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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인생을 찾다 (성경적 인생관, 2012.9.3 일부 수정) - 나용화 목사 (ApostlePaul /2012.08.25 )

2016.07.1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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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인생을 찾다.
(성경적 인생관)

나 용화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차 례
들어가는 말

Ⅰ. 인생의 정의

1. 하나님의 형상 : 왕적 존재
1) 예배하는 존재
2) 사회적 존재
3) 권세적 존재
2. 피조된 인격체
1) 의존적 존재
2) 책임적 존재
3) 공동체적 존재
3.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

Ⅱ. 인생의 목적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1)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2)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즐거워한다.
3)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한다.
3. 인생의 행복

Ⅲ. 인생의 문제

1. 사탄 마귀와 죄
2. 저주와 진노 : 불행과 비참

Ⅳ. 인생의 답 : 예수 그리스도

1.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1) 왕 : 사탄을 이기신 자
2) 대제사장 : 죄의 해결자
3) 선지자 : 예배의 회복자
3. 성경의 권세 때문이다.

Ⅴ. 인생의 비전

1. 하나님의 영광
2. 하나님의 나라

Ⅵ. 인생의 미션 :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마 6:33)

1. 의의 실현
1) 정의
2) 공의
3) 공정
2. 사랑의 실천
1) 은총(또는, 은혜)
2) 인애
3) 긍휼
3. 복음 선포

Ⅶ. 인생의 열쇠

1.유일한 열쇠 : 복음
2. 보조 열쇠
1) 믿음
2) 회개
3) 기도
4) 효행

맺는 말

성경에서 인생을 찾다.
들어가는 말

세상적으로 소위 잘 사는 나라들이라고 분류되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율은 제일 높고(하루 평균 33명) 행복지수는 제일 낮다고 한다(100점 만점에 20점). 청소년들 뿐 아니라 연예인들 그리고 사회지도층 등 모든 계층에서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살한다. 자살율이 높은 것은 행복지수가 낮기 때문인바, 행복지수가 낮은 까닭은 사람들이 인생을 잘 모르기 때문인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 철학 뿐만 아니라 신학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묻고 생각해야 할 주제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이란 무엇인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철학적 사고방식 또는 종교적 교육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이 어려서부터 훈련되지 못한 채, 취학 연령에 이르기도 전부터 대학 진학 준비에만 경쟁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비극적 불행의 단초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인생을 생각할 겨를이나 여유가 없다. 행복을 추구할 마음조차 가져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낯설 뿐이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규모가 제법 큰 서울 지역 교회의 유명하다는 여자 목사님)이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서 찾으면 안된다고 설교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자살율을 낮추고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성경적으로 인생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왜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하는가? 인생은 왜 비참하고 절망하는가? 인생의 답은 무엇인가? 어디서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가? 비전이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고 하는데, 인생의 비전은 무엇인가?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인생의 미션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생의 미션을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성경은 이같은 인생의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는가?

Ⅰ. 인생의 정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또는, 영)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 2:7)

인생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참된 지혜의 시작이다. 철학뿐 아니라 신학도 인생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루는 신학도 사실상 사람 곧 인생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 말에서 인류, 인간, 인생, 그리고 사람이라는 단어들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국어사전들을 찾아보면, ‘인류’는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인간’과 ‘사람’의 경우는 별다른 차이 없이 사람의 됨됨이를 이르는 말이며, ‘인생’은 목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에 비하여, 성경적으로 살펴보면, ‘인류’는 하나님께서 짐승과 구별하여 종류대로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따라 만든 큰 가족을 이르는 말이고(행 17:26), ‘인간’은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시어 ‘너와 나와 그’가 사이 좋게 이룬 사회적 공동체적 존재를 이르는 말이며 (창 1:26-28), ‘인생’은 하나님이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또는, 영 : 히브리어로 ‘니쉬마’인 데 ‘루아흐’와 함께 ‘영’을 가르킨다) 불어 넣어 만드신 생명체를 이르는 말이고 (창 2:7), ‘사람’은 하나님 뿐 아니라 이웃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사는 사랑의 주체를 이르는 말이다 (마 22:37-40 ; 참고, 영어와 독일어의 경우 ‘사랑하다’는 말과 ‘살다’는 말은 어근이 같다. 우리말의 ‘사랑’과 ‘사람’은 생김새가 아주 비슷하다).

1. 하나님의 형상 : 왕적 존재

주께서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시 8:5)

신학의 눈을 가지고 성경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면 한마디로,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형상’이라는 이 단어는 성경에서 ‘모양’이라는 말(창 1:26)이나, ‘우상’이라는 말(출 20:4; 시 106:19, 20; 롬 1:23)과 함께 쓰이고 있다. 사람들이 만드는 ‘우상’의 경우는, 사람들의 최고의 자랑이요, 영광이요, 기쁨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인기를 누리는 경우에서 우상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에 비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형상’의 경우는 영광과 존귀로 왕관을 쓴 (시 8:5),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 43: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왕같은 존재를 이르는 말이다 (사 43:7). (참고, 고대근동지방에서는 왕을 가리켜 ‘신의 형상’이라고 하였다. 허버트 리빙스턴,「모세오경의 문화적 배경」p. 191.)
하나님의 최고 최상의 형상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시다.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바로 그 형상이요 (고후 4:4),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스스로 계시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골 1:14; 2:9), 이 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을 명쾌하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시다 (히 1:3).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예수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고 하였다 (롬 8:29-30).
하나님의 참 형상이신 예수님의 직분과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명쾌하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직분을 보면 그는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으로 사셨다.

1) 예배하는 존재

여호와롤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거룩한 이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잠 9:10)

첫째,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사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할 뿐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시며 사셨다 (참고, 요 4:34; 히 10:7).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예수님을 닮아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어 그를 예배하고 사랑하며 신뢰하고 복종하되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예배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요 4:24),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참고, 롬 1:21 ; 사 42:12). 잠언에 말씀되어 있는대로, 인생의 시작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것이다 (잠 1:7; 9:10).

2) 사회적 존재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2:10)

둘째,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온전히 이웃을 향하여 사셨다. 그는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죄인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어 죄를 용서하며, 자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다 (막 10:45; 요 15:13).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탄 마귀가 고소하지 못하게 중보자로서 중보 기도하신다 (롬 8:34). 이로 보건대, 예수님을 닮아 사는 우리도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마 22:39; 롬 12:10), 이웃의 짐을 함께 지며 (갈 6:2), 형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서로 용서해야한다 (잠 17:9;골 3:13, 벧전 4:8).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딤전 6:18),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좋아해야한다 (참고, 롬 15:30; 고후 1:11).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사귐을 갖고 살아야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3) 권세있는 존재
주께서 그로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시 8:6)

셋째, 예수님은 왕이시다. 왕이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되 (골 1:16-17), 큰 권능과 기적과 놀라운 일들과 표적들을 행하시고 (행 2:22) 마귀와 마귀의 일을 멸하시되 (요일 3:8; 히 2:14),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마귀를 무장해제시키고 승리하셨다 (골 2:25). 이로 보건대, 우리도 예수님처럼 왕같은 권세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의 동산에서 땅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모든 들짐승과 새들을 관찰하게 하셨는가 하면(창 2:15, 19)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 28). 즉, 만물을 사람의 발 아래 두시어 다스리게 하는 통치권을 주신 것이다(시 8:6). 또한 왕적 존재이기에 사탄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는 권세가 있다 (벧전 5:9; 약 4:7)(참고, 후크마, 「개혁주의 인간론」pp. 131-145).
하나님의 형상인 인생은 예수님처럼 선지자의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예배적 존재요,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이웃을 향하여 사랑으로 섬기며 사귐을 가지고 사는 사회적 존재이며, 왕의 직분을 가지고 자연 만물을 보살피며 다스리되 사탄 마귀를 대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사는 권세적 존재이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하나님의 기쁨인 것이다 (사 62:4).

