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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언도 있는가? [1] (사도나다나엘 /2009.12.03)

2016.07.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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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515

이런 방언도 있는가?

그 동안은 필자는 본 시리즈에서 방언을 부정하는 것 혹은 방언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견해를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주로 썼다.
이번에는 방언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방언을 하면서 일어나는 의문에 대해서 답하려고 한다.
방언은 신비한 것이다.
이것은 이성의 작용으로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성령이 신자의 입술을 직접 통제하여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방언을 하면서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은 방언들이 있는지 질문하고 그 성서적 답변을 기대한다.

외국어 방언?

방언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는 기도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 언어가 실제 외국어일 수 있는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에 나타난 방언은 실제 외국어인 듯하다.
제자들이 성령충만하여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고 이것을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던 사람들이 모국어로 그것을 알아들은 것이다.
이것이 모국어로 말한 것이든 아니면 단순히 알아들은 것이든 방언이 실제 언어와 상관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첫 방언은 외국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신자가 하는 방언도 외국어일 수 있는가?
누가와 바울이 기록한 방언이 방언하는 사람 본인이 배우지 않은 말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외국어도 될 수 있고 또 부호와 같이 영으로만 알아듣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바울이 말하는 방언은 그것이 실제 외국어라는 뉘앙스는 적다.
어쨌든 현재도 방언이 얼마든지 실재하는 외국어일 수는 있다.
문제는 그 외국어를 방언하는 사람, 본인은 모르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언어는 어차피 ‘방언’이 된다.
그래서 아쉽게도 외국어 방언을 하게 되면 이제 그 언어를 더 이상 습득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나라 말을 습득의 과정을 통해서 배운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2:4에서 말하는 방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 방언?

만약 어떤 신자가 하는 방언이 실제 외국어라면 그 방언이 모국어인 사람은 그 기도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선교지에서 그 지역 언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선교사가 이러한 방언을 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듣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지 않겠는가? 문헌을 보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 보도가 많이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것의 성서적 근거는 있는가? 바울이 소개한 방언을 보면 방언은 기도와 찬양이다(고전 14:15). 또 누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방언의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을 드러내는 것이었다(행 2:11).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방언을 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큰 일”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방언이 실제 언어라고 생각하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작정 방언으로 말하여 오히려 대화가 단절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또한 고린도교회에서 있었던 것과 같이 방언을 일종의 설교로 생각하여 예배 시간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통역 없이 사용하는 것도 바울이 금지한 것이다.
곧 방언은 그것이 외국어일 때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회개에 이르게 할 수는 있지만 방언 자체가 설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적 예배에서 통역이 없이 방언으로만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대화 방언?

만약 방언이 실제 사용되는 언어라면 방언을 말하는 신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언으로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도행전 오순절 기사에서 제자들이 방언을 했지만 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과 대화했다는 보도는 없다.
바울도 방언을 받고 사람들이 서로 말로 통하게 되었다는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방언을 체험하고 그것을 통해서 언어의 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은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마치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대화라기보다는 듀엣 기도 혹은 듀엣 찬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실제로 청년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수련회 예배 중 두 자매가 눈을 감고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똑 같은 몸짓과 언어로 하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이것이 너무도 신기해서 눈을 뜨고 오랫동안 지켜본 적이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두 사람이 듀엣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방언 찬양?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 중에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성서적 근거가 있는가? 물론 있다.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과 함께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5)
여기서 영으로 찬양하는 것이 다름 아닌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성령은 방언으로 기도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배우지 않은 언어나 부호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애기 방언?

방언하는 사람은 대개 방언이 변한다.
또 한 가지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방언을 하게 된다.
이것의 성경적 근거는 있는가? 물론 있다.
바울이 방언의 은사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 바로 “각종 방언”(고전 12:10)이다.
방언 은사 자체가 여러 가지 방언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은 언어습득처럼 발전 단계를 거치는 것인가?
이른바 ‘애기 방언’을 한 다음 ‘성인 방언’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것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희박하다.
방언 자체가 어차피 하나님의 영과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미숙한 것과 발달된 것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그것은 듣는 이의 편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또 어떤 방언이 듣기에 더 아름답다고 해서 다른 방언보다 수준이 더 높은 것도 아니다.
방언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신자는 방언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 수준을 인간이 가르는 것은 온당치 않은 것이다.

방언의 신비

20세기에 방언 운동이 일어나면서 학자들은 방언을 심리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방언을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으로 방언의 신비가 깨진 것은 아니다.
방언은 그야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신자가 신비를 하나님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안에는 신비가 있다. 우리는 방언을 연구하는데 있어 마치 해부학 교실에 있는 동물의 시체를 다루듯이 하면 안 된다. 방언의 신비를 몸소 체험하면서 그것의 성서적, 신학적, 사회 과학적, 자연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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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forever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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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2 06:51

estherkim 10.01.17. 18:07
은혜의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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