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 치유(내적치유)

내적치유에 관한 자료, 책, 사례들을 나누는 공간이며 본 내용들은 저희 카페의 취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의 치유_ 정원 [1] (주님의♡사랑。 /2011.03.07)

2016.07.11 15:04

foreverthanks

조회 수898
[내적치유 간증]_ 죄책감의 치유_ 정원

심령에 어두움을 가져오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자..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이 땅에서 떠나서 하늘나라에 갔어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딱 처음 만나셨을 때 하늘나라에 온 여러분을 만나셔서 처음에 어떤 말씀 하실 것 같습니까?
어떻게 대해주실 것 같습니까. 주님 앞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말할 것 같습니까?

하늘나라가 너무 멀리 느껴진다면.. 이런 상상을 해 볼까요?
아무도 없이 혼자서 밤에 자기 방에서 아버지.. 하나님… 하고 기도하는데 주님이 여러분 방에 나타나셨어요.
그럼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얘기를 하실 것 같습니까?

천국에서 주님을 뵈었을 때 여러분은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죄만 짓고 살았어요. 너무 죄송해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주님. 보고 싶고 그리웠어요.’ 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을 만나셨을 때 주님은 ‘이 악한 종아 왜 사랑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맡긴 사명 감당하지 않았느냐.
왜 내가 너에게 인도하는 이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고 속만 썩이고 아프게 했느냐.’

하고 야단칠 것 같으세요.. 아니면 ‘내 딸아 내 아들아 수고 많았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라. 같이 즐기자.’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의 임재를 체험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 중 하나가 죄책감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예요.

‘나는 못됐다. 나는 악하다. 나는 더럽다. 나는 추하다. 이런 나도 주님이 받아주실까?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내가 주의 얼굴 뵐 수 있을까?’ 이러한 죄책감들이 주의 사랑과 용서를 방해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기 원하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방해합니다.

물론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잘난 척 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세리처럼 ‘나는 쓰레기만도 못합니다. 더러운 죄인입니다.’ 그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치가 없고 쓰레기라는 고백이 주님 앞에 나를 낮추는, 긍휼히 여김을 받기 원하고 사랑을 끌어당기는
간절함으로써 고백되지 않고 일종의 자기 정죄감이나 죄책감으로 고백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마음을 가지고 죄를 고백하는 것은 좋지만 자책으로 빠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아빠가 있었어요.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였어요.
퇴근 후에 사랑하는 딸을 만나고 싶어서 열심히 차를 달려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집에 일찍 퇴근해서 돌아왔어요.

5살 된 딸을 놀래줘야지. 재밌게 놀아줘야지.. 하고 집 앞에서 주차하는데 아이가 놀고 있다가 차를 보았습니다.
아이가 아빠~ 하며 달려나갔어요. 그러나 아이의 키가 작아서 백미러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후진하여 주차했는데 아이가 깔려죽고 즉사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아빠의 인생은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부터 폭음을 하며 도박을 즐기고 항상 취한 상태로,
멍한 상태로 평생을 살고 인생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주위에서 다시 아이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다시 기회가 있지 않느냐,
사랑했는데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달래고 울고.. 정신 차리고 돌아오라고 해도 그는 돌아올 수 없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수천번의 후회. 수만번의 절망. 자기의 한 것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수 없이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그 날 왜 내가 빨리 퇴근을 했을까..? 왜 내가 뒤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주차를 했을까..? 난 미친 거야..
그렇게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죄책감의 뿌리가 마음속에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 어떤 의식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내 속에 박힌 가치관, 내 깊은 곳에 있는 의식들, 그 의식이 어떤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 마음의 심층이 백까지라고 하면 표면의식 3 에는 행복이 있다고 해도, 표면의식 깊이 들어가서
의식이 30 쯤 된 부분에서 ‘인생은 괴로운 것이야.’ 하는 의식이 있다면 우리 삶은 괴롭고 힘들어집니다.

지하 30 의 의식은 표면의 3 의 의식보다 강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겉의 10 의 의식에서 ‘사랑해야지..’ 한다고 해도
심층의 80 의 의식에서 ‘아내는 나를 괴롭히는 여자야.’ 한다면, 어떤 의식이 이 사람을 지배하겠습니까?

더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의식이 이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더 깊은 속에 있는 의식이 겉에 있는 의식을 지배하고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써도 속 깊은 곳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그게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잘못된 의식,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그 속에 있는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 하나가 죄책감입니다.