2. 피조된 인격체(a created person)

1) 의존적 존재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분은 너희 도움이시고, 너희 방패이시다. (시 115:9)

인생은 본질상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살아야 하는 의존적 인생이다. 그래서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시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시 18:1)라고 했는가 하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분은 너희 도움이시고 너희 방패이시다…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분은 너희 도움이시고 너희 방패이시다” (시 115:9-11)고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경외하거나 동행하지 아니하면, 사탄 마귀의 미혹을 받아 자기 좋은 대로 행하고(삿 21:25) 제멋대로 안일하게 살며(잠 1:32) 세상 풍조를 따라 죄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엡 2:2)

2) 책임적 존재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 6:8)

그리고 우리는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인격체요 따라서 책임적 인생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법과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요 책임이다 (마 6:33). 미가 선지자가 말한 바,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한 대로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구원과 관련해서도, “더욱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힘써서”이루어야 하고(빌 2:12), 더욱 힘써 믿음과 덕과 절제와 인애와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벧 1:5-7, 11)

3) 공동체적 존재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 곧 사랑의 공동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사랑으로 서로 사귐과 섬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공동체적 인생이다. 서로 자신들을 내어 줌으로 피차 존경하고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요 15:13)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먼저하며…성도들이 필요로하는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써라.…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라” (롬 12:10, 13, 15)고 권하였다. 또한 상부상조하며 합력할 줄 알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엡 2:21; 4:12)
3.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

나는 참으로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너희는 스스로 구별하여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레 11:44 상)

한편, 우리는 은혜와 인애와 긍휼이 많으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시 103:8; 112:4)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사 63:16),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의롭고 거룩하며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인생이다 (엡 4:24; 골 3:10).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호 6:3).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알기를 원한다” (호 6:6). 그리고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의로워야 한다 (레 11:44-45). 또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것이다 (롬 12:21).

Ⅱ.인생의 목적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에 있는 것들을 찾아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마라. (골 3:1-2)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생의 존귀성은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 때 빛이 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신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아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생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말한 바에 의하면,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목표(또는, 목적)가 너무 높아서 놓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낮아서 너무 쉽게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하늘에 있는 것들에 두지 아니하고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에 둘 경우 우리 인생은 불행하고 위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목적이 없이 사는 인생은 무지하여 참으로 비참하고 위험할 수 밖에 없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사이에서 그분에 대한 찬양이 선포되게 하여라. (사 42:12)

예배하는 존재로서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 1문답).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영어로, to glorify God)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영어로, to make God glorious)는 뜻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고서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한 것처럼(눅 2:20)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면, 여호와의 성령으로 충만한 종 메시아가 민족들에게 정의를 베풀어 약한 자들이 낙담하지 않게 하는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찬양을 우상들에게 결코 주지 아니할 것을 다짐하시고, 모든 섬들과 그 거주민들까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이 선포되게 하라 하셨다(사 42:1-12).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그가 말했는가 하면(사 43:7)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고도 하였던 것이다 (사 43:21).
바울도 말하기를, 하나님을 참으로 알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게 되며(참고, 롬 1:2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10:31)고 하였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며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시 150:6). 이는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아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요 4: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인생의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기에 (잠 1:7),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아, 지금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호와 네 하나님을 경외하며…그분을 사랑하며 네 마음과 네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섬기는 것(예배하는 것)이 아니냐?” (신 10:12). 또한 다윗이 찬양한 것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하신 일을 백성들 가운데 알려라…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대상 16:8, 34)고 하였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택(예, 죄악에 대한 용서와 질병의 치유,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 공의와 정의를 행하심)을 잊지 말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였고(시 103:1-8), 하나님의 선하심이 크고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고도 하였던 것이다 (시 136:1-3).
이로 보건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며, 그를 경외하여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인생은 그의 목적을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피조물로서 유한하고 연약한 자신에게 두고서 자신을 신뢰하고 자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스러운 것이다.

2.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그때에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분의 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 (시 35: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즐거워한다’(영어로 enjoy)는 말이 ‘기쁘시게 한다’(영어로 please)는 말과 다르다는 점을 우선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의 목적의 근본적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즐기는 것 곧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노래하기를, “비록 무화과 나무가 싹을 내지 않고…우리에 양이 없어지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합니다”(합 3:17, 18)라고 하였다. 다윗도 여호와께 말씀드리기를,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님밖에는 나에게 복이 없습니다”(시 16:2)고 고백하였는가 하면, “여호와시여, 왕이 주님의 권능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주님의 구원을 크게 기뻐합니다”(시 21:1)고 했고, “그때에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분의 구원을 기뻐할 것입니다”(시 35:9)고도 하였던 것이다.

1)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분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시 135:3)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한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바, “지혜자는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며, 힘센 자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자기의 부를 자랑하지 마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을 자랑할 것이니, 곧 명철하여 나(여호와 하나님)를 아는 것과, 곧 나 여호와는 인애와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다”(렘 9:23-24)라고 한 대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자랑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이다. 예레미야의 이같은 말을 인용하여 바울은 말하기는, “기록된 것과 같이, 자랑하는 자는 주님을 자랑하여라”(고전 1:31)고 하였다.
2)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즐거워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땅을 물 위에 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시 136:5-6)

둘째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즐거워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지극한 환란 중에서 욥이 고백한바, “제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저의 눈이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티끌과 재 위에서 회개합니다”(욥 42:5-6)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후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나타난 위대하심과 지혜와 권능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참고, 욥 35-39장에는 창조의 신비뿐만 아니라 짐승들을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까지 밝혀져 있다.) 욥은 창조사역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고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서 경외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했으며(시 19:1-6; 136:5-6), 바울도 만물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고 영광 돌리며 즐거워했다 (참고, 롬 1:20-21).
산의 숲 속으로 들어가 보면 초록색 잎과 시원한 바람과 향기와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몸을 만져주고 영혼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찬송가 작사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나타난 솜씨와 권능과 영광과 사랑을 노래하는 가운데 즐거워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한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갈 6:14상)

하나님의 창조사역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 형제, 자매, 그리고 자녀 등 가족을 이루게 하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에녹은 험난한 세상에서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며 즐거워했기에 하늘로 올라가는 은혜를 입었었다 (창 5:21-24). 아내와 자식들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알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가 행복한 것이다 (시 127-128편).
이와 더불어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속죄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어 그의 유일한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셨고(요 3:16), 그의 아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속죄제물로 바치셨다(막 10:45).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던 것이다(롬 5:8). 이같은 사랑을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고전 2:2; 갈 6:1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뻐했다(롬 5:2, 11).

3. 인생의 행복
이러한 백성은 행복하며,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모신 백성은 행복하다. (시 144:1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즐거워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들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들어 아담과 하와가 살게 하신 에덴의 동산이 행복의 동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행복해야 되기에(신 33:29),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모신 자들은 행복하다(시 144:15)고 다윗은 고백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는 자마다 행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 (신 10:12-13).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서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그들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참고, 창 1:31에서 사용된 ‘좋았다’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이 단어가 신명기 10:13과 33:29, 시 122:9에서는 ‘행복하다’로 번역되어 있다). 예수님도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슬퍼하는 자들, 온유한 자들과 의에 목마르고 주린 자들, 긍휼히 여기는 자들과 마음이 청결한 자들, 화평케하는 자들이 행복하다고 하셨다 (마 5:3-10 ; 참고, ‘복되다’는 단어는 ‘행복하다’를 의미한다. 참조, 박창환 역「신약성경」). 행복, 이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생의 목적이다.

Ⅲ. 인생의 문제

주님의 노여움으로 내 육체에 성한 데가 없으며,
나의 죄 때문에 내 뼈에 온전한 데가 없습니다. (시 38:3)

하나님은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에덴에 행복 동산을 만들어 여러가지 좋은 것들을 제공해 주시고,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하며 즐거워하게 하셨으며, 안식일을 제정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행복을 누리게 하셨는가 하면,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행복을 선포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상실하여 행복지수가 낮고, 결과적으로 자살율이 높은 까닭은 무엇인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인생을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는가?
다윗은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이 임하여 자신이 불행하게 되고 신음하며 울부짖는다 하였고(시 38:3, 8), 사도 바울도 자신이 비참한 사람인 것을 탄식했다(롬 7:24). 그러나 가정에서 보면, 자녀들은 자신들이 힘들거나 어렵게 되고 또 무슨 일이 뒤틀리면 대체로 부모님을 탓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탓하고, 회사에서는 사장님을 탓하며,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탓한다. 세상에서는 기근이 들거나 태풍과 폭우로 재난이 발생하거나 전염병이 돌게되면 하나님을 탓한다.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거나, 사탄 마귀를 비난하는 일은 거의 없다.
1. 사탄 마귀와 죄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체질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나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눅 22:31-32 상)

