 아니라 지금의 정경이 완성된 후에도 항상 자신과 자신의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의 계시의 방식, 곧 약속과 예표와 희생제사 등은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중단되고 종결되었으나, 특별계시의 수단, 곧 신현과 예언과 기적 등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영원한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성경을 가지고 여전히 계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계시의 방식의 종결을 계시 자체의 종결로 오해하여 일부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 계시 종결론과, 방언의 은사와 기적적인 치유의 은사와 악령을 쫓아내는 사역이 정경 완성 후에는 중단되었다고 하는 은사 중지론은 성경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사실상 목회 현장에서는 이같은 주장은 통하지 않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보수적인 장로교회들이 성장이 둔화되고 오히려 감소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계시 종결론과 은사 중지론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신학대학원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 이같은 계시 종결론과 은사 중지론을 배운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그같은 주장들을 의식하다 보니 목회가 약화된 것이다. 이로써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감퇴됨으로 인하여 교회 성장도 멈추었다.
신학은 신앙의 종이요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신학의 교리와 목회의 영적 체험은 성경으로 상호 일치되어야 한다. 이로써 신학은 교회의 신앙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고 교회를 성장하게 해야 한다(참고, 골 2:19). 만일 신학이 신앙의 활성화와 교회의 성장을 막는다면, 그 신학은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반드시 제대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계시 종결론과 은사 중지론은 한국 교회의 성장을 약화시킨 원인이 된 것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여기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검토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과 예표와 희생제사들과 같은 특별계시의 방식은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종결되었으나, 계시의 수단들인 신현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천사들도 살아서 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예언의 경우는 사도행전에서 보는 대로 환상과 꿈 속에서 또는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성령의 예언의 은사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기적과 표적 또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어 활동하시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도 권세가 있기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뿐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으로 성경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계시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 계시는 베드로와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항상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다(벧전 1:23; 히 4:12).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낸 서신에도 보면,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 교회가 받을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들려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것 같이 하나님의 살아있고 활동하는 말씀으로 받았다(살전 2:13; 참고, 칼빈「기독교강요」Ⅰ. ⅶ. 1). 성경은 이처럼 항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스스로 이미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로 확증되어 있는 것이다(칼빈,「기독교강요」Ⅰ. ⅶ. 2).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의 영인 성령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순종케 하는 것이다(엡 1:17, 18;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8장 8항).
하나님의 말씀 계시인 성경과 그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신구약 시대는 물론이고 지금의 정경이 완성된 후 아무 때에도 다른 새로운 계시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새로운 계시를 추구하거나 하나님께로부터 환상이나 꿈이나 음성 등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직접 계시를 받으려 하는 것은 모두 헛될 뿐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장 6항).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하늘에서 직접 음성을 들려 주시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하심으로 계시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선지자이시다. 영원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항상 있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의 영인 성령으로 지금도 여전히 계시하고 있기에(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대요리 43문답), 하나님의 소통 행위(a communicative act)로서 계시는 한 순간도 종결됨이 없이 항상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항상 있고 살아있어 활동력이 있기에 성령의 여러 은사들 가운데 방언과 치유와 축사(악령 쫓아내는 능력) 등이 정경 완성 후에도 중지됨이 없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중생하기 전에는 영적 맹인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계시를 받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영생을 누린다. 또한 성령의 은사들을 방편으로 삼아 교회를 섬겨 부흥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 계시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항상 살아 있고 활동력이 있다.

※ 저자 나 용 화

전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카버넌트 신학교 졸업(신학석사), 콘콜디아 신학교 졸업(신학박사)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오치애양교회 목사

저서 역서
칼빈의 기독교강요 개요 칼빈의 성경관과 주권사상(머레이)
칼빈과 개혁신학 신약사(브루스)
발전하는 보수신학 칼빈의 기독교강요신학(홀과 릴벡 편집)
현대신학평가 최신조직신학(레이몬드)
기독교신앙의 진리 개혁주의 기독론(레이몬드)
명쾌한 기독교 신학과 생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강해(윌리암슨)
로마서 외 다수 칼빈의 기독교 생활원리(윌레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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