나는 가치 없는 존재다. 나는 가치 없는 인생이다. 나 같은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존재다.
이런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주 많아요. 그런데 그 의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쉽게 화내고 원한을 품고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하고 생각할 거에요.
그런데.. 표면에 나타나는 모습은 그렇지만.. 그런데 무엇이, 어떤 생각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만들까요?
그 중 하나가 죄책감이고 깊은 곳에 형성되어 있는 어두운 상념인 것입니다.

그러한 죄책감.. 그러한 의식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요? 그 근원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심층의 가치관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심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대상은 바로 그의 부모들이니까요.

이 때 아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영향력을 판단하고 거절할 힘이 없기 때문에 그가 듣게 된 말이나
생각이 그의 안에 고스란히 심층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도 마찬가지이죠.
다시 말하면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온 것입니다.
부모가 키우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경우라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온 것이겠지요.

‘너는 왜 하는 짓이 이리 답답하니! 너 때문에 피곤해 귀찮아. 힘들어!’
부모가 무심결에 내뱉는 그런 이야기들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아이 깊은 곳에 스며 들어와 심층 의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한 사람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친밀한 것이라면 그 영혼에게는 거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인생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의 손에 자라면서 어린시절과 사춘기의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 지가 중요합니다.

‘너는 참 아름다운 존재다. 아빠 엄마는 널 사랑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실 거야. 항상 천사가 너를 보호하고 있단다.’
이러한 이야기를 늘 듣고 그 의식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사람은 항상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 아빠가 되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은 대부분 성숙하지 못한 나이입니다.
인생과 영혼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내 맘대로 안 되면 화나고. 내 꿈이 실망되면 속상하고.. 그러한 상태입니다.
아직 사람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배우자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는 때이지요.
여성은 남성의 마음이나 기질이나 상태를 모르고 남성은 여성에 대해서 무지하고 잘 모를 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상과 꿈이 무너지고 배우자나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입게 되는 때지요.
그러할 때 그들이 가장 쉽게 그 분을 푸는 대상이 누구이겠습니까?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고 저항 능력이 없는 만만한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녀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은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지요. 아직 모든 것이 미숙할 때이니까요.

순간적인 충동으로 함부로 말하고, 그러한 엄마 아빠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영혼이 성숙할 때가지 기다리려고 결혼을 70-80대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영혼의 세계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로 엄마, 아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시작부터 비극이 잉태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은혜를 베푼 존재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 아이가 자라나게 됩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는
아이를 깨어 일어나서 품에 안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밤새 애를 흔들고 재우면서 힘들게 키우죠.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 눈물 속에서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그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원망을 품는 다는 것,
특히 우리 문화권에서 ‘부모가 날 아프게 했다.’ 는 것은 신성 불가침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인식 때문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며 겉으로만 부모를 사랑하는 척 하고
오히려 깊은 속에서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므로 영적 성장 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의식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상념의 배후에는 부모의 책임이 있음을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용서를 해야 하지요. 그렇게 할 때 자신도 회복되고 부모도 회복됩니다.

우리는 부모를 용서해야 하는데.. 사면, 용서를 하려면 그 전에 죄가 무엇인지 알고 용서해야 하겠지요.
이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분노, 고통, 억울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이 부모로부터 온 것을 인식하고 그리고 나서 용서하고 그들이 아무 것도 몰랐음을 이해하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부모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굿윌헌팅.. 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주연을 맡은 맷 데이먼은 천재적인 소년이지요. 내용을 보면.. 수학교수가
어려운 문제를 칠판에 써놓으면 아무도 못 풀었는데.. 누군가 몰래 그 문제를 풀어내곤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천재가 누굴까? 추적하다가 그 사람이 바로 청소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청소부일을 하고 있는
젊은 천재 소년이었죠. 그런데 이 천재 소년이 어린시절의 상처 통해 비뚤어지고 반항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그 아이의 상태를 안 교수가 (로빈 윌리암스가 이 역을 맡았지요) 그를 치료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과 상처를 알고 이 소년에게 한 마디하는 것입니다. ‘네 탓이 아니야.’ 라고요.

그 말에 소년은 몽둥이로 머리통을 후려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로빈 윌리암스가 그 소년을 껴안아 주려고 하자 ‘가까이 오지 말아요!’ 하고 아주 거칠게 폭발하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교수는 계속 개의치 않고 다가가서.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란다.’ 하고 그를 안아줍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울면서 고통의 눈물을 쏟아내고, 그렇게 그 속의 아픔이 회복되고 치유되기 시작하지요.