성경은 인생의 불행의 원인을 사탄 마귀에게서 찾는다. 인생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실 리가 없다. 사탄 마귀는 처음부터 본질상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이다 (요 8:44).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사탄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를 범하여 타락하게 하였고,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당하여 불행하고 비참하게 된 것이다 (창 3:1-7, 16-19).
이 사탄 마귀가 예수님마저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하였고(마 4:1-11),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아 넘겨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는가 하면(요 13:2, 27; 18:1-4), 또 다른 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도 사탄이 심하게 미혹하여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하였으나(눅 22:31-34, 54-62),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사탄 마귀를 결박하여 무장해제시키고 무력하게 만들어 마침내 승리하신 사실(골 2:15)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인생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결코 아니고, 사탄 마귀에게 있는 것이다.
사탄 마귀로 말미암아 우리가 범하는 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죄로 인하여 우리가 만복의 근원이요 우리의 창조주이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떠나 물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사 59:2). 사탄 마귀는 우리 안에 정욕(호 2:13)과 탐욕(딤전 6:10)을 품게하여 하나님을 싫어하게 만들고 멀어지게 한다 (사 1:4)
둘째, 죄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함으로 스스로에게 노예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귀적인 정욕에 이끌려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자마다 호세아 선지자의 음탕한 아내 고멜이나, 누가복음에 소개된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그 작은 아들의 경우처럼,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즐기며(참고, 딤후 3:1-4) 허랑방탕하여 각종 악을 행한다 (참고, 롬 1:28-32). 이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기 때문이다. 죄는 우리에게 자기 생각을 내세워, 즉 자기를 주장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고, 이로써 하나님과 원수 관계를 맺어 대적하게 한다 (참고, 롬 8:7).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가 문제인 것이다.
넷째, 죄가 우리로 하여금 부패하고 더러워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마다 그 마음이 부패하여(렘 17:9) 그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인, 비방 등이 쏟아져 나와 사람을 더럽히기에(마 15:18-20),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죄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탄 마귀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범한 죄와 악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멀리하고, 이기적 탐욕에 빠지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우리가 부패하고 더러워지기 때문에, 죄가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선하시어 결코 죄를 범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따라서 하나님은 악인이 자기의 죄를 인하여 죽는 것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고 (겔 18:23), 악인이 자기의 악한 행위에서 돌이켜 생명 얻는 것을 진실로 기뻐하신다 (겔 33:1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딤전 2:4).
2. 저주와 진노 : 불행과 비참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 (엡 2:1)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첫째 아들 가인의 경우를 보면, 그는 여호와께 말하기를, “저의 형벌이 제게 너무 무겁습니다…저는 땅에서 피하며 떠도는 자가 될 것이며 저를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창 4:13-14)라고 할 정도로 심히 비참하고 불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인은 본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이었기에 부모에게 너무나 귀한 선물이었다 (창 4:1). 가인은 부모된 아담과 하와가 기대하는 바가 컸던 까닭에,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을 뿐 아니라(참고, ‘가인’이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많은 것을 받은 자’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가장 귀한 직업인 땅을 경작하는 농업을 하게 되었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에게 보배롭고 존귀하였으며, 아벨에 비하여 훨씬 인정 받은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또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악한 자 곧 사탄 마귀에게 속하여(요일 3:12)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멀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창 4:5).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했으며, ‘세월이 흘러’(창 4:3)라는 말로 미루어 보아 한번만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믿음이나 감사가 없는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그가 하나님께 화를 내고 얼굴을 붉힌 태도로 보아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아벨을 쳐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창 4:8). 이는 그가 속한 사탄 마귀가 처음부터 살인자였기에(요 8:44)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인은 부모의 기대를 배신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였으며, 동생을 살해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였다. 사탄 마귀와 죄로 인하여 그는 비참하고 불행하게 된 것이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떠나 하나님 없이 살아갔다 (창 4:16).
모세가 일어준 바에 의하면, 악한 사탄 마귀에게 속하여 죄 곧 악한 행위를 범하게 되는 때 모든 저주가 덮쳐 오는데,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광주리도, 반죽 그릇도, 태의 열매도, 땅의 열매도, 모든 일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받게 되고, 각종 전염병과 폐병, 열병, 피부병, 전쟁에서 포로되고 착취당하는 일 등 모든 불행과 재앙이 임하여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신 28:15-68).
신약의 경우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잃은 아들(또는, 탕자)에게서 단적으로 인생의 행복을 상실한 까닭을 찾아볼 수 있다. 잃어버린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고 반지도 끼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벌인 것으로 보아, 그 아들은 아버지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였다 (눅 15:22-24).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서 제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지방으로 갔다.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자기 재산을 전부 낭비하였다. 그때 그 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 그는 궁핍하게 되었고, 돼지들을 치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조금도 주지 아니하였다. 그는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였다 (눅 15:11-17).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 있는 부모에게 죄를 범한 까닭에(눅 15:18) 그처럼 비참하고 불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죄 가운데 행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사탄 마귀를 따라 행하여 우리의 육체의 욕망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 타락하여 허물과 죄로 죽어 비참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엡 2:1-3).
결론적으로, 사탄 마귀와 죄가 인생의 문제이다. 우리가 불행하고 비참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사탄 마귀와 죄 탓이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산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이 우리를 결국은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함으로써, 사탄 마귀와 죄를 좇아 육체의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우리의 불행과 비참의 원인이다. 행복 지수가 낮아지고, 자살율이 높아지는 근본적 원인이다.

Ⅳ. 인생의 답 : 예수 그리스도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요 4:42)

우리가 인생의 목적대로 살려면 문제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문제를 알면 답이 보이는 법이다. 우리의 불행과 비참의 원인이 사탄 마귀와 죄에 있으므로, 사탄 마귀를 결박하여 무장해제시켜 멸망케 하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분과 그가 행하시는 의가 곧 문제의 답이다.
사탄 마귀가 가장 무서워 떠는 자가 누구인가? 사탄 마귀 자신이 밝힌 대로 나사렛 사람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가장 역동적으로 기술한 마가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시면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후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셔서 메시아로서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그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어 권세있게 성경을 가르치셨다. 바로 그때 회당에 더러운 영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더러운 영은 나사렛 사람 예수님을 보는 순간 사시나무 떨듯하며 “당신이 우리를 멸하려 왔습니까?”하고 소리치는가 하면, 그 더러운 영 들린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사람에게서 나갔었다 (막 1:21-28). 이 일로 인하여 온 성읍 사람들이 저녁 무렵 악령 들린 자들을 모두 떼로 예수님께 데려오자 많은 악령들을 쫒아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악령들의 입을 단속하여 자신에 대하여 아무 소리도 못하게 금하셨다 (막 1:32-34).
예수님은 열 두 제자가 악령들을 쫓아내는 권세를 가지게 하시려고 사도로 세우시고(막 3:13-19), 천국을 비유로 가르쳐 주셨다 (막 4:1-34). 그리고 예수님은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가르치시던 중에 열 두 사도를 둘씩,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면서 악령들을 제압하는 권세를 주시기 전에(막 6:6-7),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무덤들 사이에서 아주 흉폭하고 더러운 영 들린 한 사람이 지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흉폭했던지 쇠사슬과 족쇄로 묶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를 제압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덤들 사이에서 괴성을 지르고 날카로운 돌조각으로 제 몸을 상하게 하였다. 헝크러진 머리칼, 징그러운 얼굴, 찢어져 벌렁이는 누더기, 선혈이 낭자한 몸의 그 더러운 영 들린 사람은 멀리서 예수님을 보자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지 마소서”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를 사로잡은 더러운 영은 그 이름이 ‘군대’인데서 알 수 있듯이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님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오돌오돌 떨다가 쫓겨나 큰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자, 그 돼지들은 바다로 돌진하여 빠져 죽었다 (막 5:1-13).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유대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하시던 때 그를 시험하며 괴롭히기도 했는가 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끝 무렵에는 자신의 제자에게 배반당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저주와 수치 가운데서 죽게 했던 그 사탄 마귀가 나사렛 사람 예수님을 무서워하고, 그 분 앞에서 제압당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로써, 그 마귀로 말미암은 우리 인생의 문제, 곧 불행과 저주와 비참함에 대해 예수님이 답이 되신 까닭은 무엇인가? 인생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얻어야 할 답이 왜 예수님이신가?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1.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니, 그 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다. (요일 5:20 하)