참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영화이지요.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영화 중에 이 영화 외에도 패치 아담스, 같은 영화도 마음의 치유에 관계된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역시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한 [굳바이 베트남]같은 영화도 비슷한 영역이겠군요.

이 주인공인 소년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나는 못된 사람이다. 나는 악하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내 책임이다’
그런 의식을 깊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화내고 미워하고 성질내고 남 비판하고 욕하면서 ‘난 의로운 사람이야. 욕하고 나니 심령이 시원해지네.’ 하는 이는 없어요.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 속에서 이런 마음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 나는 왜 자꾸 이럴까. 나는 이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받아주고 용서해주고 싶은데..’
그리고 또 생각합니다. ‘나는 참 못됐구나. 그래 나 못됐어.’

그러나 저는 이 시간에 로빈 윌리암스가 소년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네 탓이 아니야. 네 책임이 아니야..’

우리 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것..
내 책임이다.. 내 잘못이야.. 하는 의식이 있는 이들은 그 근원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제가 사춘기 시절부터 많은 자살충동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지요.
나라는 인간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 미안할 때가 많았어요. ‘나 같은 쓸데없는 인간이 왜 살아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나는 아무 의미없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그냥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 마음이 시작되었는지를 나중에 살펴보았을 때 그 근원이 어린 시절에서 부터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삶의 의욕을 잃고 비참하고 자살하고 싶고.. 그런 충동의 대부분은 그 시작이 어머니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말이나 생각에 그대로 영향을 받습니다. 저의 경우도 어릴 적부터 ‘너는 못됐다. 너는 못됐다. 너는 성질
더럽다. 못됐다.’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의식이 제 안에 깊이 자리잡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제 안에 그런 것이 뿌리깊이 박힌 줄 몰랐는데 내 마음 속에 항상 그 음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는 못됐다.’는 소리가 깊은 속에서 메아리쳐와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용기를 내서 말하고 나면 마음 속에서 들려옵니다.

‘너는 못됐다. 너의 말은 거짓이다. 너는 위선자다. 너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지금은 거기에서 벗어났지만,
그 음성은 오래 동안 제 삶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 음성의 근원을 이해하고 그리고 거절하고
그리고 부모님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나서 비로소 그 음성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뿌리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어린아이들의 심령에 깊이 들어갑니다.

이 바보같은 놈아 답답한 놈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부모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자녀들의 깊은 의식 속에 스며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녀들의 삶을 만듭니다.
자녀들의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나고 증오가 일어나고 두려움이 일어나고 자기의 가치에 대한 상실감이 듭니다.

부모의 비난을 통해 아이들의 속에 나타나는 반응은 거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분노입니다. 별 일이 아닌 데도 사소한 일에 대해서 폭발합니다. 깊은 원한을 품습니다.
이상하게도 범사에 공격성, 비판성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원이 깊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두려움입니다. 사소한 일이 생겨도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셋째는 자기 존재, 자신에 관하여 무가치한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따라서 인생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런 것을 누릴 자격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바꾸어야 해요. 우리 마음속에, 내 속에 악이 일어날 때 나쁜 생각 일어날 때 이걸 기억해야 해요.
‘내 탓이 아니다.’ 내가 아직 이성이 자라지 않았을 때 누군가 나에게 심은 악의 뿌리이지 내 탓이 아니다.

여러분.. 인생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아세요?
아이가 태어날 때 아이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고백하는 소리를 들으며 인생은 시작됩니다.

‘아가야. 너는 아름다운 존재다. 나는 너를 기다렸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나는 육체의 엄마 아빠지만, 영원한 부모는
주님이셔. 그 분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너는 아름다운 존재다. 사랑스러운 아이다. 부모가 이런 의식을 심어줘야 해요.
이런 의식 속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에요. 평안한 환경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과 격려를 공급하고 안아주고 축복하는 부모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어린 시절에 그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아이가 우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아이. 그것이 여러분의 심령입니다.

그 심령, 어린 심령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너는 아름다운 존재다. 아빠는 너를사랑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아빠가 너를 낳아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엄마가 너를 낳고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너는 아름다운 귀한 존재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 영혼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완전을 향해 가지만 완전한 존재는 아니예요. 우리 영혼 속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어두움이 남아있다면 현재의 우리에게도 두려움 분노 낙심이 절망이 일어납니다.