첫째, 예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더러운 영이 알고 두려워한 나사렛 사람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막 1:24)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막 5:7)이시다. 이같은 악령의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간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답하면서 한 고백,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와도 일치한다.
짐승들이 자기보다 몸집이 크거나 힘센 상대 앞에서는 무릎을 꿇거나 등을 보이고 피하는 것처럼, 사탄 마귀는 자기보다 월등하게 크고 강한 하나님의 아들,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스스로 꿇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또 그들(악한 영들)을 이겼으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분께서 세상에 있는 자(사탄 마귀)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요일 4:4)고 말할 수 있었다.
사도 요한이 증거한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말씀, 곧 하나님(요 1:1)이시요, 우리가 듣고 보고 만져 본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일 1:1)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하신 분(요 1:14), 곧 유일하신 하나님(요 1:18), 참 하나님(요일 5:20)이시다.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요 참 하나님이심을 확증하기 위하여 그의 복음서에서 일곱 마디의 증거(‘하나님의 어린 양’, 1:29, 36; ‘메시아’, 1:41; 4:29; 11:27;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1:49; ‘세상의 구주’, 4:42; ‘선지자’, 9:17; ‘나의 주, 나의 하나님’, 20:28)와, 일곱 이적(물을 포도주로 만드심, 2:1-10; 신하의 아들을 살리심, 4:43-54;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5:1-9; 오천명을 먹이심, 6:1-15; 물 위로 걸으심, 6:16-21; 맹인의 눈을 뜨게하심, 9:1-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11:1-44)과, 그리고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하신 일곱 마디의 ‘나다’(I Am)(참고, 물 위로 걸으신 예수님은 자기를 보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나다’하셨고<6:20>,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대답하실 때 ‘내가 곧 그이다’고 하신 것<18:5>은 자신이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나다<출 3:14>이신 것을 밝히기 위함이었다.)(‘생명의 빵’, 6:35, 41, 48; ‘세상의 빛’, 8:12; 9:5; ‘양들의 문’, 10:7, 9; ‘선한 목자’, 10:11, 14; ‘부활과 생명’, 11:25 ; ‘길, 진리, 생명’, 14:6; ‘참 포도나무’, 15:1)를 소개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스스로 참 하나님이요, 모세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되고 하나이시며 (요 5:18),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요 1:33)이시요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보내시는 분(요 14:16-17; 16:7; 참고, 행 2:33)으로서, 본래 성령과 권능으로 충만하셨고(눅 3:22; 4:1, 14), 아버지 하나님과 상호 내주하고 계신다 (요 14:10-11).
이렇듯, 예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요,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성부 하나님과 상호 내주하고 계시는 까닭에, 그분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사탄 마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그보다 월등하게 크고 강하시다. 그러기에 사탄 마귀가 예수님 앞에서 제압당하고 파멸되는 것이 당연하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사탄 마귀를 제압하는 권세를 주셨을 뿐 아니라 (막 3:15; 6:7), 그를 믿는 자들에게도 이 권세를 주셨다 (막 16:17). 믿는 자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사탄 마귀를 대적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롬 16:20; 엡 6:13; 약 3:7; 벧전 5:9-10).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못박혀 매달리심으로 무력화 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으며 마귀에게 철저하게 패배당하신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그 십자가로 예수님이 사탄 마귀를 무력화시켰고 큰 수치를 공개적으로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가운데 승리하셨다 (골 2:15). 이로써 우리가 전에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의 뜻을 좇았으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 마귀의 그 올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며 (딤후 2:26), 마귀를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대적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이같은 까닭에,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이다.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 16:16)
둘째, 시몬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서에 보면,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그와 정혼한 여자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였고 (마 1:21; 참고, 눅 1:31), 누가복음에 보면, 그 주님의 천사가 베들레헴 근처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께서 태어나셨으니,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시다”(눅 2:11)고 하였다. 그리고 베드로는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마 1:1)고 하고서, “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마 1:16)고 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마 1:18)고 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처음부터 밝히 말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이고, 우리 말로 번역하면 ‘기름부음 받은 자’(시 2:2)이다. 그는 바울이 말한대로,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갈 4:4).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들을 주시면서…‘그리고 네 자손에게’라고 하셨으니, 이분이 곧 그리스도이시다” (갈 3:16). 또한 베드로의 오순절 첫 설교에 언급된 대로, “그(다윗)가 선지자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의 보좌에 앉히시겠다고 그에게 맹세하신 것을 알았다” (행 2:30).
바울과 베드로가 이처럼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씨(창 3:15), 아브라함의 자손(창 12:7; 17:7), 그리고 다윗의 자손(삼하 7:12; 22:51)으로 오신 메시아이시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는 삼중의 직분, 곧 왕, 대제사장, 선지자의 직분을 가지셨고, 이 직분의 권세로 사탄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의 구주요, 중보자가 되셨던 것이다.

1) 왕 : 사탄을 이기신 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 용서를 베푸시려고
이분을 오른손으로 높여 영도자(임금)와 구주로 삼으셨으니 (행 5:31)

참 하나님이자 주님이시요 구주(요 20:28; 벧후 1:1, 11; 딛 2:13)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사 9:6)이요,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은 통치자 (눅 1:31-33 ; 행 5:31)이시며, 만왕의 왕(계 19:16)이시다. 그는 왕이시기에 하나님 나라와 백성의 대적자(벧전 5:8)요 원수인 사탄 마귀를 이기시고(창 3:15; 골 2:15; 히 2:14) 마귀의 하는 일 곧 정죄와 고소와 저주를 멸하셨다 (요일 3:8). 그는 마귀와 마귀의 일들을 멸하심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그의 몸의 지체로서 그에게 연합되어 있는 자들에게 정죄나 저주가 없게 하신 것이다 (갈 3:10; 4:4-5; 롬 8: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들에게는 심판도, 정죄도, 저주도 없기 때문에, 사탄을 이기신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문제의 정확한 답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곧 왕이시기에 그의 나라를 이 땅에서 우리 가운데 세우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들 가운데’ 즉 ‘너희가 살고 있고 너희 눈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임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눅 17:21). 그는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을 뿐 아니라 (막 1:15), 맹인들이 보게하고, 앉은뱅이들이 걷게하며, 나병 환자들을 깨끗케 하고, 귀머거리들이 듣게 하는 등 (마 11:5)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고 치유하시고 (마 8:16-17), 악령 들린 자들에게서 악령을 쫓아내시며 (마 8:16상, 26-34), 굶주린 무리들을 불쌍히 여겨 먹이시고(마 9:35-38), 죄를 용서하시며 (막 2:10 ; 눅 17:3-4), 특별히 성령을 힘입어 악령을 쫓아내시는(마 12:28) 등 회개와 죄 용서 및 의와 인애를 베풀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행 5:31). 그분이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를 얻어 누리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 그분이시기에 우리의 인생의 답이신 것이다.

2) 대제사장 : 죄의 해결자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니, 신앙고백을 굳게 붙잡자. (히 4:14)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왕이실 뿐 아니라 또한 대제사장이시다 (히 4;14). 구약에서 대제사장은 성소의 번제단에서 제물을 잡아 가지고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갔으나(히 5:1-3; 8:3), 아브라함을 축복했던(창 14:17-20) 멜기세덱의 특별한 제사장 계열을 따른(히 7:15) 예수님은 영원하고 영구적인 제사장직을 가지셨으며(히 7:24),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며 하늘보다 높으신 분 (히 7:26)이시나, 죄인된 우리들을 위하여 스스로 먼저 자신을 자기의 피로 거룩하게 하시고 (요 17:19; 히 9:12-14), 자기의 몸을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물로 드리시어 우리의 범죄들을 대속해 주셨다(막 10:45; 롬 3:25; 히 9:15, 26-28; 10:10-14). 그가 십자가 상에서 속죄제물로 자신의 몸을 드리시어 사탄 마귀와 마귀의 일들을 멸하심으로 (히 2:14; 요일 3:8),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롬 5:10-11; 골 1:20-23).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화목하게 하심으로 둘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올 수 있게 하셨다(엡 2:11-18). 하나님의 백성 뿐 아니라 하늘 나라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엡 2:19)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이다(참고, 롬 14:17 ; 갈 5:1).
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탄 마귀가 더 이상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소하거나 정죄하거나 대적할 수 없게 하실 뿐 아니라 (롬 8:34),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항상 살아서 우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신다 (히 7:25).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처럼 우리의 죄를 인하여 속죄제물 되시고, 사탄 마귀를 멸하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항상 살아서 중보기도하시는 중보자요 대제사장으로서 죄뿐아니라 그 죄로 말미암은 모든 저주와 진노의 해결자 이시기에,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의 답이시다.

3) 선지자 : 예배의 회복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기를 “무슨 일이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들이니,
그분은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행위와 말씀에 권능이 있는 선지자이셨습니다.”
(눅 24:29)

그리스도 예수님은 왕이요 대제사장이실 뿐 아니라 또한 모세처럼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위와 말씀에 권능이 있는 선지자”(눅 24:19; 행 7:37)이시다. 선지자이신 그분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계시하실 뿐 아니라 (요 1:18; 마 11:27),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항상 지금도 계시하시되 (갈 1:12; 히 1:2) 성경을 가지고 (눅 24:27) 성령으로 계시하신다 (요 14:26; 16:13). 이로써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하게 믿고 고백하게 하며 (고전 12:3; 엡 1:17) 영생을 얻게 하신다 (참고, 요 17:3). 그리고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어(요 4:23) 하나님과 깊은 영적 사귐을 가지게 하시는 것이다 (요일 1:3).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성령으로 깊은 사귐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의 계시자이시기에, 그 분이 우리의 인생의 답이시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요,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서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 등 삼중의 직분을 가지신 분으로 죄와 사탄 마귀를 해결하신바 우리의 구주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이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이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얻게 하실뿐 아니라 죄를 씻어 성결케 하시며, 이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시어 하늘에 함께 앉게 하시는 영적인 복을 우리로 하여금 충만하게 누리게 하신다(참고, 엡 1:4-7; 2:6). 이렇듯,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와 자유를 얻어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영생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기에, 그분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답이신 것이다.

3. 성경의 권세 때문이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양날 선 검보다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 (히 4:12)

셋째,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거하는 성경의 권세 때문이다. 성경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문자는 죽은 것이요, 사람을 죽일 뿐이다 (고후 3:6). 그러나 성경은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히 4:12) 항상 있으며 (벧전 1:23), 영이요 생명으로서 (참고, 요 6:63) 예수님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한다 (참고, 요 20:31). 또한 성경은 성령의 검이기에 (엡 6:16; 참고, 히 4:12) 사탄 마귀를 넉넉히 대적하여 승리케 하는 권세가 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전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요 5:39),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에 (요 20:31) 신적 권세가 있어 죄와 사탄 마귀를 이기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살아서 역사하는 사람마다 죄와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참고, 엡 4:27). 하나님께서 성경을 성령의 검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인 사탄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케 하기 위함이다 (엡 6:12).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죄와 사탄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게 하는 성령의 검이기에, 우리 인생의 답이다.
Ⅴ. 인생의 비전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 (잠 29:28)

잠언의 기자가 말하듯이, 계시 곧 예언적 비전(prophetic vision, ESV)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방자히 행하므로 인생을 망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생의 답을 찾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눈을 열어, 스데반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그분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게 된다. (행 7:55)

1. 하나님의 영광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으로 기뻐한다. (롬 5:2)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이 있으면 성령께서 꿈과 환상을 보여 주시기 때문에 (행 2:17) 비전이 보이게 되어 있다.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없어진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인 흡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기고 죽게 되자, 그 소식을 들은 엘리가 많이 늙고 비대하여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던 때, 그의 며느리 곧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해산하고서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던 바, 번역하면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이다 (삼상 4:21). 바울이 말한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롬 3:23).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고, 사탄 마귀가 사망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흑암의 왕국이 임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탄 마귀가 멸하여지면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히 1:3), 그에게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있을 뿐 아니라(골 2:9)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요 1:14). 또한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눅 17:21).
이로 보건대, 인생의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이다. 우리가 죄를 범하여 사탄 마귀의 올무에 걸려 그의 뜻을 좇아 종노릇하던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나 (롬 1:21; 3:23),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하게 되어 화평을 누리게 된다 (참고, 롬 5:1, 10). 또한 하늘 지성소에 앞서 들어가신 우리의 중보자요 대제사장이신 (참고, 히 6:19-20; 9:11-1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그 하늘 지성소의 은혜의 자리로 담대하게 들어가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한다 (롬 5:2; 히 10:19). 또한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딛 2:13).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새 예루살렘 성의 성전을 소망한다 (계 21:22-27).

2. 하나님의 나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마 6:13 하)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또한 인생의 비전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의 끝 부분에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마 6:13하)라고 되어 있는 바, 나라와 영광이 함께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 있는 바, 하늘의 거룩한 성 곧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 있고 (계 21:11, 23), 땅의 왕들이 자신들의 나라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 성으로 들어온다고 하였다 (계 21:24-26). 바울도 말하기를, 주님의 하늘 나라에는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다고 하였다 (딤후 4:18).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 행복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 5:3, 10).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고 (마 6:33),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힘입어 악령들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우리들에게 임한다고 하셨다 (마 12:28).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여 성령이 임하게 되면 꿈과 환상을 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의 나라를 구하게 되는 바, 이것이 인생의 비전이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의인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의인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이렇듯 의인들의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이다.

Ⅵ. 인생의 미션 :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 6:33)

인생의 비전은 인생의 미션으로 실현되고, 인생의 미션은 인생의 열쇠로 푼다. 인생의 비전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인 까닭에, 인생의 미션은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실현을 통하여 세워진다. 그리고 의의 실현은 사랑의 행위로 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은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마침내 성취된다.
1. 의의 실현

그때에 너는 공의와 정의와 공정,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잠 2:9)

최근에 하바드 대학교의 마이클 센달 교수의 강의와 저서의 주제인 “정의란 무엇인가?”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을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정의에 관심이 있다. 세상 사람들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하여 성경은 ‘정의’(justice, 히브리어 ‘미쉬파트’, 헬라어 ‘디카이오마’와 ‘디케’), ‘공의’(righteousness, 히브리어 ‘체데카’ 또는 ‘체뎈’, 헬라어 ‘디카이오쉬네’), 그리고 ‘공정’(equity 또는 fairness, 히브리어 ‘메이샤림’, 헬라어 ‘이소테스’)이라는 세 단어를 사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1) 정의

오직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여라. (암 5:24)
성경이 말하는 정의(justice)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법(法)으로 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다스리는 법치(法治)이다. 정의가 없으면 살육(bloodshed, 히브리어 ‘미쉬파흐’ ; 참고, 정의를 가리키는 ‘미쉬파트’와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이 자행된다 (참고, 사 5:7).
정의와 관련하여 그의 잠언에서 지혜롭게 구체적으로 가르친 솔로몬은 왕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이시여, 왕에게 주님의 정의를 주시고, 왕의 아들에게 주님의 공의를 주소서, 그가 공의로 주님의 백성을, 정의로 주님의 가난한 사람들을 판결할 것이니,…그가 백성 중 가난한 사람을 변호하고 궁핍한 사람의 자녀를 구하여, 압제자를 꺾을 것입니다.…그가 약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궁핍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할 것입니다.” (시 72:1-4, 13-14).
솔로몬의 잠언의 목적은 지혜와 훈계를 통하여 공의와 정의와 공정을 행하게 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다 (잠1:2-3, 7; 2:9). 지혜가 없어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과 정의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자신들을 죽이고, 안일하게 살다가 자신들을 멸망시킨다 (잠 1:32). 이에 반하여 지혜와 지식과 슬기와 신중함을 가지고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교만과 거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고 바른 판단과 의로운 법을 통해 의롭게 판결하고, 공의롭고 정의로운 길로 행한다(잠 8:12-16, 20). 정의를 행하는 것이 제사보다 여호와를 더 기쁘시게 하고 (참고, 삼상 15:22; 호 6:6), 의인에게는 기쁨이 된다 (잠 21:15).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도 십계명에서 인륜에 관한 도덕법을 주셨을 뿐 아니라(출 20:12-17), 사회적 약자인 종의 인권에 관한 법 (출 21:1-11), 폭행과 살인에 관한 법(출 21:12-27), 도둑질과 관련된 배상법 (출 22:1-4), 음행에 관한 법 (출 22:16-20),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법 (출 22:21-27), 소송에 관한 법(출 23:1-9)을 제정하여 주심으로 정의가 행하여지게 하셨다. ‘정의’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토라’와 함께 ‘법’을 가리켜 사용되기도 한다 (시 119:13, 20, 30, 43, 52, 75, 106, 108, 156, 160, 175).
신약에서는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가리켜 정의라 하였는가 하면 (롬 2:26), 자연법상의 선하고 바른 규범을 가리키기도 하였으나 (행 28:4), 특별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 의로운 행동(롬 5:18)을 가리킨다.