시작으로 돌아가서 그 아기에게 말하세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가야.’ 내 속의 아가에게 말하세요.
‘아가야. 너는 가치있는 존재야. 너는 가치있는 존재, 아름다운 존재다. 너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란다.’

엄마들은 자녀에게 잘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잘못 말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해요.
그러나 먼저 그보다 먼저 할 것이 있는데, 자기의 자녀에게 행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어린시절로 가서 자기가 먼저 자기 속의 어린아이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 부모를 용서하고
아픈 것을 심어준 엄마를 용서하고 그 다음에 자기 자녀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첫 시작은 내 속의 어린 영혼입니다. 그에게 잘못 심겨진 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속의 어린 영혼을 고치지 않고
부모가 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녀를 파괴하는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 속의
어린 영혼을 고쳐야 해요. 지금 주님의 이름으로 고백하세요.

‘아가야. 아가야.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아가야. 두려워 말아라. 무서워 말아라.
너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가치있는 존재다.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주님이 너를 특별하게 만드셨다.
너를 목적이 있어서 만드셨다. 너는 귀한 존재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그렇게 끊임없이 말해야 합니다. 그 말이 여러분의 속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요..

아이가 조그말 때.. 한 살, 두 살 세살일 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 안아주고.. ‘너는 너무 아름답고 귀한 아이다.’ 이 얘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아이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학벌 좋고 경쟁에서 이긴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가치관은 비참한 것입니다.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가야해.. 그러면 내 인생은 행복해질거야.. 그러한 의식이 그 영혼을 망쳐요.
우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 때문에 어린 영혼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것과 똑같은 거에요. 올바른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상입니다.
행복을 위하여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대단한 것으로 보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영을 떠나시게 합니다.

좋은 학교에 가면.. 돈을 벌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좋은 남자를 만나면.. 행복해질거야..
그런 식으로 마음 속에 왕을 구하는 이들은 그 영혼의 황폐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치관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데,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런 가치관을 가르칩니다.
그러한 현실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몰라요. ‘사랑한다..’ 하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이 멍청하고 답답한 놈아.’ 그런 말들이 아이의 인생을 파괴합니다.
그러한 말들이 바로 수많은 귀신들과 재앙들을 끌어당기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그런 이야기를 수 없이 많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지겨워. 귀찮아. 너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네가 맨날 울기만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엄마를 괴롭혔을까. 어릴 때 바로 죽을 걸 왜 태어나서 엄마를 괴롭혔을까.’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내 속에서는 오랫동안 그런 말을 듣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엄마가 나를 안아주면서 ‘아가야. 너를 사랑한다.’ 이런 말을 듣고 싶은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 말을 듣지 못해서 대신 주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해주시고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십니다.

‘나는 못됐다’ 는 말을 항상 듣고 믿었고, 실제로 거칠어지고 못된 행동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
‘저것봐. 저렇게 못됐다니까 저렇게 성질이 못됐다니까.’ 하는 비난을 받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런 얘기하고 싶어요. 주님은 모두에게 ‘네 탓이 아니다. 네가 못된 것이 아니다.’ 말씀하신다고요!
누가 태어날 때부터 분노를 가지고 태어납니까. 그것은 우리 탓이 아닙니다.

제 안에 많은 두려움, 상처, 분노가 있었습니다. 화를 내고 폭발하고 그럴 때, 내 마음 속에는 ‘나도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다.’ 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 마음 속에 상처 많아서 그렇죠?’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못된 놈. 나쁜 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나 못됐다.
나 악하다 더럽다.’ 하고 더 비뚤어졌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못되지 않았다.
그것은 네 탓이 아니다. 너는 아름다운 존재이고 내가 너를 용서했고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악을 행합니다. 화를 내고 더러운 중독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을 정죄하고 비난해서는 그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 정말 못됐군요. 당신같이 성질 이상한 사람 처음 봤어요.’ 이런 말로는 그들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신은 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습니다. 당신은 아픈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 사람은 바뀌게 됩니다.

많은 남자들이 거칠고 못됐지만 그를 정죄하는 사람은 많아도 품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내들도 그를 정죄합니다. ‘당신 마음이 아프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많은 여자들이 거칠고 사납지만 ‘당신 마음속에 아픔과 상처 있지요.’ 말하는 남편은 별로 없어요.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많은 이들이 율법의 정죄 판단 비난의 돌로 치려 합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할까요. 현장범입니다.’ 사람들이 말할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를 정죄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로 오너라.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죄짓지 말아라.’
용서하시는 주님의 품에 안길 때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많이 하지요. ‘나는 원래 못됐다’고.. 그러나 원래 못되게 창조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마귀도.. 아무도 그렇게 창조된 이는 없습니다. 누구도 원래 증오를 품고 악하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악하고 더럽지 않습니다.