2) 공의

그분은 그들에게 정의를 기대하셨으나 도리어 살육이고,
공의를 기대하셨으나 보아라, 울부짖음이다. (사 5:7 하)

이 정의와 함께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 공의(righteousness)이다(참고, 시 72:1,2; 103:6; 106:3; 잠 21:3, 21). 공의는 하나님의 인애(steadfast love, 또는 covenontal love)를 따라 바르고 관대하게 행하는 인치(仁治)이다.(참조, 공의는 인애와 함께 자주 사용되어 있다. 시 85:10; 98:2-3; 101:1; 잠 11:17-19; 렘 9:24). 그래서 공의가 없으며 울부짖음(outcry, 히브리어 ‘체아카’ ; 참고, 공의를 가리키는 ‘체다카’와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사 5:7 하).
공의가 사람의 앞길을 바르게 하고 죽음에서도 구하여내는 것은(잠 11:4-6) 인애로 행하기 때문이다 (잠 11:17-19). 그래서 공의와 인애를 따라 행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생명과 영광을 얻는다 ( 잠 21:3, 21). 지혜로운 사람은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공의로 대변하기를 좋아한다 (잠 31:8-9).
이 공의가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스’ ‘디카이오마’ ‘디카이오쉬네’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의와 구별없이 쓰이고 있다. 이는 구약에서도 공의와 정의가 큰 의미상의 차이 없이 함께 또는 병행해서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공의가 정의와 의미상 구별없이 쓰여, ‘정당한 품삯’(마 20:4)의 경우처럼 ‘공정’(fair)을 의미하기도 하고(참고, 골 4:1), ‘옳은 것’(마 12:57)을 가리키기도 하며, ‘의로운 심판’(요 5:30)의 경우처럼 ‘의로운 것’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의로운 행위’(히 11:33), ‘의로움’(눅 1:75; 엡 5:9), ‘의’(마 5:6; 롬 1:17; 3:21; 6:13; 빌 3:9)의 의미로도 쓰였다.
그러나, 이 공의가 신구약을 막론하고 구원론적으로 사용되면, 명사형의 경우, ‘의로 여기다’(to count as righteousness)라는 의미로 쓰였다 (창 15:6; 롬 4:3). 동사형의 경우는, ‘의로움을 증언하다’(to prove right)(사 43:9), ‘의롭다 여기다‘(to count as righteousness)(욥 11:2; 32:2; 롬 3:26, 30; 8:30, 33), 또는 ’의롭다 선언하다‘(to declare righteous ; to acquit)(출 23:7; 신 25:1; 시 82:3; 잠 17:15; 사 5:23; 행 13:39; 롬 3:24; 6:7) 등을 뜻하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선언받은 자마다 이제는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이며 더 이상 죄와 사탄 마귀의 종이 아니기 때문에(롬 6:17-20), 몸의 욕망에 따라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바쳐서는 안되고, 성령을 따라 하나님께 대하여 살되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 거룩함에 이르도록 살아야 한다 (참고, 롬 6:12-13, 22)

3) 공정

왕은 강하시며 정의를 사랑하시니, 주께서 공정함을 견고히 하시고,
야곱 중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셨습니다. (시 99:4)

또한, 정의와 공의와 함께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단어는 공정(equity, 또는 fairness)이다 (참고, 시 99:4; 잠 1:3; 2:9). 이 공정은 힘있는 자나 가진 자가 힘없는 자나 가난한 자에 대하여 덕을 베풀어 형평을 이루어 함께 더불어 살게 하는 바 덕치(德治)이다. 이처럼 덕으로 행하는 공정은 가난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흩어 나누어 주고 (잠 11:24-25) 그들을 돌보고 호의를 베폴며 (잠 14:21,31; 19:17) 약한 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골 4:1). 예수님께서 부유하신 자로서 스스로 가난해지신 것은 우리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듯이 (고후 8:9), 우리도 우리의 풍족한 것으로 가난한 자들의 궁핍한 것을 채워 형평을 이루어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공정이 실현되는 곳에 복지 곧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며” (롬 12:13) 자원하여 약한 자들을 도웁고 베풀어 주기를 힘써야 한다 (눅 6:38 ; 행 20:35).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의롭게 정의를 행하고, 인애로 관대하게 공의를 행하며, 덕으로 돌보고 베풀어 공정을 실천하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확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2. 사랑의 실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실 수 있으니,
이는 너희가 모든 일에 항상 풍족하여
모든 선한 일을 넘치도록 행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고후 9:8)

이 의의 실천은 사랑의 행위로만 되어진다. 사랑 없는 의는 독단이나 독재가 되기 쉽다. 사랑 없는 법이 세상을 위협하는 독 또는 악이듯이, 사랑없는 공의나 공정은 자선이 아니라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공의와 정의는 은혜와 인애와 긍휼을 통해서 행하여지는 까닭에,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정직한 자는 은혜롭고 긍휼히 여기고, 은혜를 베풀어 꾸어 주되 정의로 행한다 하였다 (시 112: 4-5). 공의를 행하고 정의를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우시며 인애가 많으시되 (시 103:6-8), 또한 의로우시다 (시 116:5).

1) 은총(또는, 은혜)

여호와는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많으시다. (시 103:8)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는 은총 또는 은혜(grace, 또는 favor, 히브리어, ‘헨’, 헬라어 ‘카리스’)와, 인애(steadfast love, 히브리어, ‘헤세드’, 헬라어, ‘아가페’)와, 긍휼(mercy, 또는 compassion, a deep inward feeling, 히브리어 ‘라함’, 헬라어, ‘엘레오스’)등이 있는데, 이 세 단어는 가끔 짝을 이루어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시 103:8; 145:8).
은총 또는 은혜는 온 땅이 부패하고 폭력이 가득하던 때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바 있다 (창 6:8). 또한 애굽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해방되어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과 함께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을 때,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던 중 주님의 은총을 입게 해 달라고 간청하여 은총을 입은 바 있었다 (출 33:17).
아기 예수님의 경우 그가 자라면서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하던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 위에 있었고 (눅 2:40; 요 1:14),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들의 경우도 은혜와 능력이 충만했다 (행 6:8). 바울이 바울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고전 15:10).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롬 3:24; 엡 2:8). 이 은혜와 은총이 없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말미암는 죄 용서와 의롭다 함을 받는 구원이 있을 수가 없고, 우리가 은혜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마음조차 가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아무 선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혜가 있는 곳에 섬김과 베풂이 있다 (참고, 고후 8:4, 7; 9:8).

2) 인애

공의와 인애를 따라 행하면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는다. (잠 21:21)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인애’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인애는 변함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 내리 사랑을 뜻하는 바, 정의나 공의와 함께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어 있다 (시 85:10; 101:1; 103:6, 8, 17; 106:1, 3; 잠 21:21).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감옥에 애매하게 갇혔을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고 인애를 베푸시어 힘을 돋우셨다 (창 39:2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항상 크게 인애를 베푸시기에 (시 117:2; 118:1-4), 그의 창조사역에도 인애가 영원하고 (시 136:1-9), 그의 구원 사역에도 인애가 영원하며 (시 136 :10-22), 모든 육체에게 먹을 양식을 주심에도 인애가 영원하다 (시 136:25).
하나님의 이 인애로 인하여 그가 그의 유일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며 (요 3:16),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속죄제물로 내어 주심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인애를 확증하였다 (롬 5:8).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애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이다 (엡 1:4-6).
우리가 하나님의 이 크고 영원한 인애 곧 사랑을 받고 아는 까닭에, 우리도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과 열심으로 형제를 사랑하여 때로는 목숨도 버리고, 때로는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주어야 한다 (요일 3:16-18).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견딘다 (고전 13:4-7). 이 사랑 곧 인애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있다 (참고, 롬 14:17).