여러분 다시 1살 때의 자신에게로 가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아가야.. 너는 사랑스러운 존재야. 너는 아름답고 귀하단다..’

왜, 걱정 근심이 끊이지 않는 줄 아세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충분한 돌봄을 받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돈 있으면 걱정 없을 줄 아십니까? 근심, 미움, 분노,
모두 심층 의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에게 ‘아이야 너는 안전하다. 너는 악하지 않다.’ 말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 내가 너를 창조하고 지명하고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내 것이다.
물가운데서도 불가운데서도 너를 지키고 보호하며 너를 건져주리라.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 속의 죄책감.. 나는 악하다.. 더럽다.. 나는 음탕하다.. 쓰레기다..
그런 생각 다 버리세요. 그리고 새로운 마음을 심으세요. 우리는 아름다운 존재라고,
우리는 부족하고 약하지만, 주님이 사랑하시므로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 심령에게 말하세요. 자기 속의 아기에게, 내 속의 어린아이에게 말하세요.
‘너는 아름답다. 너는 귀하다. 너는 안전하다.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어릴 적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던 장면으로 돌아가서 주님이 어디 계신지를 보세요.

저는 항상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모래를 가지고 놀곤 했어요. 어둑해질 때 까지 모래를 가지고
개미랑 놀면서 그 때는 몰랐는데, 가슴 속에 쓸쓸하고 슬프고 외롭고 그런 마음이 있었던 가봐요.
나중에 그때 기억을 떠올리니 문득 한 그림자가 내 뒤에서 서서 가만히 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지켜보시는 분은 예수님이셨어요. 그 분이 그 때도 나를 보고 계셨음을,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으나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뒤에서 나를 지켜보시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등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항상 주님이 계셨습니다. 모태에 있을 때에도, 태어나자 마자 그 순간에도,
엄마가 이뻐하지 않고 화내고 야단맞을 것 같아서 무서울 때,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 그 때도 주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가장 아픈 장면에,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아보세요. 속에 있는 아가, 속사람에게 말합시다.
‘아가야. 인생은 행복한 거야. 인생은 소풍같은 것이야. 빨리 고향 가려고 할 필요 없어. 인생은 고통이 아니고 행복이야.’

저는 기도를 하면서 주님과 함께 과거를 여행하면서, 그 때는 상처인 줄 몰랐는데 아픔이 있었음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신기한 것이..저한테 상처 준 사람들이 나타나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그저 기도하는데 그들이 나타나서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뭔지 몰랐는데..알고 보니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깊은 속의 의식이 말하는 것이었지요.

6학년 때 심하게 때린 선생님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 때는 아무 것도 몰라서
폭행을 한 것 미안하다.’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이것이 영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기도하면 여러분의 부모님이 영으로 나타나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할 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부모는 안 그래도 영계에서 그 부모의 영이 와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 아들아 아빠다, 엄마다.. 내가 너한테 심한 말을 했지. 미안하다.’
그런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내 속의 아기를 축복하고, 두 번째는 부모를 용서하고 축복하고,
그것이 우리 영혼이 회복되고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나 이 땅에 살면서 형통하는 비결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모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재앙과 고통이 옵니다. 잘 모르고 상처 준 것에 대해 용서해야 해요.
때리고 화내고 악담을 퍼부은 아빠 엄마를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고 안아주지 않은 부모를 용서해야 합니다.

‘엄마. 내가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죠.
내가 이해해요. 엄마도 사랑하려고 했지만 사랑한다는 말할 여유 없었죠. 아빠도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고
안아주고 싶었을 텐데 못했죠. 이해해요. 용서해요. 당신의 연약함을, 슬픔을 이해합니다.’

이런 고백을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육신의 언어로 하지 않지만 영의 언어로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빛의 영계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고백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 딸아 미안하다. 사랑하는 딸아 나를 용서해라.
내가 너를 아프게 했고 화를 냈고 때렸고 정죄했던 것을 용서해라.’ 엄마 아빠 용서하고 사랑하는 고백을 함께 합시다.