3) 긍휼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 5:7)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에 있어서, 은혜와 인애와 함께 사랑의 또 하나의 중요한 것으로 ‘긍휼’이 있다. 긍휼이라는 이 단어는 ‘불쌍히 여기다’ ‘함께 아픔 또는 깊은 정을 나누다’를 뜻한다. 영어 ‘compassion’에는 ‘a deep inward feeling'(‘깊은 속 정’)을 가지고 ‘함께 아픔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긍휼이라는 말은 단순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악령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던 때에 보여 주신 것처럼 연약한 자들의 연약함과 아픔을 떠맡아 함께 나누는 것을 뜻한다 (마 8:16-17). 이사야 선지자가 수난의 종 메시아를 가리켜 예언한 대로, 그분은 우리의 병고를 지고 슬픔을 당했고, 찔리고 상처받고 채찍에 맞고 짖밟히고 괴롭힘과 수치와 온갖 멸시를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시고서도 입을 열지 않고 잠잠하셨다 (사 53:4-7). 이같은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긍휼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산성설교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복이 있음을 말씀한 데 곧 이어서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긍휼에 대한 말씀이 팔복 가운데 중심부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에 있어서 긍휼은 결코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참고, 마 5:7).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도 풍성한 긍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엡 2:4).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도 우리 구주 하나님의 인애와 긍휼로 말미암는다 (딛 3:4-6).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시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을 때 (눅 17:21), 누가가 염두에 둔 것은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긍휼히 여기시어 치료해 주신 사건(눅 17:11-19)이었다. 긍휼이 베풀어지는 곳에 하나님의 구원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온전히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체감한 바울은 연약한 디모데에게 문안할 때에도, 특별히 긍휼을 기원하였다 (딤전 1:2; 딤후 1:2). 예수님도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된다고 하셨던 것이다 (마 5:7, 10).
3. 복음 선포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롬 1:17)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실천함에 있어서 정의와 공의와 공정을 따라 은총(또는, 은혜)과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 우리가 인생의 미션을 수행하지만, 이같은 미션은 복음 선포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선포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최우선 미션이었다. 예수님의 경우 유대 광야에서 40일의 금식기도 중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나서 곧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셨고(마 4:17, 23; 막 1:15; 눅 4:18, 43) 제자들을 세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마 10:7; 막 3:14; 눅 9:2). 부활 승천하시면서는 제자들에게 대위임 명령을 주시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복음을 전하라(마 28:19-20) 하셨고, 온 세상에 다니며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으며 (막 16:15),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같은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과 권능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행 2:14-36) 날마다 성전과 각 집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 전하는 것을 쉬지 아니했다 (행 5:42).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으며 (행 20:24) 마침내 로마에까지 이르러 자신의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던 것이다 (행 28:31-22; 참고, 롬 1:15). 그는 스페인까지도 갈 계획이었다 (롬 15:28).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처럼 전심전력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 것은,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기 때문이며 (롬 1:16; 고전 1:23-24),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롬 1:17 ; 3:21). 그런 까닭에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믿음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 죄와 사탄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사탄 마귀는 우리에게서 쫓겨나간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던 때 “온갖 병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모든 환자들과 악령 들린 자들”을 불쌍히 여겨 치료하심으로 (마 4:24) 큰 무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랐으며 (마 4:25)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 (마 12:28). 그리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에도 많은 악령들을 쫒아내고 많은 병들을 고치셨으며 (막 6:12-13; 눅 9:1-6), 악령들이 저희들에게 복종하고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져 패하기까지 하였다 (눅 10:18-20).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는 더욱 권세 있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악령들을 제압하며 병든 자들을 치료하였는가 하면 가난한 자들을 섬겨 구제하는 일을 힘썼다. 이로써 믿음과 회개의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현하며 사랑을 실천하였다 (참고, 행 2:40-47; 4:13, 32-37; 5:12-16).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권능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요 (마 4:23; 눅 4:43),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의의 복음이다 (롬 1:16). 그러기에,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복음이 힘있게 선포될 때 칼빈의 경우 제네바시에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의가 실현되었으며, 웨슬레의 경우 영국이 회개하고 갱신되었고, 1885년 우리 나라에 복음이 선포되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실현되고 복음의 능력으로 일제의 핍박과 학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 죄와 어두움의 권세가 꺾였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대위임 명령을 제자들에게 내리셨고 (마 28:18-20), 사도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였다 (딤후 4:2). 이뿐 아니라 복음 선포가 종말에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혜의 징조인 점(마 24:14)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복음선포는 인생의 미션 중의 최고 최대의 미션이다.
요약하자면, 인생의 미션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인바, 이 미션은 구체적으로는 정의와 공의와 공정을 행하되 은혜와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서 수행한다. 이 미션을 사실상 가능케 하는 것은 복음선포이다. 복음선포는 미션 중의 미션이다.

Ⅶ. 인생의 열쇠

1.유일한 열쇠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되게 하려는 것이다. (딤후 3:17)

비전은 미션으로 실현되고, 미션은 열쇠로 풀게 되어 있다. 인생의 열쇠는 사실은 하나이다. 복음의 말씀 곧 성경이 인생의 유일한 열쇠이다. 성경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열쇠이다.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한다. 모든 성경은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되게 하려는 것이다”(딤후 3:15-17). 이 열쇠가 인생의 답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만나게 해 준다(참고, 요 5:39; 20:30-31).
우리가 성경 곧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될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영접하고 회개하며,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따라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땅의 부모를 공경하여 효를 행하는 까닭에, 믿음과 회개와 기도와 효행이 보조 열쇠들이다.

2.보조 열쇠

1) 믿음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첫째 열쇠인 믿음에는 복음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진리 곧 예수님을 아는 지식(지성적 요소)과, 그 진리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찬동(감성적 요소)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순종하는 신뢰(의지적 요소) 등 세 가지 요소가 전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좀더 성경적으로 쉽게 말하자면, 믿음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영접하여 (요 1:12) 그분과 성령으로 신비한 연합을 이루어 (요 15:5) 한 영이 되는 것이다 (고전 6:17). 즉, 영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고전 12:12-13, 27).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함께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함께 산다 (롬 6:3-11).
이렇듯 예수님을 영접하여 한 영,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믿음은 신뢰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았다 (창 15:6). 하나님의 인애함을 알고 또 그가 우리 편이 되시어 도우시는 것을 아는 자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시 118:5-9).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신뢰이다 (마 23:23).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 14:1)고 말씀하신 것도 신뢰함으로 근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하는 자마다 선하시고 위대하신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되는 까닭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예수님을 시인하고 고백하며 자랑하게 된다 (롬 10:10 ; 고전 1:31). 하박국 선지자의 경우를 보면, “나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합 3:18)고 고백하였고, 수가성의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고서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알았다”(요 4:42)고 자랑하며 증거하였으며, 눈을 뜨게된 맹인은 “그분은 선지자이십니다”(요 9:17)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게나사렛 호수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주님, 제게서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눅 5:8)라고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였으나, 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결정적으로 고백한 것은 예수님을 삼년 동안 따라 다니며 복음과 진리들을 가르침 받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권세도 체험한 후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였으며 (마 16:16),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멀찍이 두고서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그분을 부인한 후 디베랴 바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뵙게 되었을 때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요 21:15-19).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뢰하고 고백하는 자마다, 자기의 종이 병으로 죽게 되자 예수님께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내어 간청하여 모셔 오도록한 한 백부장이 다시 자기의 친구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주님, 수고하지 마소서, 저는 주님을 제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제 자신은 주께 나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눅 7:6-7)고 하여 예수님을 경외하게 된다. 십 이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의 등 뒤에서 옷자락을 만짐으로 치유를 받은 그 여자가 예수님께 떨며 나아와 예수님 앞에 엎드린 것은 그 분을 경외한 까닭이었다 (눅 8:43-48).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여 의롭다 함을 받은 후, 나이 많아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 때 그는 즉시 순종하였다. 이를 보시고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나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알았다”(창 22:12)고 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신 10:12). 그래서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했고 (행 10:22), 베드로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하였다 (벧전 3:17). 이로 보건대,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구주 예수님을 경외하는 자마다 또한 하나님을 순종한다. 믿음으로 순종하게 되기 때문에 (롬 1:5 ; “믿어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믿음이 곧 순종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갔다 (히 11:8). 즉,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란에서 얻은 모든 재산과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그 땅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창 12:4-5). 또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단에 바치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증명받았다 (참고, 이를 두고 증명적 칭의라 한다)(약 2:21-23; 참조, 롬 4:22).
요약하자면,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하여 마음으로 고백하고 경외하는 가운데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이 믿음을 통하여 인생의 답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알고 사귐을 나눔으로 영생을 누리며, 모든 죄와 사탄 마귀가 주는 저주와 진노에서 자유케 되는 까닭에, 이 믿음이 인생의 미션과 답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2) 회개