여러분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들이 온전한 존재인줄로 알고 서운함과 원망이 있었겠지만, 이제 자라고 보면,
부모들도 너무나 어리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다만
그들을 용서하되 그들이 우리 안에 잘못 심어놓은 것은 거절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재앙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부모이신 분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어디에 있든 용서를 구하십시오. 많은 엄마들이 ‘내가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하면서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은 주님이 평가하시고 상급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악한 말을 한 것,
악한 행동을 한 것이 우리의 고생 때문에, 잘한 것 때문에 그 자체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덫에서 벗어나 날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면, 먼저 자신 속의 어린 영혼을 더 치유하십시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어두움에서 벗어났다면 이제는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새롭게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사랑의 언어로 그들을 새롭게 빚으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도
자유롭게 되고 자녀들도 어두움의 그늘에서 벗어나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가정에 천국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댓글 쓰기

비회원 프로필 이미지
댓글 1
foreverthanks

foreverthanks

2016.07.11 15:04

가나안입성 12.04.24. 13:45
아멘... 요즘 아빠를 용서하는 작업을 하나님이시키시고 계시네요... 엄마도 용서해야 할 부분 있어 합니다.
그리고 참 부모님이 돼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성령님..

댓글 쓰기 닫기
79 완전한 용서 – R.T 켄달 목사 (주님의 편지 /2011.05.15)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58
foreverthanks 2016.07.11 858
현재글 입니다. 죄책감의 치유_ 정원 [1] (주님의♡사랑。 /2011.03.07)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98
foreverthanks 2016.07.11 898
77 영혼의 병, 수치심을 치유하라_ 강선영 사진첨부 (주님의♡사랑。 /2010.11.19)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68
foreverthanks 2016.07.11 768
76 조이스 마이어의 ‘일상의 기쁨’-[사탄의 미끼]_ 존&리사 비비어 [1] 사진첨부 (주님의♡사랑。 /2010.11.18)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27
foreverthanks 2016.07.11 727
75 하나님의 말씀은 처방약입니다_ 찰스 캡스 (주님의♡사랑。 /2010.11.15)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66
foreverthanks 2016.07.11 866
74 사망의 독을 빼는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 [1] (주님의♡사랑。 /2010.11.03)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84
foreverthanks 2016.07.11 784
73 탐 브라운 – 내적 치유(2) : 질투로 부터의 자유 (주님의♡사랑。 /2010.11.02)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30
foreverthanks 2016.07.11 730
72 탐 브라운 – 내적 치유(1) : 질투로 부터의 자유 (주님의♡사랑。 /2010.11.02)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77
foreverthanks 2016.07.11 777
71 내적 치유- 조용기 (주님의♡사랑。 /2010.10.26)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90
foreverthanks 2016.07.11 790
70 내적치유_ 수동성과 상한 심령 [1] (제니스 /2010.09.28)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49
foreverthanks 2016.07.11 749
69 간증글을 제외한 퍼오는 글은 기도모임에 나오거나 사역을 받은 분만 올릴 수 있습니다. (사도나다나엘 /2010.04.17)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698
foreverthanks 2016.07.11 698
68 니가 이 문제를 내게로 가져올 때 나는 너에게로 들어간다 [7] (finky777 /2010.04.13)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64
foreverthanks 2016.07.11 764
67 죄와 상처의 증상들 [2] (사도나다나엘 /2009.11.2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99
foreverthanks 2016.07.11 799
66 내면의 문제와 사단의 경로 [3] (사도나다나엘 /2009.11.2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02
foreverthanks 2016.07.11 802
65 한국인의 상처, 한(恨) [1] (사도나다나엘 /2009.11.2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953
foreverthanks 2016.07.11 953
64 결혼 전에 치유 받아야 할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 [2] (사도나다나엘 /2009.11.2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40
foreverthanks 2016.07.11 840
63 소울 타이 (soul tie) [1] (아비가일 R /2009.11.1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721
foreverthanks 2016.07.11 721
62 견고한 진(2) – 회개의 선물 [1] (아비가일 R /2009.11.1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12
foreverthanks 2016.07.11 812
61 견고한 진들 [2] (아비가일 R /2009.11.16) 1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861
foreverthanks 2016.07.11 861
60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것 배우기 Posted by David Wilkerson (사도나다나엘 /2009.10.19)
  • 작성자 : foreve...
  • 작성일 : 2016.07.11
  • 조회수 : 924
foreverthanks 2016.07.11 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