보아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이 너희를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변호하게 하며, 얼마나 의분을 느끼게 하며,
얼마나 두려워하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정 있게 하며, 얼마나 처벌을 하게 하였느냐? (고후 7:11)

둘째 열쇠는 믿음에서 나오는 회개이다. 믿음과 회개 중 어느 것이 순서상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나, 종교개혁자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을 회개보다 앞세웠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2장에서 믿음을 다루고 난 다음 3장 이하에서 회개를 다루었다. 그는 성령이 행하시는 주요한 내적 사역으로 믿음과 그것의 결과인 회개를 차례대로 다룬 것이다. 그러면서 로마가톨릭교회가 강요하는 바 믿음이 없는 고해성사를 비판하였다. 칼빈의 신학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14장에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다루고 15장에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차례대로 다루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 1:15)하셨고, 바울도 가르칠 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행 20:21)고 함으로써, 회개를 믿음보다 앞세웠던 것이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심령 속에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이다. 이로써 자기의 죄의 위험함과 추하고 가증함을 보고 느끼는가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아 회개한다. 그리하여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싫어하게 되며,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고, 새롭게 순종하는 모든 삶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를 계획하고 힘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 76 문답).
이같은 회개에 대한 정의는 고린도후서 7:11에 관한 칼빈의 해석을 반영한 것으로,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회개는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성령의 지배를 받아 살고자 하는 간절함과, 자신의 허물에 대해 변명하기 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마음과, 허물에 대한 분개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심과 열정과, 자신의 죄와 허물을 날카롭게 검토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되 자신을 엄중하게 책벌하는 것이다(「기독교강요」3권 5장 15절).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알 수 있는 대로, 회개에는 자신의 죄의 위험함과 추함과 가증함을 보고 아는 지성적 요소와, 그 죄에 대한 분개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죄를 싫어하게 되는 바 감성적 요소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고져하는 열심과 열망과 같은 의지적 요소가 있다. 이로 보건대, 진정한 회개는 죄와 마귀와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를 진정으로 경외하고 순종하고자 열심을 내는 것이요(행 17:30-31),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이같은 믿음에서 나오는 회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이루어 의롭다함을 얻고 거룩하게 되어 영생을 누리는 까닭에, 이 회개 또한 인생의 미션과 답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3) 기도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요 16:23)

셋째 열쇠는 믿음과 회개에서 나오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방편(말씀, 기도, 성례) 가운데 하나로서, 믿음의 가장 주요한 연습(a chief exercise of faith)이요, 천국의 보화를 얻게 해주는 믿음의 만능 열쇠(master key of faith)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 18:19)고 하셨다. 또한 죄와 악령을 제압하여 쫓아내는 데는 기도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다고 그는 가르쳐 주셨다 (막 9:28-29). 그는 포도나무 비유로 말씀하시는 중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요 15:7)고 하셨는가 하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된 것을 알리시면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 16:23)고도 하셨다. 바울도 강조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살전 5:17-18).
하나님은 강직하여 공의를 추구하는 의인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신다 (잠 15:8, 9, 29). 믿음으로 드리는 의인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하며 역사하는 힘이 많다 (약 5:15-16). 이렇듯 의인의 믿음의 기도가 믿음을 연단시키고 회개를 불붙게할 뿐 아니라, 천국의 보화 창고를 여는 열쇠이기에 인생의 미션과 답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4) 효행

그러나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것이다. (딤전 5:4)

끝으로, 인생의 답을 푸는 넷째 열쇠는 효행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6-38; 참고, 출 20:3-6), 바울의 가르침에 의하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엡 6:1-2). 즉, 십계명 가운데서 보면, 살인이나 간음에 대한 계명보다 앞서 인륜에 관한 것으로는 효행이 첫 계명이요, “네 생명이 길 것이다”(출 20:12)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계명인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바울은 가르쳤다 (골 3:20). 또한 그는 권하기를, 자녀들이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고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것이다”(딤전 5:4)라고 강조하였다.
바울의 경우 ‘효’라는 헬라어 단어(유세베이아)는 ‘경건’으로도 번역되어 있는바(딤전 4:8; 참고, 롬 1:18; ‘불경건’은 ‘아세베이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과 부모를 공경하는 효가 사실상 같은 의미이다. 이로 보건대, 인생의 근본적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여 효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를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효행은 단순히 동양 윤리의 근본만이 아니다. 동양의 윤리에 의하면, 효가 모든 선행의 시작이요 인륜의 시작이며, 불효는 삼천가지 죄악의 뿌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법에는 친족에 대한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규정하였다. 이같은 동양의 효의 윤리도 일반 계시와 은총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기에, 성경의 계시와 윤리와 상통하고 있다. 비기독교적인 동양의 윤리나 성경의 윤리가 다같이 효행을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는 부모님에 대한 효행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기에, 인생의 미션을 푸는 열쇠이다. 효를 행하는 자녀마다 행복 지수가 높고 삶의 의욕이 왕성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체조, 펜싱, 유도, 양궁 등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공통점은 효자효녀인 데 있었다. 효행이야 말로 믿음과 회개와 기도와 함께 인생의 미션을 푸는 열쇠이다.
인생의 유일한 열쇠가 복음이요, 보조 열쇠는 이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회개와 기도와 효행이다. 복음선포의 미션은 복음의 열쇠를 가지고 푼다. 복음은 인생의 답을 푸는 열쇠이자, 미션을 수행하는 열쇠이다. 다시 말해서, 미션을 수행하므로 답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이 복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 1:4).

맺는 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시 150:6)

인생은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씌워 만드신 바 하나님의 형상으로 왕같이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존감(self-esteem)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가 교만하거나 거만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자랑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만, 자존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존감이 없으면 행복할 수가 없고, 극단으로 치우치는 때는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힘과 도움으로 삼아 살아야 하는 의존적 존재이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왕같은 인격적 책임적 존재이며,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거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헌신적으로 살아야 하되, 서로 사랑으로 사귐과 섬김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충만하게 즐거워함으로 행복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근본 목적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령이 가난하고, 죄를 애통해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기쁘게 박해를 받는 자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행복하다 (마 5:3-12). 이 목적대로 살 때 인생이 자존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되어 자존감뿐 아니라 인생의 목적도 상실함으로써 불행하고 비참해진 것이다. 죄와 사탄 마귀가 인생의 문제이다. 인생을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아래 있게 만들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이다. 이 복음을 듣고 아는 자마다 성령께서 눈을 밝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케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가 인생의 비전이다. 이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의를 실천하며 사랑을 베풀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는 복음선포를 통하여 실현된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정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인애를 따라 공의를 행하며, 정직하게 하나님의 덕으로 공정을 행하되, 하나님의 은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어 인생의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서, 복음선포가 선행되어야 사실상 이 미션이 가능하게 되기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미션 중에 미션인 것이다.
이 복음을 들을 때 믿음과 회개가 일어나고, 믿음의 연습인 기도가 드려지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는 효가 행하여 진다. 그런 까닭에, 복음이 인생의 열쇠요, 믿음과 회개와 기도와 효행은 보조 열쇠이다. 이 열쇠로 미션을 수행하여 인생의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복음은 열쇠요, 복음선포는 미션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답이다.
하나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인생의 답과 열쇠가 있는 자마다 야곱의 아들 유다처럼, 사람이 된 사람, 속이 든 사람, 그리고 잘 난 사람이다. 즉, 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알고(참고, 창 29:3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다”), 속이 든 사람이기에 부모와 형제들을 잘 섬김으로 형제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참고, 창 49:8,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잘 난 사람이기에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착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참고, 롬 2:29,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된 사람’, ‘든 사람’, 그리고 ‘난 사람’이어야 마땅하다. 이같이 하나님을 감사 찬양하며 예배하는 ‘된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향하여 따뜻한 정을 베푸는 ‘든 사람’, 성령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는 ‘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행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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